<聖經> 신명기17:1-20
<題目> 가나안 땅에서 지킬 규례
<序言>
본장은 앞장 후반부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 곳에서 지켜야할 규례를 언급한 장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의 순결성에 대한 강조로 시작하여 우상숭배에 대한 처벌 규례와 재판 절차에 대한 규례와 왕의 자격 요건과 의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내용구조는 흠 없는 제사와 제물을 드릴 것에 대한 명령(1절), 우상 숭배자에 대한 근절 명령(2-7절), 상급 재판정 제도에 대한 규례(8-13절), 왕정제도에 대한 규례(14-2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흠 없는 제사와 제물을 드릴 것에 대한 명령 (1절)
1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제사를 그릴 때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절). ‘흠 이나 악질이 있는’은 생축들에게 있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결함을 강조하는 이중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물용으로 쓸 수 없는 결함에 대해서 레위기22:22-24에 보면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자원제물로는 쓰려니와 서원제물로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리라. 너희는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라고 했습니다. 상하지 않은 것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먼 것, 지체가 상하거나 베임 당하거나 많거나 적은 것, 몸에 종기가 있거나 습진이 있거나(옴이나 버짐으로 용모가 흉하게 된 짐승) 비루먹은 것(버짐이 있는 짐승), 고환이 상하거나 치거나 터지거나 베임당한 것은 흠이 있는 제물이니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흠이 있는 제물은 이스라엘 가운데 있게 하지도 말고 그런 것을 이방인에게 받아서 드리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레22:25). 이 규례는 제사장의 신체조건과 같은 이치입니다 (레21:16-23). 상하거나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말라기1:8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세상 윗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에도 병들거나 상한 것으로 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온전치 못한 것으로 드리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세상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만 골라서 드리는 것을 보고 차라리 성전 문을 닫는 것이 좋겠다고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말라기1: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드리는 모든 예배와 예물을 통해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번폐스럽게 여기거나 헌물을 인색함으로 드린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말1:13, 고후9:7, 막12:44, 눅21:4).
2. 우상 숭배자에 대한 근절 명령 (2-7절)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7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언약(출19:5-8)을 버리고 성중에서 일월성신(日月星辰)같은 다른 신들을 섬긴다는 말이 들리면 철저히 조사해서 사실로 드러나면 그 남녀를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2-5절). ‘성문’은 많은 사람이 회집할 수 있는 넓은 광장이 있는 곳으로서 공개 재판이 이루어지던 장소입니다 (21:19). 돌로 쳐 죽이는 사형법은 공동체로부터 악을 제거하는 동시에 동일한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던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사형 판결이 내려지면 증인이 먼저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고 했습니다 (7절). 이렇게 증인들과 무리들이 사형 집행에 참여하게 한 것은 스스로 공동체에서 악을 제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참여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죄를 처벌하는데 참여하므로 죄를 끊는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이고, 참여한 자들에게나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그 같은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사형을 집행하는데 강조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형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2~3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 민수기35:30에도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증인이 1사람만 있을 경우 교차 검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위증을 하게 되면 잘못된 판결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를 철저히 하여 사실이 확실하게 규명되었을 때에만 사형을 판결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조처라 할 수 있습니다. 무고(誣告)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증인이 먼저 손을 댄 후에 백성들이 손을 대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 먼저 사형수의 옷을 벗기고 손을 묶은 채 성 밖으로 끌고 가 약 2.7m 높이의 처형대 위에 세운 후 한 증인이 처형대 위에서 밀어뜨리고 두 번째 증인이 큰 돌을 들어 그의 머리나 허리를 치고 그 후 둘러선 무리가 함께 돌을 들어 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증인들이 먼저 밀어뜨리고 큰 돌로 치게 한 것은 죽임을 당한 사람에 대한 법적 책임이 증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정짓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쉽게 증언하지 못하게 하므로 확실한 사실의 경우에만 증언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위증(僞證)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만일 거짓 증언을 하면 희생자가 받은 형벌을 그대로 받아야 했습니다 (19:18-19). 이 제도가 얼마나 악을 철저히 제거 내지는 예방을 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사형제도는 악을 철저히 제거하면서도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권력층에서 그 제도를 잘 지킬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좋은 법조차도 역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제도라도 지킬 의지가 없으면 오히려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이용하고 맙니다. 열왕기상21:1-16에 보면 아합과 나봇 이야기가 나옵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이 이스르엘에 별궁을 짓고 휴양지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자기에게 주면 더 나은 포도원을 줄 것이고 값을 원하면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봇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포도원을 팔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아합이 왕궁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고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그 사실을 알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성읍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나봇을 재판석에 세우고 불량배 2사람을 매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하고 나봇을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은 편지를 받아보고 그대로 했습니다. 결국 나봇은 무고로 죽고 아합이 그의 포도원을 차지했습니다. 나봇은 성읍 장로와 귀족들의 무고와 그들에게 매수된 불량배들의 거짓 증언에 의해 억울한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결국은 정권 실세였던 이세벨에게 이용당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이데올리기 시대에는 좌우 양 진영이 재판 과정도 없이 죽이므로 수많은 사람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독재시대에는 법과 재판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정권 실세들이 재판장이나 검사들을 이용해 정권유지에 유리한 결과를 내게 하므로 억울한 옥살이와 사형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 인혁당 사건). 꼭 독재 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도 경찰과 검사와 재판장의 실수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경우도 있었다 (예, 화성연쇄살인 사건). 그래서 악한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로 예방효과를 얻는다는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찬성하지만 혹 잘못된 재판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반대합니다.
오늘날 우리 공동체 생활에서도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악과 죄는 단호히 제거하고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므로 상처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차라리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제거하는 일을 유예시켜서라도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모함해서는 안 됩니다 (마7:1-2). 다른 사람에게 들은 비방을 교차검증 없이 그대로 믿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억울하게 죽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5:21-22, 요일3:15).
3. 상급 재판정 제도에 대한 규례 (8-13절)
8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10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2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 물으라고 했습니다 (8-9절). 각 성읍에서 민형사 사건 중 성읍 재판정에서 판결하기 힘든 사건은 중앙성소에 있는 상급 재판정에 이송해서 상급 재판정에서 판결을 하라는 것입니다. 각 성읍 재판정에서도 율법을 따라 판결하되 판결이 어려운 사건에 대해서는 상급 재판정에 이송해서 상급 재판정에서도 율법을 따라 판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상급 재판정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10-11절). 상급 재판정에서는 율법을 따라 판결하고 그 율법대로 판결한 판결을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하나님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서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했습니다. (12절). 상급 재판정에서 율법을 따라 판결했는데 교만하여 그 판결에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죽여 악을 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판결한 최종 판결에 불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대한 거부와 도전으로 보고 사형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과거 중세 카톨릭과 성공회에서는 이 내용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교권에 맹종하지 않는 자는 종교재판을 열어 사형을 시켰습니다. 심지어 개혁교도들와 청교도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죄목으로 화형을 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모든 시대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중세 카톨릭과 성공회는 하나님의 직접적 간섭이 없었고 하나님이 세운 재판정도 아니었고 하나님 말씀대로 판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기들의 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한 재판이었을 뿐입니다. 상급 재판정에서 율법대로 판결한 최종 판결에 불복하는 자를 처단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13절). 범법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일차적으로 죄 자체에 대한 단죄로서 악을 제거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두려움을 갖게 하여 범죄를 제재하는 범죄 예방효과를 가지게 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그 정신은 본받아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웠다면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판단을 해야하며 교인들은 그들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 목적과 자기 유익과 자기 감정을 따라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원리에 의해 판단해야 합니다. 성도의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정된다는 성도들은 그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 옛날 평양 산정현교회에 조만식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가 마산 문창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던 주기철 목사를 청빙해 오기 위해 마산 문창교회를 갔습니다. 조만식 장로와 주기철 목사는 사제지간이었습니다. 조만식 장로가 오산학교(평북 정주)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주기철 목사는 그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만식 장로는 마산문창교회에 있던 주기철 목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장로님 편히 앉으십시오.” 했습니다. 그러자 조만식 장로가 “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제가 선생이었고 목사님이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목사님이 하나님의 귀하신 종이고 저는 그 종을 받들어 섬기는 장로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편좌하라 말씀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주기철 목사는 조만식 장로에게 너무 감동을 받아 그의 권유를 따라 평양산정현교회로 가서 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평양산정현교회에서 담임하던 중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조만식 장로가 교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예배시간에 늦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부랴부랴 교회로 뛰어왔지만 이미 예배가 시작되었고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조용히 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설교를 하다가 마시고 조만식 장로를 행해 말했습니다.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낮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주기철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장로님께 “장로님 앞으로 나오셔서 기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앞으로 나와 울먹거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죄인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죄인이 애국운동을 한답시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시간을 늦고 말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 설교하던 도중에 이토록 책망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은혜로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만식 장로의 기도를 듣고 모두 울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도 울었고 성도들도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두 분을 모두 칭송했습니다. “과연 그 스승의 그 제자요. 그 목사의 그 장로로다” 두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에 복종하는 모습이 놀라울 다름입니다.
4. 왕정제도에 대한 규례 (14-20절)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였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주변국들처럼 왕정국가를 원하게 될 것을 전제하고 그럴 경우 왕을 세우는 기준에 대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14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부득불 왕을 세울 경우 왕으로 옹립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말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할 경우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차선책으로 그것을 허락하되 왕 제도를 활용하여 통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의 자격 요건을 정해준 것입니다 (삼상8:6-22).
①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15절).
왕은 백성들이 원하여 택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여 선택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 제도를 허락하시는 것은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통치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 뜻대로 통치하는 자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직접 선택할 것이고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옹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00년 후에 하나님이 사울을 선택하여 사무엘 선지자에게 알려주시고 왕으로 세우게 했습니다 (삼상9-10장).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은 노회의 인준과 교인의 투표로 세워지지만 하나님이 세우시기를 원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소명의식이나 사역현장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자여야만 합니다.
②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15절).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타국인 가운데 세우면 안 되고 이스라엘 백성 12지파 가운데 한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인은 하나님에 대한 언약적 신앙이 없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동질성이 없어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게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으므로 혼란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지도자들도 그 교회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사역적,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이 뚜렷해야 합니다.
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가 지켜야할 규정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규정들이며 영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규정들입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했습니다.
①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16절).
병마를 많이 두지 말고 병마를 많이 얻기 위해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우량마(優良馬)의 원산지였습니다. 병마를 많이 두려고 병마를 수입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馬)은 없었는데 주변국들에서는 말이 많았고 그 말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군마(軍馬)는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왕들은 국력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려고 군마를 많이 두려 했습니다 (삼상8:11-12). 그런 점에서 말을 많이 두려는 것은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고 군사력에만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만 의지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31:1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시33:17, 겔17:15).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윗왕은 압살론의 반란과 세바의 난이 다 진압되고 나라가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 때 군사력을 위해 인구조사를 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이 전염병으로 70,000명이나 죽게 되었습니다 (삼하24:1-15).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이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고 죽을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군사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바벨론 사신에게 무기고를 보여주었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유다가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39:1-8).
②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17절上).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왕이 아내(후궁)를 많이 두는 것은 향락 때문인 경우도 있고 지방 세력가들과의 정치연대나 다른 나라와의 동맹 등 정치적 목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치력을 믿고 아내를 많이 둘 경우 분별력을 잃게 되고 이방 우상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말년에 이방 나라 여인들을 사랑하여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후궁이 7.000명, 첩이 3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영향으로 이방 우상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아들 대에 나라를 한 지파만 남겨두고 모두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왕상11:1-13). 실제로 솔로몬 죽음 후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아합왕은 시돈왕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세벨이 우상을 숭배하고 신전을 짓고 제단을 쌓고 우상의 선지학교를 세우고 우상의 선지자들을 양성하는 것을 용납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섬기는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숙청시키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그는 결국 악령과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아 아람 제국에 속한 길르앗 라못을 얻기 위해 여호사밧왕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을 쳤습니다. 그 전쟁에서 적군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았습니다. 전장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전투가 맹렬하여 빠져 나오지 못하고 피를 많이 흘리므로 죽게 되어 사마리아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가 탄 병거를 못에 씻는데 그의 피를 개들이 핥았습니다 (왕상16:29-33, 22:29-40).
③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 (17절下).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많이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재물을 많이 쌓게 되면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뒤에는 그 경제력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매 심중에 ‘내가 곡식 쌓아 줄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주리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치 못한 자가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눅12:16-20).
④율법서를 항상 옆에 두라고 했습니다 (18-19절).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율법서’는 오세오경을 말합니다. 율법서의 원본은 제사장이 성전에 두고 보관하기 때문에 왕이 제사장 앞에서 사본(寫本)을 만들어 늘 곁에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통치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평생 그리고 늘 율법서를 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서를 옆에 두고 읽고 배우고 깨닫고 묵상하고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 형제 가운데 교만하지 않게 되고 명령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므로 그와 그 자손이 왕 위에 있는 날이 장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 율법대로 하면 겸손과 공평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어 왕위가 길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편1:1-3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結言>
왕이 지켜야할 규례는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말씀이지만 모든 성도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나라를 군사력이나 정치력이나 경제력을 의지하거나 그것들로 다스리려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리려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세속적인 것들을 의지하여 그것들로 사역을 하거나 살아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역을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