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신명기20:1-20
<題目> 전쟁에 관한 규례
<序言>
본 장은 조금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전쟁에 관한 규례와 그 기본 윤리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쟁이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수행해야 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으로 그곳에 정착한 다음에 끊임없이 침략하는 주변 열국들과의 전쟁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어떤 전쟁이든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전쟁에 임하는 마땅한 자세(1-9절), 전쟁 수행에 관한 기본 지침(10-18절), 무분별한 파괴 금지(19-20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전쟁에 임하는 마땅한 자세 (1-9절)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9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 말과 병거와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1절). ‘적군’은 기본적으로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말합니다 (16-17절). 가나안 민족들의 말과 병거와 군사가 이스라엘 군사보다 많을지라도 두려워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병거와 군사의 수는 당시 군사력의 측정 기준입니다. 당시 애굽과 가나안 민족들은 그런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출14:7, 수17:16). 그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은 400여 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고 40여 년간 광야생활을 했기 때문에 형편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9:2, 민13:28-33).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왕 바로의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으며 요단 동편에서 이미 아모리 족속 바산왕 옥과 헤스본왕 시혼의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차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군대보다 강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여 제사장 나라를 이루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가진 언약적 목적을 위해 함께 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하라 했습니다 (2-4절). ‘싸울 곳’은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족속들과 교전을 해야 할 전쟁터를 말합니다. ‘제사장’은 비느하스처럼 군사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는 제사장을 말합니다 (민31:6). 오늘날 군목(軍牧)과 비슷한 위치로 볼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제사장은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적군과 싸워주시므로 승리하게 해 주실 것이니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떨거나 놀라지 말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전쟁이니 두려워 말라는 선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전쟁임을 선언한 후 책임자는 전쟁에 참여하지 못할 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지휘관을 세워 군사들을 거느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5-9절). ‘책임자’는 정황상 각 지파의 두령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1:15). ‘지휘관’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가리킵니다. 지파의 두령들은 군사들에게 전쟁에 참여하지 못할 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첫째,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지 목한 자입니다 (5절). ‘낙성식’은 집을 다 지은 다음에 하나님께 봉헌하는 제사를 드리는 예식을 말합니다. ‘그는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할까 하노라’는 집 걱정만 한다는 것에 대한 우회적 표현입니다. 집을 짓기 시작한 다음 낙성식을 아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에 징집된 자는 집 걱정만 하다가 전쟁에 전심전력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6절). 과수원을 만들어 재배하다가 아직 과실에 손도 대지 못한 상태에서 징집된 사람도 과수원 생각만 하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여자와 약혼을 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7절). 약혼을 했으나 약혼녀를 아직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 상태에도 징집된 자도 아내될 사람만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두려워 마음이 허약한 자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8절). 두려워 떠는 자는 전투를 수행할 수 없고 동료들의 사기도 떨어뜨리는 영향을 주므로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자는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하지 못한 자, 마음이 허약하여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전투에 몰입하지 못하게 되고 일심정력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 군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 연합군이 쳐들어와 모레산 앞 골짜기에 진을 쳤는데 그 군사와 낙타의 수가 메뚜기와 모래알 같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기드온이 감동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사로 모집을 했는데 33,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군사의 수가 너무 많으니 두려워 떠는 자를 돌려보내라고 해서 돌려보내니 10,000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그것도 많다고 해서 시냇가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하여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돌려보내라고 해서 돌려보내니 300명만 남았습니다. 그들을 돌려보낸 것은 두려움에 질려 있거나 경계심이 없는 자는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고 오히려 신속한 작전에 어려움을 겪거나 다른 군사들의 사기까지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300명이 하나님이 지시하는 작전을 따라 미디안 군을 급습하므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크게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상14:6, 17:47). 둘째, 전쟁에 임하는 군사는 정예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군사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신앙으로 담대해야 하며 그 전쟁에 몰입하여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며 항재전장의 정신으로 항상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적 전투가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이 있습니다 (딤전6:12). 우리가 구원을 얻어 성화를 이루므로 내적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방해하는 대적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이루어 외적 하나님 나라를 얻어 나가는데 방해하는 대적들도 있습니다. 첫째, 악령들이 있습니다. 사탄과 마귀와 귀신들이 우리의 적입니다. 베드로전서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고 했습니다. 둘째, 죄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부패성이 우리의 대적입니다. 베드로전서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환경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방해하는 모든 세력과 환경이 대적입니다. 에베소서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이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마태복음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물질적이고 육체적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일심정력을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영적 군사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강한 영적 전사들이 필요합니다.
2. 전쟁 수행에 관한 기본 지침 (10-18절)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①가나안 민족이 아닌 경우엔 긍휼을 베풀게 했습니다 (10-14절).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 치려 할 때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그 성읍이 화평하기로 회답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에게 조공을 바쳐 섬기게 하라고 했습니다 (10-11절). ‘어떤 성읍’은 가나안 족속의 성읍이 아닌 다른 민족의 성읍을 가리킵니다. 그들과 전쟁을 할 때는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화평하기를 원한다는 선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화평하기를 원한다는 회신이 오는 동시에 성문을 열어주면 그 군사들이나 주민들을 죽이지 말고 조공을 바치도록 화친조약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항복의 의미로 평화조약을 맺은 성읍은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되어 조공을 바치고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유익이 되는 성읍이므로 아무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성읍을 에워싸고 성읍을 정복하여 남자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은 죽이지 말고 탈취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12-14절). 화친을 거부하는 성읍에 대해서는 성읍을 에워싸고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읍에 들어갔을 때 전투를 할 수 있는 남자들은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여자와 유아와 가축은 죽이지 말고 탈취물로 취하라고 했습니다. 금은패물 등의 재물도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남자들은 죽이지만 여자나 아이들에게는 긍휼을 베풀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대적했기 때문에 전리품을 얻게 한 것입니다.
②가나안 민족인 경우에는 긍휼을 베풀지 않게 했습니다 (15-18절).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않은 성읍들에는 그 같이 행하려니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에 대해서는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가르쳐 본받게 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15-18절). 가나안 땅이 아닌 멀리 있는 성읍들에 대해서는 앞에 명령한대로 긍휼을 베풀지만, 가나안 땅에 있는 족속들에는 긍휼을 베풀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나안 족속들은 우상숭배로 죄가 관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심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9:4, 12:31, 창15:16, 레18:24-25). 둘째,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숭배에 관한 일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8절). 하나님의 백성은 죄에 대해 단호하게 단절해야 하며 죄를 짓게 할 요소와 환경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3. 무분별한 파괴 금지 (19-20절)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 될 것이니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목이 어찌 사람이냐며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고 했습니다.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싸우는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쓰라고 했습니다 (19-20절). ‘성읍을 치는 기구’는 성읍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방벽이나 성채를 가리킵니다. 전쟁 기간 동안에 일반 수목은 전쟁 기구를 만들기 위해 벌목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과목(果木)은 벌목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은 성읍을 점령하려 할 성읍을 포위하여 오랫동안 대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도구로 이용하거나 땔감으로 이용하기 위해 모조리 베곤 했습니다. 애굽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전쟁을 할 때 주변 나무들을 모조리 베므로 그 땅이 황폐화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여 적의 사기를 위축시키는 심리 전술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성읍을 포위해 있는 동안 적대심이 고조되어 이성을 잃고 무분별한 파괴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의 성읍을 포위했을 때에 전쟁 도구를 만들기 위해 수목을 베는 것은 허락했지만 그 외에 필요 이상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한 무모한 파괴행위는 금했습니다. 더욱이 과목 곧 유실수는 벌목을 절대 금했습니다. 그것은 유실수는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실수는 그들이 식량을 얻는 산업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군대가 분노로 그들의 산업까지 잔인하게 파괴를 일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나쁜 인식을 주고 적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불가피한 파괴 이상의 파괴는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름과 영광을 갖고 있는 군대는 전쟁 중에도 적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읍을 점령한 다음에 그 성읍 사람들도 선교의 대상으로서 그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터키에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중국의 어느 기독교 장수가 터키의 성을 공격할 때 항복을 하면 아무도 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서 항복을 했는데 항복을 한 후에 중국 장수가 그 성읍 사람들을 학살을 하므로 터키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이슬람군을 불러들였고 그 후로 터키가 이슬람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맞다면 중국 군대가 한 성읍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가진 장수는 전쟁을 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게 해 줍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역을 하는 데 있어서 비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활동에서도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結言>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상숭배 같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하는 동시에 그렇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기독교인들을 대할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로 인하야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선교적 시각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