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신명기21:1-23
<題目> 성결을 위한 규례
<序言>
본 장에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행해야 할 법도와 규례를 제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결을 이루어야 하는 바 그에 관한 제반 규례들을 제시했습니다. 내용구조는 미결 살인죄에 대한 속죄 규례(1-9절),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례(10-14절), 장자 상속권에 관한 규례(15-17절), 불효자에 대한 규례(18-21절), 시체 처리에 관한 규례(22-23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미결 살인죄에 대한 속죄 규례 (1-9절)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그 땅에서 누가 죽였는지 알지 못하는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면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재고 그 피살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 장로들이 속죄 의식을 거행하라고 했습니다 (1-3절上). 어느 곳에서 피살체가 발견되었는데 누가 죽였는지 알지 못하면 그 살인죄가 영구 미제로 남게 됩니다. 그럴 경우 가까운 성읍에 있는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나가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을 재어야 했습니다. ‘장로’(זקן)는 각 지파나 성읍에서 나이가 많은 자 중 덕망이 있어 모든 일에 대표 역할을 할 만한 자를 가리킵니다. ‘재판장’(שפט)은 백성들의 분쟁을 맡아 처리하던 행정관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천부장이이나 백부장이나 오십부장이나 십부장으로서 유사시에 군대 지휘관 역할도 했습니다 (출18:25-26). 그들이 피살체가 있는 곳에서 사방에 있는 성읍의 거리를 재어 가장 가까운 성읍을 알아내고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그에 대한 속죄 의식을 거행해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성읍 장로들이 속죄 의식을 행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그 성읍이 피살체에 대한 살인자의 죄책을 책임지고 제거해야 하는 대속의 의무를 가졌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그 성읍의 대표자인 장로가 죄책을 제거하는 속죄 의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피살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성읍의 장로들이 속죄의식을 거행하라고 했습니다.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않고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를 취하여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고 했습니다 (3-4절). ‘멍에’는 소로 하여금 일을 시키기 위해 소의 목에 채워서 줄에 연결된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는 기구입니다. 아직 부리지 않고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를 선택하게 한 것은 속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일을 한 번도 시키지 않은 암송아지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물이 항상 흐르는 골짜기로 가서 목을 꺾으라고 한 것은 송아지의 피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가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고 한 것은 송아지의 목을 꺾을 때 불가불 땅에 흘려 스며든 피가 사람들이 경작하므로 말미암아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여 발견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송아지의 목을 꺾으라고 한 것은 대속 제물이 송아지의 피를 흘리기 위함입니다. 피를 흘린 것은 죄의 값은 죽음이고 죽음은 피 흘림으로 증명되었고 그 피 흘림이 죄 값을 치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롬6:23, 레17:21, 히9:22). 곧 송아지가 피를 흘려 죽게 된 것은 피살한 살인자를 찾지 못할 경우 그 가까운 성읍 사람들이 담당하는 것인데 그 송아지가 그 성읍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인자의 처형하므로 죄를 제거하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창9: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여 자기를 섬기게 하고 또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레위 자손 제사장들’은 레위지파 가운데 고핫 자손으로서 하나님이 제사 사역을 위해 제사장으로 세운 자들입니다 (출28:38, 레10:7, 민18:1). 그들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는 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성결을 위해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소송이나 투쟁 등 법적인 문제까지도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입니다. 그들도 속죄 의식 현장으로 가게 한 것은 그들이 배석하여 참관하게 하기 위함이고 그들이 참관하게 한 것은 속죄 의식의 유효성을 위함이었습니다.
피살체가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않았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8절). 장로들이 죽임을 당한 송아지 위에 손을 씨는 행위는 성읍 백성들을 대표하여 행하는 행위로서 자신의 성읍 백성들은 피 흘린 일에 대해 무죄함을 선포하는 상징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성읍 장로들의 고백은 성읍 백성들이 살인을 하지 않았고 살인을 한 자도 알지 못한다는 결백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곧 불의하게 살해당한 자의 피(죽음)에 무관하다는 것을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속하여 해방시켜 주신 백성을 용서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없애달라는 간구입니다. 곧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죽인 죄에 대한 책임을 가장 가까운 성읍 백성들이 지게 되었는데 그 성읍 백성들의 죄책을 짊어진 송아지가 대신 피 흘려 죽어 죄 값을 치르니 성읍 백성들의 죄책을 없이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장로들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성읍 백성들의 죄책을 용서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제하라고 했습니다 (9절).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이며 그렇게 함으로 무죄한 자를 피 흘려 죽게 한 죄책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본 규례에서는 자기 성읍 관할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죄책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그 죄책은 그 성읍이 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면 그를 처벌하면 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때는 미제로 남겨두지 말고 그 성읍 전체가 죄책을 지고 속죄 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신앙공동체에서는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마23:35). 정확한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는 경우에는 공동체 모두가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송아지가 성읍 백성들의 죄책을 대속한 것 같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사53:4-6, 벧전2:24, 엡1:7).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기도를 해야 합니다.
2.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례 (10-14절)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 그들을 사로잡았을 때 만일 그 포로 중에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아내로 삼고자 할 때 규례입니다 (10-11절). 이는 가나안 땅에 거하는 족속이 아닌 가나안 땅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 성읍에 사는 족속들과 전쟁을 했을 때를 말합니다 (20:15).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족속과 전쟁을 할 때는 성인 남자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진멸하라고 했지만 그 외의 이방인 족속과 전쟁을 할 때는 성인 남자는 죽이나 여자와 아이들은 포로로 사로잡아 올 수 있었습니다 (20:13-17). 뿐만 아니라 결혼에 있어서도 가나안 족속의 여자와는 금했으나 (7:3) 그 외의 이방인 족속의 여자와는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창41:45, 민12:1, 룻4:13). 그래서 가나안 족속 이외의 다른 이방 족속과 전쟁을 했을 때 포로로 사로잡아온 여자와도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의 여자와 결혼을 할 경우는 우상숭배에 물들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고 그 외의 이방인 족속이면서 전쟁에서 사로잡아온 여자와 결혼을 할 경우는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아닌 다른 이방인 족속과의 전쟁에서 사로잡아온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할 때는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아내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정해진 규례를 따라 성결을 유지하게 한 다음에 아내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의복을 벗고 그 부모를 위해 1달간 애곡하라고 했습니다 (12-13절).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의복을 벗으라고 한 것은 이방인의 신분과 습관과 태도를 버리고 이스라엘인의 신분과 습관과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 1달간 애곡을 하게 한 것은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떠난 슬픔을 정리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결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받아들이면 아내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살다가 그 여자를 기뻐하지 않으면 그 여자의 마음대로 가게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를 욕보였으니 종으로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14절). 부부로 사는 도중에 헤어지기를 원하면 그가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잘 대우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결코 노예처럼 돈을 받고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여자는 포로로 잡혀와 적군이었던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을 텐데 같이 살다가 다시 버림받는 것은 큰 상처일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게 된다면 그는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사로잡아 온 여자이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진 여자라 할지라도 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할 것을 시사한 것입니다. 어느 때에나 약한 자의 인권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약점을 이용하여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3. 장자 상속권에 관한 규례 (15-17절)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한 남편이 두 아내를 두어 미워하는 아내가 먼저 아들을 낳고 사랑하는 아내가 그 다음에 낳았을 경우 미워하는 아내가 낳은 아들이 장자(長子)이고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아내가 차자(次子)인데 소유를 기업으로 줄 때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차자를 앞세워 그에게 장자 몫을 주고 미워하는 아내가 낳은 장자에게 차자의 몫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그에게 자기 소유의 두 몫을 주고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을 차자로 여겨 소유의 한 몫을 주라는 것입니다 (15-17절). 남편이 감정적인 이유 때문에 장자권의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다처제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2:24), 그런데 아브라함 때 언약적 상속자를 낳기 위해 아내 더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도 부족이 유랑을 하면서 전투나 유목을 위해 아들의 수를 늘리려고 아내를 더 두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쨌든 족장시대부터 시작되어온 일부다처제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당시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둘째 이상의 아내는 파혼하라고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그대로 둔채 그대로 두었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을 수 있는 작은 문제들을 규례로 규정한 것 같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다처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장자 상속권에 대한 규례를 정하신 것입니다. 일부다처제에서 마음의 감정 문제 때문에 장자 상속권의 원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이 장자를 미워하는 아내의 아들이라고 해서 장자권을 박탈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규례는 가정의 질서를 위한 규정이기도 하지만 장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의미도 갖고 있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때라도 외적 조건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박탈시켜서는 안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실시되었던 연좌제(緣坐制) 같은 원리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을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4. 불효자에 대한 규례 (18-21절)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아버지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부모가 징계해도 순종하지 않거든 처벌을 하라고 했습니다 (18절).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 거역하고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타락한 불효자를 말합니다. 불효의 행동은 인륜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행위였습니다 (잠30:17).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고 하나님이 부모에게 준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행위였습니다 (출20:12, 신5:16, 엡6:1-3).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는 신성모독 행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불효자는 그의 부모가 그를 성읍으로 끌고 가 성읍 장로들에게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고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악을 제거하면 그러면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9-21절). ‘성읍’은 성문의 재판장소를 말합니다 (창19:1). ‘장로들’은 성읍 백성들의 대표자들로서 백성들 간의 분쟁 문제를 재판하여 해결해주는 자들입니다. 부모는 불효자를 공식적인 재판을 신청하고 장로들은 공개적인 재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판결이 나면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사형 집행 후 성읍 장로는 ‘어느 날, 어느 법정에서, 어떤 이유로, 누구의 아들을 돌로 쳐 죽였다’는 글을 써서 전국에 회람시키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Matthew Henry). 그런 단호한 처벌은 악을 제거하는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악을 제재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거역하거나 방탕하거나 술에 취하는 것을 제재하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 질서가 파괴되지 않게 했습니다.
5. 시체 처리에 관한 규례 (22-23절)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여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22-23절). 처형당한 자의 시체를 또 다시 나무 위에 매달아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죽은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더하고 다른 사람에게 죄행에 대한 엄한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창40:19, 민25:4). 그렇지만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의식법상 시체는 그 자체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더욱이 가증한 죄로 처형당한 시체는 더욱 부정하게 간주되었습니다. 혐오스런 가증한 죄를 지은 자는 사형시켜 나무에 게시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정한 시체가 밤새도록 방치되는 것은 그 땅이 더럽혀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무에 매단 시체는 밤까지 방치하지 말고 속히 땅에 묻어서 그 부정함을 제거하게 한 것입니다.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를 하게 한 이유는 그대로 두면 땅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이고 그것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3절). 갈라디아서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는 본문 신명기21:22-23을 인용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가증한 죄를 지은 자를 돌로 쳐 죽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욕과 수치를 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나무에 매달게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저주 받은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내용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과 연관시켜 예수님의 죽음을 저주를 받아 죽은 죽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흉악한 죄인인 우리가 율법의 정죄와 저주로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짊어지고 우리의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저주받은 죽음을 죽어야 할 자리에서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셔서 죄 값을 치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용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율법의 정죄와 저주를 대신 받아주셨기 때문에 그 대속의 은혜로 우리가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벗어나 살게 된 것입니다.
<結言>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가 저주받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고 했습니다. 이사야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교만 때문에,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의 거룩하지 못함 때문에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