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신명기27:1-26
<題目> 복과 저주의 의식
<序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3차례에 걸쳐 설교를 했습니다. 그 중에 1차(1:1-4:43)와 2차(4:44-26:19) 설교를 마치고 3차(27:1-34:12) 설교를 시작하게 됩니다. 1차 설교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광야생활에서 겪은 내용을 상기시킨 것이고, 2차 설교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율법적 규례를 가르친 내용이라면, 3차 설교는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순종하므로 복을 받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장은 3차 설교의 서두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행해야 할 2가지 규례를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돌비와 돌단에 대한 지시(1-10절), 복과 저주를 선포할 것에 대한 지시(11-2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돌비와 돌단에 대한 지시 (1-1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산에 돌비를 세우고 돌단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요단강은 북쪽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 바다까지 약 385km(직선거리는 약 125km)를 흐르는 강으로서 서쪽 가나안 땅과 동쪽 이방 지역의 경계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 있기 때문에 요단강을 건너 서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요단강 서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에발 산에 돌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에발 산(Mt. Ebal)은 요단강 서편 예루살렘 북쪽 약 65km 지점에 있는 세겜 성 부근에 위치한 산인데 해발 940m 가량 된 산으로서 초목이 거의 없는 바위산입니다. 에발 산은 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를 선포하는 산입니다. 그 에발 산에 돌비석을 세우고 제단을 쌓게 한 것(2-7절)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초래될 저주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고 죄와 저주가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속함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Keil).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①돌비를 세우고 율법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1-4,8절).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들에게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고 명하면서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에 에발 산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고 거기에 율법의 모든 말씀을 분명하게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4,8절).
오늘날처럼 책이 없었던 당시에는 돌에다가 글을 새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에발 산에 큰 돌들을 많이 세우고 그 돌들에 석회를 발라 거기에다가 율법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돌에 석회 반죽을 바르게 한 것은 글을 새기기 좋고 새긴 글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거기에 모든 율법을 기록하라 한 것은 율법의 핵심이 되는 조항을 모두 기록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돌을 세워 율법을 기록하게 한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상기시키는 의미가 있고, 들어가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땅으로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심을 선포하는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 법을 항상 보면서 잊지 않고 지키게 하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목축과 농사가 잘되는 땅에 들어가 복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하나님에 세운 질서를 존중하고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령님을 통해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기억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8:10). 성령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마음에 확신시키십니다. 요한복음16:13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사역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항상 말씀을 깨닫고 묵상하고 적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삶의 영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약속한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풍성하게 주십니다.
②돌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5-7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위해 제단 곧 쇠 연장을 대지 않은 다듬지 않은 돌로 돌단을 쌓고 거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5-7절). 에발 산에 돌비들을 세워 율법을 기록하게 했었는데 그곳에 돌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번제’(燔祭)는 생축을 모두 살라드리는 제사로서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레 1장). ‘화목제’(和睦祭)는 생축의 일부만 살라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자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로서 화목과 친교를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레 3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 은혜로 즐거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단을 쌓을 때 돌단으로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5절). 출애굽기20:25에도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제단을 쌓기 위해 돌단을 쌓을 때 망치나 정 등의 철 연장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을 때 돌을 보기 좋게 철 연장으로 다듬지 말고 자연석으로 쌓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좋도록 꾸미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신 대로 순수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철 연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쟁기나 삽이나 괭이나 도끼나 망치나 정 등의 기구를 만들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야 했습니다 (삼상13:19-20). 그러기에 철 연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방으로 갈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이방 사람들의 세속적이고 인본적인 방법을 배워 사용할 가능성이 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제사를 하기 위해 제단을 쌓을 때 그런 방법을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무엘하6:1-11에 보면 후에 다윗왕이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었던 법궤를 옮기다가 실패한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왕은 법궤가 바알레유다(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다윗성(예루살렘)에 처소를 마련하고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앞에서 아비나답의 아들 아효가 소를 몰고 뒤에서 웃사가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흔들렸고 따르던 웃사가 법궤를 붙들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치시므로 즉사했습니다. 다윗왕은 법궤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갔습니다. 율법에 법궤는 아론의 후손 고핫 자손 제사장들이 메도록 했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고 새 수레에 실어 소로 하여금 끌게 했기 때문입니다. 새 수레에 실어 소로 끌게 한 것은 아마도 운반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거나 사람들이 보기에 좋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교회가 순수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예배가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의해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영과 진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εν 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in spirit and in truth -KJV)로서 ‘성령과 진리로’ ‘성령과 진리 안에서’ 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예수님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말씀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16:13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인본주의적이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건물과 운영에 있어서 세속적이고 우상적인 부분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신앙이 그와 같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9-10절에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정치지도자인 모세가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들과 함께 주의를 기울여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오늘 명령한 명령과 규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아브라함 때부터 선택을 받았지만 실제로 출애굽 초기에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출19:5-6). 이제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령’(מצוה)은 율법의 핵심 사항을 말하고, ‘규례’(חק)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은 법규를 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백성의 의무는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2. 복과 저주를 선포할 것에 대한 지시 (11-26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세겜에 있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언약을 새롭게 하는 의식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른바 축복과 저주의 선포식을 하게 했습니다. 이 명령은 11:26-29에 한 명령인데 27:11-26에서 재차 언급했습니다. 실제로는 여호수아 때에 여호수아8:30-35에서 준수하게 됩니다.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요단을 건넌 후 가나안 땅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라고 했습니다 (11-13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별로 6지파씩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축복과 저주 선포식을 통해 언약을 새롭게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세겜에 있었는데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65km 지점에 있습니다 (창12:6). 세겜에서 보면 그 뒤로 좌우 양편에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습니다. 그리심 산은 해발 919m의 높이이고, 에발 산은 해발 854m입니다.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위해 서고 에발 산에는 저주를 위해 서라고 했습니다 (12-13절). 11:29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6지파씩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서고 제사장이 중심이 된 레위 사람들이 두 산 중간에 서서 율법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사람들이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리심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고,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면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게 했습니다. 같은 율법을 한 번은 축복의 약속으로, 한 번은 저주에 대한 경고로 선포했을 것입니다 (Matthew henry). 한 번은 '너희가 하나님만을 섬기면 복을 받으리라' 했다면 한 번은 '너희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저주를 받으리라'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 율법마다 축복을 선포할 때는 그리심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고 저주를 선포할 때는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이 '아멘'하게 한 것입니다.
왜 그리심 산이 복의 산으로 선정되고 에발 산이 저주의 산으로 선정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자연경관이 그리심 산은 숲이 울창하기 때문이고 에발 산은 수목이 거의 없는 황폐한 바위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Strauss, Raumer, Voelter). 둘째, 위치상 그리심 산은 햇빛이 들기 때문이고 에발 산은 항상 그늘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Schultz, Keil). 셋째, 성경 용례상 해가 뜨는 동쪽에서 바라볼 때 그리심 산은 오른 쪽에 있고 에발 산은 왼쪽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25:33,34,41).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진을 보면 의문이 듭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가나안 당 중심부에 있고 아브라함이 약 700년 전에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해 하나님께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지점으로서(12:6-7)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두 산이 한 장소에 있어서 복과 저주에 대해 선포하기 좋은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포의 장소를 두 산으로 정하되 복과 저주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데에는 세 번째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심 산에는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 지파가 서고, 에발 산에는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 지파가 서게 했습니다. 그리심 산에 선 지파는 야곱의 정부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의 후손들입니다 (창29:31~30:24, 35:16-18). 그 중에서 레아에게서 태어난 장자 르우벤과 막내인 스블론 지파는 빠졌습니다. 그리고 에발 산에 선 지파는 야곱의 첩 빌하와 실바에게서 태어난 아들들의 후손들입니다 (창29:31~30:24). 거기에는 그리심 산에서 제외된 르우벤과 스블론 지파가 들어갔습니다. 르우벤 지파와 스블론 지파가 축복의 산 그리심 산에서 제외되어 저주의 산인 에발 선에 서게 된 것은 르우벤은 레아의 장자이지만 서모 빌하를 범한 자이기 때문이고 (창35:22, 49:4, 대상5:1) 스블론은 레아의 막내 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Keil, Lange). 하지만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이 실제로 복을 받는 지파들이거나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이 실제로 저주를 받은 지파들은 아닙니다.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 가운데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야곱의 저주를 받은 지파이고 에발 산에 선 지파들 가운데 단과 아셀과 납달리 지파는 야곱에게 축복을 받은 지파입니다. 다만 축복의 산에 선 지파는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상징이고 저주의 산에 선 자들은 율법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상징일 뿐입니다. 당시 언약적 관념으로 볼 때 적자가 서자보다 앞섰기 때문에 주로 적자들이 축복의 산에 서고 서자들이 저주의 산에 서게 한 것 같습니다 (Keil & Delitzsch).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스라엘 12지파가 6지파씩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서게 하고 레위 사람이 두 산 가운데서 큰 소리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14절). 이 ‘레위 사람’은 레위 지파 전체가 아니라 언약궤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중간에 서서 모세의 양 편에 갈라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레위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9절, 수8:33). 그런데 그들이 선포한 내용에서 축복의 선포는 빠지고 저주의 선포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먼저 축복의 내용이 선포되고 다음에 저주의 내용이 선포되는 식으로 되었을 것입니다 (Matthew Henry). 축복의 내용으로 선포되면 그리심 산에 선 자들이 ‘아멘’하고 저주의 내용이 선포되면 에발 산에 선 자들이 ‘아멘’해야 했을 것입니다. ‘아멘’(אמן)은 말씀에 대한 응답형으로서 ‘선포된 말씀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에서는 모세는 저주의 내용만 지시했습니다. 아마 모세가 광야에서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의 본질상 죄성을 고려하여 그들의 불순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경각심을 주려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에게 외쳐 선포하게 한 율법은 모두 12가지였습니다.
첫째,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우상을 만들거나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5:8-10, 출20:4-6). 비록 은밀하게 은밀한 곳에 세운다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6절). 부모를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거나 모독하거나 경멸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1:18, 출20:12).
셋째,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7절). 이웃의 땅을 경계하는 표를 옮기거나 없애는 자는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자로서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9:14).
넷째,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 고대에는 환경, 질병, 전쟁, 가난 등의 영향으로 실명자가 많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하여 도움을 필요로 한 장애인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레19:14).
다섯째,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9절). 당시 객이나 고아나 과부는 가장 약하며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의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14:29, 16:11,14, 24:21, 26:12-13). 힘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판결하거나 억울한 판결이 나오도록 증언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 계모나 아버지의 첩을 범한 자는 아버지께 속한 하체를 드러낸 자로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2:30, 레18:8).
일곱째,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1절). 수간(獸姦)을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22:19, 레20:15-16).
여덟째,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2절). 근친상간을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레18:9).
아홉째,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3절). 아내의 어머니를 범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레18:17, 20:14).
열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4절). 이웃을 의도적으로 몰래 죽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살인 행위가 죄이지만 특히 암살은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인 살인행위로서 저주받을 죄라는 것입니다 (출20:13, 민35:16-21).
열한째,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5절). 돈을 받고 청부살인을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출20:13, 민35:16-21).
열둘째,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26절). 앞에서 선포하게 한 말씀 외에도 율법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은 목적이 있어 선택한 백성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 따라 은혜를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하십니다. 여호수아1:7-8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