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신명기32:1-52
<題目> 모세의 노래
<序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 앞까지 왔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넘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시점에서 모세는 과거에 광야에서 경험한 바를 토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안하게 되면 하나님을 배역하고 우상을 숭배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책을 기록하여 보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도 돌아오게 하기 위해 노래를 지어 가르쳤습니다. 그 노래가 1-43절의 내용입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교(1-18절),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의 심판(19-47절), 모세의 죽음 예고(48-52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교 (1-18절)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6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모세의 노래는 1-43절까지 이어집니다. 그 서두에서 모세는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해 하늘은 귀를 기울이고 땅은 들으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이슬처럼 맺히고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다고 했습니다 (1-2절). 모세가 하는 말이나 교훈은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 말씀의 중대성을 강도하기 위해 의인법(擬人法)을 사용하여 하늘과 땅에게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비처럼 내리고 이슬처럼 맺힌다고 했습니다. 비는 모든 동식물의 생명이 자라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비가 제때 내리지 않은 때에는 이슬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연한 풀과 채소 위에 가는 비 같고 단비 같다고 했습니다. ‘가는 비’에 해당하는 ‘세이림’(שעירים)은 이슬비(보슬비) 같이 가볍게 내리는 비를 가리키고, ‘단비’에 해당하는 ‘레비빔’(רביבים)은 소나기 같이 많이 내리는 비를 가리킵니다. 다양하게 내리는 비가 모든 식물을 자라게 하고 모든 동물에게 생명을 주듯이 하나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메마르고 삭막한 심령이 생명력을 얻게 하여 영혼이 소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하늘과 땅은 하나님께 위엄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다고 했습니다 (3-4절). ‘이름’은 그 대상의 존재와 성품 등이 대변되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전할 때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위엄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불변의 대상들이 다 보았으니 증인이 되어 함께 하나님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에게 안전하고 영원한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완전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으로 한 것이 때문에 불완전하거나 부족한 것이 없이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하시는 일의 원리와 방식과 양식이 공정하고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다고 했습니다. 공의로우시고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악을 행하니 하나님 자녀가 아니며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라고 했습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에게 이같이 보답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아버지이며 그들을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고 했습니다. 그가 그들을 만들고 그들을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5-6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악행을 하는 자들로서 하나님 자녀답지 못하고 마음이 삐뚤어진 패역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고 조성하고 선택한 분인데 그들은 어리석게 그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설명하고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 과거 역사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사랑과 은혜와 복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 아는 부모와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8-9절). 하나님이 모든 인종을 온 땅에 갈라 흩어지게 하고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거할 땅을 정해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거할 땅도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인종과 민족과 나라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인종과 민족과 나라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켰다고 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10-12절).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했습니다. 그 광야는 황무지로서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삭막하고 두려운 오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켰습니다. 눈동자는 인간의 신체 중 가장 귀중한 부분이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처럼 귀하게 여겨 에워싸 보호했습니다. 마치 독수리처럼 말입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이 보금자리인 둥지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 때 그 둥지를 어지럽게 휘저어 둥지에서 나와 날게 합니다. 새끼가 날면 그 위에서 관심 있게 너풀거리며 납니다. 그러다 새끼가 실수하거나 힘이 부쳐 떨어지게 되면 얼른 새끼 아래로 내려가 새끼를 등에 업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에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위험이 닥칠 땐 등에 업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친히 인도하며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했다고 했습니다 (13-14절).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애굽은 낮은 곳으로서 내려간다는 관념이 있었고 가나안은 높은 곳으로서 올라간다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창12:10, 26:2, 42:1-3).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는 바위에서 벌꿀을 따게 하고 돌들이 많은 곳에서 감람유를 얻게 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바위 틈에 벌들이 쳐놓은 벌꿀을 얻기도 하고 돌들이 많은 바위산에 감람나무의 열매를 통해 기름을 얻게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혹은 돌들이 많은 척박한 땅에서 종려나무의 열매와 감람나무의 열매를 통해 꿀과 기름을 얻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종려나무 열매는 마치 설탕에 재어놓은 것처럼 맛이 달고 그것으로 꿀(시럽)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짜서 기름을 내어 먹기도 합니다. 하여간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는 농사가 잘되어 농산물을 풍성히 얻게 된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소의 엉긴 젖’은 버터나 치즈를 말하고 ‘양의 젖’은 우유를 말하고 ‘어린 양의 기름’은 살찐 가장 좋은 어린 양에 대한 표현입니다. ‘바산’은 갈릴리 동북쪽 길르앗 이북에 위치한 고원지대입니다 (3:1). 그곳의 땅은 매우 비옥하고 목초지가 많아 가축 사역과 밀 경작으로 유명합니다.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는 말은 땅이 비옥하여 목축과 경작이 잘되어 풍성하게 먹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다고 했습니다.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귀신들에게 했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그들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을 낳은 반석을 상관하지 않고 그들을 내신 하나님을 잊었다고 했습니다 (15-18절). ‘여수룬’(ישרון)은 ‘옳은’ ‘곧은’의 뜻을 가진 단어의 음역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길을 가야할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자 자기들을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여겨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혐오스런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곧 귀신들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선택하고 구원하시고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잊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선택하고 구원하고 말씀의 은혜를 풍성히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속주의로 살아간다면 옳은 자라 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의 심판 (19-47절)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27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29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주지 아니하셨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으리요
31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아니하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다
32 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34 이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36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 또한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고 너희를 위해 피난처가 되게 하라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40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41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의 자녀가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보시고 미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이며 진실이 없는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19-20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여 자기 얼굴을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든 보호와 긍휼을 중단시키므로 재앙을 당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완악하여 신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아닌 것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으니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겠다고 했습니다 (21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신인동형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치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대상과 연애하므로 남편이 보복하려는 질투심을 가지는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질투한다는 것입니다 (출34:14, 수24:19). 그래서 이스라엘이 허무한 우상으로 하나님의 분노하게 했으니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어리석은 민족들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분노를 느끼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등의 이방 민족으로 그들을 치게 하여 분노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일어나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티도 불타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하나님의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라고 했습니다 (22-23절). ‘스올’(שאול)은 죽음, 무덤. 음부. 지옥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제 여기에서는 당시 죽은 자들이 간다고 생각하던 지하세계 곧 음부를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로 인한 맹렬한 심판이 땅 속 깊은 곳까지 미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노로 재앙을 내리되 마치 전사가 전통에서 화살이 다 떨어질 때까지 화살을 쏘는 것처럼 남김없이 분노의 재앙을 쏟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와 처녀도 백발의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24-25절). ‘붙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은 열병과 흑사병 같은 전염병을 가리킵니다. ‘들짐승의 이’는 맹수의 이를 가리킵니다. ‘기는 것의 독’은 뱀의 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밝힌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극심한 기근과 각종 전염병 그리고 처절한 전쟁입니다. 그래서 그런 재앙으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리라 했으나 혹시 하나님이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했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했습니다 (26-27절). 마치 강한 바람이 티끌을 사방으로 날려 흩어버린 것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여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원수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맹렬하게 치게 하여 흔적도 없이 멸망시켜 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염려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맹렬히 멸망시킬 때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신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이 힘이 강하고 전쟁에 능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고 생각할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원수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자기들이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고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그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않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내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하였겠느냐고 했습니다 (28-30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는 지각이나 분별력이 없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혜가 있으면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재앙으로 멸망당할 줄 알고 아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그들의 반석 곧 보호와 구원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들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대적들이 하나가 천을 감당하고 둘이 만을 감당할 정도로 강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들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않으니 우리의 원수들이 스스로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이며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했습니다.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며 독사의 맹독이라 했습니다. 그것이 내게 쌓여 있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하나님이 보복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환난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라고 했습니다 (31-35절) ‘그들의 반석’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믿는 이방 신들을 말합니다. ‘우리의 반석’은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방 신들은 하나님과 같지 않습니다. 이방 신들은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출8:16-19, 삼상2:2). 이스라엘 대적들도 그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출14:25, 민23:23, 수2:9-10, 삼상5:7). 그런데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독이 든 포도이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임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타락한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온갖 악한 죄악이 쓴 포도 같이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뱀의 독 같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쌓여 있고 하나님 곳간에 봉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온갖 죄악이 하나님 앞에 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악들을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할 환난이 속히 들이닥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라고 했습니다 (36절). ‘종들’은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이기 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갇힌 자나 놓인 자’는 모든 사람에 대한 히브리적인 격언입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가 거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멸망 중에 내버려 두지 않고 마침내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6:13).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이 일어나 돕게 하고 피난처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젠 하나님이 그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고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니 자기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늘을 향해 자기 손을 들고 자신이 영원히 살리라 말했다고 했습니다 (37-40절). ‘그들의 제물의 기름을 먹고 그들의 전제의 제물인 포도주를 마시던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던 우상을 말합니다. 우상들이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바치는 입장에서 보면 마치 먹는 것처럼 바쳤으니 그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던 신들 곧 자신들을 보호해 주리라 생각하고 제사와 제물을 드렸던 우상들에게 도와주어 피난처가 되어 달라고 해보라는 풍자적 표현인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철저한 심판을 받을 때 그들이 숭배하던 우상들이 그 재앙에서 벗어나도록 전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구해줄 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유일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결코 이스라엘을 자기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자기 손이 정의를 붙들고 자기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자기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이며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민족들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해 속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41-43절).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과 대적들의 처참함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을 맹렬하게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속죄하기 위해 그들을 처절하게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방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대적들에게 행한 공의로운 심판을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들에게 말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호세아’(הושע)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의 ‘예호슈아’(יהושוע)의 축약형으로서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민13:8,16). 여호수아는 이제 모세의 후계자로 위임을 받은 자로서(31:14) 모세와 함께 백성들 앞에 나와 1-43절에 나온 노래를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아마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장로나 관리들을 통했을 것입니다 (27:1).
모세가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일렀습니다. 오늘 증언한 모든 말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명령하여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헛된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45-47절). 모세가 1-43절에 언급된 ‘모세의 노래’를 전하기를 마쳤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 율법의 말씀을 잊지 말고 마음에 두어 자녀들에게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은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율법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서 그 말씀대로 살 때 그 날이 길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받아 누린다는 것입니다.
3. 모세의 죽음 예고 (48-52절)
48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52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이른바 ‘모세의 노래’(1-43절)를 지어 백성들에게 들려준 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모세도 그 산에서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48-50절). 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52절). 이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모세의 임종과 관련하여 볼 때 출애굽 40년(B.C.1406) 11월 말경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호르 산’(Mt. Hor)은 모세의 형 아론이 임종을 맞이했던 산입니다 (민20:28). 확실치는 않지만 가데스 근처 에돔 변경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바림 산’(Mt. Abarim)은 사해 동북편 모압 평원에 위치한 산맥으로서 요단강과 사해를 동쪽으로부터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민27:12). '느보 산'(Mt. Nebo)은 사해 동북편의 모압 평원에 있는 아바림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해발 802m입니다. 그 곳에서 내려다보면 가시거리가 100km나 되어 요단 강과 여리고 성이 보이고 청명한 날에는 예루살렘까지 보입니다 (Lange). 3:27에는 비스가 산이 나오는데 ‘비스가 산’(Mt. Pisgah)은 아바림 산맥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서 느보 산의 정봉으로 여겨집니다 (34:1). 하여간 하나님은 모세에게 느보 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는 하되 그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는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범죄한 까닭이라고 했습니다. 신 광야 가데스에서 므리바 물 사건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백성 중에 나타내지 않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1절). 하나님은 가데스에서 비록 원망하는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먹을 물을 주어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인도하는 분임을 나타내어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위에 명령하면 물이 나올 것이라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분을 내며 자기 의지대로 지팡이로 2번을 친 것입니다. 예전 신 광야의 르비딤에서 지팡이로 쳐서 물이 나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물을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물을 내어 준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물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민20:2-13).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40년을 지내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연단을 받은 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수르 광야와 신 광야와 바란 광야에서 광야생활을 한지 40년을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지도하고 가나안 땅 앞까지 인도한 자입니다. 예수님도 그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마태복음17:1-3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눅9:28-30).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변형된 모습으로 모세와 대화를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서의 대표자이고 엘리야는 예언서의 대표자입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대화를 하신 것은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가리키는 구원자임을 계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모세의 생애와 그가 전수한 율법이 자신의 구원 사역에 절대적인 요건으로 쓰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건입니다. 바울도 그에 대해 인정했습니다. 히브리서11: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세가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 백성과 고난을 받기를 더 좋아하고 애굽의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더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그 보다 더 큰 위로와 상을 주실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모세의 생애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하늘나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위로와 상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을 소망한 자였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게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교훈해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인지 알게 해 줍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개인의 공로에 의해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 약속과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해 줍니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는 율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반면에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는 복음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여호수아'(יהוש) '예수아'(ישוע) '예수'(Ιησουs)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것은, 율법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롬8:28, 3:20, 갈3:24-25).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세는 광야 40년의 고생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를 나타내는 데에 값지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3:23-29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를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들어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면서 다시는 그 일로 간구하지 말라고 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억울해 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인정하고 불평하거나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만 해도 족하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로 만족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느보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그렇게도 들어가기를 원하던 가나안 땅을 한참 바라본 후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습니다 ."슬프냐?" "아닙니다" "그러면 서러우냐?" "아닙니다" "그러면 분하냐?" "아닙니다" "내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냐?"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엎드려 있느냐?" "너무 행복해서입니다" "행복하다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하나님과 함께 했던 광야가 제게는 가나안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어보았겠습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손수 내주신 석간수를 마셔보았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매일 먹고 자던 광야가 제게는 바로 가나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이 세상에서 고생만 하다 갔다고 생각하지만 모세는 그 고생이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맞는다고 하면 모세는 광야 40년의 고생한 한을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며 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한도 하나님의 구원사적 의도를 생각하며 풀었을 것입니다.
<結言>
모세는 모압 평지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 앞까지 인도하는 것은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정착하게 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구원사 관점에서 보면 모세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생을 마찬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구원사에 쓰임받아 하나님께 인정받는 생애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