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예레미야애가3:1-66

<題目> 하나님 주권과 성품을 근거한 간구

    

<序言>

   본 장에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이 당한 고통과 탄원을 심도 있게 표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당한 고통을 민족이 당한 고통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탄원을 민족의 탄원과 동일시하였습니다. 곧 민족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을 나타내므로 민족의 고통을 드러내고 자신의 탄원을 나타내어 민족의 탄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구조는 예레미야가 겪은 고통(1-18),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인내(19-39),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권고(40-55)원수를 심판해달라는 호소(56-65) 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예레미야가 겪은 고통 (1-18)

 

   1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당한 자는 나로다

   2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10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3절에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당한 자는 나로다.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이 당한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나타냈습니다. 유다의 언약 공동체가 재난을 당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고 어둠 안에서 걸아가게 하신다는 것은 평안과 안정과 번영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재난과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 자주 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징벌하셨다는 것입니다.

 

   4-6절에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과 가죽과 뼈들이 상하게 했고 고통과 고난으로 에워쌌다고 했고 무덤 속 어두운 것에서 사는 것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했다는 것은 죽은 지 오래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한 상태에 있게 했다는 말입니다.

 

   7-11절에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고 했습니다. 사슬로 묶어 사방이 막힌 곳에 단단히 가두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유일한 출구조차 견고한 돌들이 쌓인 벽을 두어 도망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로도 도망하지 못하도록 에워싼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밤낮으로 부르짖어도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설사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고 할지라도 곰이나 사자가 기다리게 했다가 치우치게 하고 찢고 적막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치우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기본형 수르’(סור)잡아 찢다’ ‘제거하다의 뜻이 있고, ‘찢으시며에 해당하는 기본형 파사흐’(פשח)산산이 찢다’ ‘갈기갈기 뜯다의 뜻이 있고, ‘적막하게 하셨도다에 해당하는 기본형 솨멤’(שמם)넋을 잃게 하다’ ‘마비되게 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12-13절에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허리에 해당하는 키레아’(כליה)는 콩팥(신장)을 가리키는데 치명적인 급소를 의미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과녁으로 삼아 화살들로 자신의 급소를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통의 심각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14절에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까지 조롱을 당해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직후에 그다랴를 암살했던 이스마엘과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예레미야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애굽 행을 강행했던 자들이 예레미야를 조롱했습니다 (41-42).

 

   15-16절에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쓴 쑥을 먹게 하고 자갈로 이를 부숴뜨리고 자기를 재로 덮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당한 재난과 고통과 슬픔이 극에 달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17-18절에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평강’(שלום)은 평안을 말하며, ‘’(טוב)은 기쁨이나 형통이나 행복을 말합니다. ‘에 해당하는 네차흐’(נצח)는 목표나 용기 등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으로 하여금 평안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 고통에 빠지게 하여 형통함과 행복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표와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당한 재난과 고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극한 고통을 당하게 했기 때문에 스스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의 상황을 이용하여 유다 백성의 고통을 심도 있게 표현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당한 재난과 고통은 바벨론 군대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다 백성이 범죄하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의 정복 야욕을 징벌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이 극한 고통을 당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황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긍휼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인내 (19-39)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19-21절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당한 재난과 고통으로 극도의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재난과 고통으로 낙심과 절망에 빠져있었으나 그 일의 원인을 깊이 묵상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유다 백성이 범죄하고도 돌이키지 않아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의 정복 야욕을 징벌의 수단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근본적으로 그 재난과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재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것도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오히려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22-23절에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극한 재난의 고통 중에도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므로 유다 백성이 진멸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자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고, ‘긍휼에 해당하는 라함’(רח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하는 관대함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하여 소망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려 선택하여 언약한 자기 백성이 비록 범죄하여 징계를 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아주 진멸하여 버리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34:6-7, 30:1-11).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사랑과 애정을 생각하여 유다 백성을 아주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니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주의 성실하심이 크다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성실에 해당하는 에무나’(אמונה)는 하나님이 자기 언약 백성에게 가지신 성실함으로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사랑과 긍휼이 진실할 뿐 아니라 자기 백성에 대해 약속한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 신실함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비록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징계했지만 유다 백성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으며 유다 백성에게 가지신 선한 목적을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을 확신하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여 구원을 받게 한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로마서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고, 로마서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1:4-5). 또한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로마서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8:28).

 

   24-25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고 했습니다. ‘기업에 해당하는 헤레크’(חלק) 몫을 가리키는바 자기에게 할당된 몫(portion)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는 하나님이 친히 생활의 근거가 되어준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18:20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실 때 다른 지파들에게 땅을 각 할당하여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지만 아론의 후손인 레위지파에게는 제사장적 사역에 전무하게 하기 위해 땅을 할당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 기업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레위지파의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친히 책임진다는 보장을 해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존과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고 유다 백성의 생존과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기업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을 바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자에게나 영혼들에게 선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기다리는 자에게 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에 해당하는 토브’(טוב) ‘좋은의 뜻으로서, ‘여호와는 선하시도다하나님이 언약 백성에 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주시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생존과 생활을 친히 책임지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게 하시는 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가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로마서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현실에서 위기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34:8-10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시편146:5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했고, 아모스5:4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26-28절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חסד) 긍휼(רחם)이 무궁하시고 성실(אמונה)하시고 (טוב)하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이 구해주시기를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원은 죄에서 구원하는 복음적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 고통에서 건지는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는 말은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바란다는 의미도 있고 참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의미도 있고 인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해 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구해 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해주실 때를 소망하며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멍에’(על)는 짐승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쟁기나 수레를 연결하여 목에 채우는 도구입니다. 여기에서는 재난으로 인한 곤경이나 고통을 상징으로 사용한 말입니다. 그 멍에는 젊었을 때에 메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힘이 있을 때로서 시련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처럼 시련을 잘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웠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범죄하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기 위해 바벨론 군대의 정복 야욕을 이용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로 인하여 살육과 약탈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재난의 고통이 온 것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하에 온 것이니 그 재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그 재난으로 인한 고통은 하나님만이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가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성실하심과 선하심을 근거로 잠잠히 하나님이 구해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30:15).

 

   유다 백성이 당한 재난은 처참했습니다. B.C.586년에 유다왕 시드기야 때에 유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은 당시 메소포타미아(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지역에서 일어난 고대 제국으로서 세력을 점차 확대하여 서진을 하면서 유다 예루살렘을 침략했습니다. 그 때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림나에 머물며 느부사라단을 보내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성을 약 3년 동안 포위하고 있다가 점령을 했습니다.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 보물들을 약탈하고 왕궁과 성전을 불태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지도자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시드기야왕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을 죽이고 두 눈을 빼서 놋 사슬로 묶어 끌고 갔습니다 (왕하25:1-21, 대하36:11-21). 예루살렘에는 전염병이 돌았고 심한 기근이 계속되었습니다. 죽임을 당하거나 사로잡혀간 자들 외에 남은 자들의 고통도 말로 다할 수 없이 컸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당시 참상을 표현한 내용입니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보물로 먹을 것을 바꾸고 탄식하며 양식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1:11).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고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4:4).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하고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2:11-12). 여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2:20). 4:10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 비참한 참상을 보면서 매일 밤낮으로 눈물이 물같이 흘러내리고 눈물로 인하여 눈이 상한다고 했습니다 (1:16). 창자가 끊어지고 간이 땅에 쏟아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12:11). 살이 쇠하고 뼈가 꺾이고 몸이 찢기고 쏘는 화살이 허리(신장)에 박힌 것 같다고 했습니다 (3:4,11-13).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자주 책망하며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켜 돌아오게 하려고 징벌을 했습니다. 당시 세계 패권을 가졌던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정복 야욕을 가지고 주변국들을 침략하여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유다 백성을 바벨론 군대의 정복욕을 이용하여 징계한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적으로는 바벨론 군대가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고통을 당하게 한 것입니다. 재난의 고통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2:21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3:1). 3:42-43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4:11). 재난의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하나님만이 재난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구원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재난을 거두어 재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고 했습니다. 본문 3: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은 죄에서 구원하는 복음적 의미의 구원이 아니라 고통에서 건지는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는 말은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바란다는 의미도 있고 참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의미도 있고 인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해 주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구해 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해주실 때를 소망하며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에 두었습니다. 3:22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3:32). ‘인자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고, ‘긍휼에 해당하는 라함’(רח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하는 관대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범죄함에 대해 징계하므로 고통스럽게 하기는 하지만 그의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한 연민을 가지고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관대하게 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아주 망하도록 내버려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3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생과 근심을 하게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시켜 바로 세워 복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생은 하게 하지만 아주 망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재난의 고통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일어난 것입니다 (3:38).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6:1). 그리고 하나님은 선택하여 구원을 받게 한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로마서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로마서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1:4-5). 그러므로 고난 중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로 전적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이 구해주시기를 바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29-30절에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혹시 소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입을 땅의 티끌에 대라는 것은 입이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라는 말로서 하나님께 깊은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라는 것은 혹시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실 희망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대라고 했습니다. 치욕으로 배불리라고 했습니다. ‘배불릴지어다에 해당하는 사바’(שבע)충분하다’ ‘만족하다의 뜻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모욕과 학대를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31-33절에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했습니다. 세 절 모두 ‘···때문에’ ‘···이므로’(For)의 뜻을 가진 접속사 ’(כי)로 시작합니다. 이는 재난의 고통 중에서도 혼자 앉아 잠잠하며 입을 땅의 티끌에 대고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 대어야 하는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28-30). 절망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근거와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에 대해 징벌하시지만 영원히 버리지는 않는 분이기 때문에 소망 중에 인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103:9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근심하게 하시나에 해당하는 기본형 야나’(ינה)슬프게 하다’ ‘근심하게 하다’ ‘괴롭게 하다등의 뜻입니다. ‘인자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가지신 절대적인 사랑을 말하고, ‘긍휼에 해당하는 라함’(רח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하는 관대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범죄함에 대해 징계하므로 고통스럽게 하기는 하지만 그의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의한 연민을 가지고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관대하게 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고생과 근심을 하게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시켜 바로 세워 복 받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생은 하게 하지만 아주 망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4-36절에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고 했습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는 대리자 역할을 하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재판을 공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힘없고 약한 자들에게 재판을 굽게 하여 억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지 않는 행위하는 것입니다.

 

   37-39절에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고 했습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면 능히 말하여 이룰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거나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생사화복이 지존하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루러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으니 어찌 원망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이므로 징벌로 인한 고통에 대해 다른 대상이나 환경에 대해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기 죄 때문에 온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곧 재난의 고통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온 것이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암시한 말입니다.

 

 

        3.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권고 (40-55)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42 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43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44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45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에서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으므로

   46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47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

   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50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

   51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52 나의 원수들이 이유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53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54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40-41절에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이 당한 재난으로 인한 고통은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 때문에 징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행위들을 조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들을 찾아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나님께 들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안 될 줄 알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호세아6: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42-47절에 우리의 범죄함과 우리의 반역함을 주께서 사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뭇 나라 가운데에서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우리에게 임하였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악을 용서해 주시지 않고 진노로 추격하여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매섭게 징벌하신 사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름으로 자신을 가려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뭇 나라 가운데 쓰레기와 폐물로 삼았으므로 원수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으시고 기도를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완전히 패망하여 황폐화되므로 폐물이나 쓰레기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대적들은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두려움과 함정(구덩이)과 파멸(폐허)과 멸망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48-50절에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눈물이 시내처럼 그치지 않고 흐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피시고 돌아볼 때까지라고 했습니다. 극도의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51-55절에 나의 성읍의 모든 여자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하는도다. 나의 원수들이 이유없이 나를 새처럼 사냥하는도다.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 물이 내 머리 위로 넘치니 내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제는 멸절되었다 하도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고 했습니다. ‘여자에 해당하는 바트’(בת)는 딸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는 처녀들이 고난을 당하는 참담한 상황을 보면서 눈물을 너무 흘려 쇠약한 눈 때문에 심령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원수들이 이유없이 자기를 새처럼 사냥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생명을 끊으려고 구덩이에 넣고 돌을 던진다고 했습니다. 물이 머리에 위로 넘쳐 이제는 멸절되었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왕 때 시위대 뜰의 구덩이에 던져져 죽을뻔 한 경험을 했습니다 (38:6). 아마 예레미야는 그 때를 연상하면서 현재의 유다 백성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그처럼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4. 원수를 심판해달라는 호소 (56-65)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60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

   64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56-57절에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경험을 근거로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38:9). 전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내가 도와 줄 것이니 나의 도움을 확신하라는 의미입니다.

 

   58-60절에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에 대적들로부터 부당한 위협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므로 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추억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구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61-63절에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대적들이 종일 모해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고 보응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대적은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이방민족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64-66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고 했습니다. ‘거만에 해당하는 메기나’(מגנה)는 완고를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고하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천하에서 멸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바벨론 제국의 정복욕을 이용했지만 바벨론 제국의 왕과 군대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자기들의 정복욕으로 행한 것입니다. 그들이 유다 백성에게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너무 잔인하게 고통을 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공의로 심판해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結言>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당한 재난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성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했고 또한 대적들을 공의로 심판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믿고 구원을 간구해야 합니다. 시편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