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예레미야애가4:1-22
<題目> 예루살렘의 상태와 미래
<序言>
예레미야는 전 장에서 유다 공동체가 당한 재난의 고통에 함께 참여한 자신의 상태를 깊이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잘 표현하므로 유다 공동체가 당한 참담한 고통을 깊이 묘사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본 장에서는 유다 백성들의 끔찍한 참상을 좀 더 깊이 묘사하였습니다. 내용구조는 예루살렘 거민의 비참한 상태(1-10절), 종교 지도자들의 죄(11-16절), 유다 백성들의 헛된 소원(17-20절), 에돔의 심판(21-22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예루살렘 거민의 비참한 상태 (1-10절)
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7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8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9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1-2절에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라고 했습니다. 금과 순금은 보배로운 것들인데 그것들이 빛을 잃고 변질되었다는 것은 보배로운 것이 값어치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성소의 돌들은 존귀한 것들인데 거리 어귀들에 쏟아졌다는 것은 존귀한 것이 하찮은 것으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온의 아들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시온의 아들들’은 유다 백성 곧 예루살렘 거민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순금같이 보배로운 존재들이 질항아리처럼 값어치가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5절에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고 했습니다. 들개들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데 유다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타조는 알을 낳자마자 내팽개치는 무정한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자녀에게 먹일 것이 없어서 먹이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었고 어린 아들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미가 젖먹이에게 젖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 못해 아이의 혀가 입천장에 붙은 것처럼 입이 말랐다는 것이고 부모가 어린 아이들에게 먹을 떡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0절에는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다고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붉은 옷을 입고 자란 자들은 부족함이 없이 부요한 집에서 자한 자들을 말합니다. 부요한 자들이 이젠 거리에 나아 앉았고 쓰레기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 예루살렘 거민이 얼마나 큰 기근에 허덕였는지 보여주는 표현들입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보낸 장수 느부사라단의 군대가 3년 동안이나 포위하고 있다가 점령을 했습니다 (왕하25:1-21, 대하36:11-21). 그러기 때문에 포위된 기간부터 시작하여 점령당해 황폐화된 이후에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한 기근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6절에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고 했습니다. 족장 아브라함의 시대에 소돔성은 죄악이 관영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파괴된 성읍입니다 (창19:1-29, 유1:7). 그런데 그 소돔성의 죄와 죄악보다 유다 예루살렘성의 죄와 죄악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돔이 일시에 멸망하여 소돔 거민들이 당한 고통보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지속적으로 당한 고통이 더 큰 것을 보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소돔 거민보다 예루살렘 거민의 죄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소돔 거민보다 예루살렘 거민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꼭 사실적 비교보다는 예루살렘 거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7-8절에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존귀한 자들’은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산호’에 해당하는 ‘파닌’(פנין)은 루비로서(Calvin) 붉은색을 띤 투명 광물(보석)을 말합니다. 사회의 지위와 특권을 누리던 지배계층에 있던 사람들은 몸이 깨끗하고 피부가 희고 얼굴이 윤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자들까지도 살이 뼈에 붙어 몸이 막대기 같이 마르고 얼굴이 숯처럼 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누구도 알아볼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9-10절에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고 했습니다. 칼에 죽은 자들이 굶주려 죽은 자들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토지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이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해 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찔림 받은 자들처럼’에 해당하는 기본형 ‘따카르’(דקר)는 ‘찌르다’ ‘굶주리다’ ‘상하다’ 등의 뜻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굶주림이나 상함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기아 상태로 굶주려 죽어가는 고통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유다 예루살렘의 거민이 멸망할 때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저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3년 동안 포위했다고 점령했습니다 (왕하25:1-21, 대하36:11-21). 그러기 때문에 포위 되어있는 기간에도 기근에 허덕였을 것이고 멸망당해 황폐화 되었을 때도 기아에 허덕였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해 자녀들이 죽어가도록 내벼려 둘 수밖에 없는 비참함이 있었을 뿐 아니라 (3-4절, 2:11-12) 심지어는 부녀들이 자기 자녀를 삶아 먹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북이스라엘이 아람의 침공을 받았을 때도 있었습니다 (왕하6:24-29). 그런데 그 부녀들이 악한 부녀들이 아니라 자비로운 부녀들이라고 했습니다. ‘자비로운’에 해당하는 ‘라헤마니’(רחמני)는 ‘동정심 많은’ ‘인정 많은’ 뜻으로서, ‘자비로운 부녀’라 한 것은 모성애가 강한 부녀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곧 악한 부녀이기 때문에 자녀를 삶아 먹은 것이 아니라 모성애가 강한 부녀들이었지만 자녀를 삶아 먹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근과 기아가 극에 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묘사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을 경고했었습니다 (렘19:9).
예수님은 종말에 처처에 기근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7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종말에도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요한계시록6:5-6에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검은 색은 비애와 기근의 색이며 검은 말을 탄자가 저울을 가졌다는 것은 식량을 통제하여 배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되이며 보리 석 되라는 것은 장정의 하루 품삯으로 밀 한 되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당시 시세로 볼 때 12-16배에 달하는 시세입니다. 당시 가부장적 사회로서 한 가정이 10여명의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밀 한 되로 한 가정이 도저히 하루의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인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로 기근 상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에스겔은 에스겔5:10에서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고도 했습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한 것은 그것들은 당시 팔레스틴에서 곡식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에는 양식의 기근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의 기근도 있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아모스8:11-13에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고 했습니다. 말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희귀해집니다. 그래도 감람유가 상징하는 성령의 내주(고후1:21-22, 눅4:18)와 포도주가 상징하는 구속 진리(사55:1)에 대해서는 없애지 않는다는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는 영적 양식인 말씀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적용할 수 없는 영적 기근을 가장 참담한 상태로 인식해야 합니다.
2. 종교 지도자들의 죄 (11-16절)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1-12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재난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분을 내어 진노를 쏟았다는 말은 재난의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한 말이며 시온에 불을 질러 그 터까지 사르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징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성이 이렇게 대적들에게 점령당해 철저히 파괴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13-14절에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유다 예루살렘이 대적들에 의해 철저히 멸망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죄와 죄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의인들을 공개적으로 핍박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죽이려 했습니다 (렘18:18, 26:8). 그들은 거리에서 맹인처럼 방황하고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의인들을 죽인 피로 온 몸의 옷이 피투성이가 된 채 거리를 헤매는데 누구도 그 옷을 만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의인들을 핍박한 죄악이 얼마나 큰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15-16절에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의인들을 죽인 피에 젖은 채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너희는 부정하니 가라’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달아나 있을 곳을 얻지 못하여 방황할 때 이방인들도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고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의인들을 핍박하여 죽인 죄로 자기 백성에게도 배척을 당하고 이방인들에게도 추방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장로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높이지 않고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 전체를 징벌하는 가운데서도 종교 지도자들을 징벌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사역을 바로 해서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살게 해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 위치와 권한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사욕을 채우는데 바빴습니다 (렘6:13-15, 23:11,30, 27:10, 겔13:19, 22:25-26). 그러면서 오히려 정권과 야합하여 백성들에게 바른 말씀을 전해주는 의로운 선지자들을 핍박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렘18:18, 26:8). 그것은 의로운 자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잘못된 정체와 행위가 드러나고 백성들이 자기들의 인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분노하여 징벌한 것입니다. 모든 위치와 권한을 빼앗고 자기 백성들과 이방 백성들에게까지 버림받게 한 것입니다. 신앙적인 리더 위치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버림을 받게 됩니다.
3. 유다 백성들의 헛된 소원 (17-20절)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17-18절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재난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다음에도 여전히 사람의 의지하고 사람의 도움을 바랐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도움을 기대했고 애굽으로 피신하기까지 했습니다 (렘 43장).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들의 날수가 다하여 끝 날이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한탄했습니다.
19-20절에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바벨론 군대를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독수리의 특징은 민첩성과 공격성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독수리처럼 빨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뒤쫓으며 잡았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성이 함락될 때 유다 왕 시드기야는 밤중에 성을 빠져나와 아라바로 갔으나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립나로 끌려가 느부갓네살 앞에서 심문을 받고 두 눈을 뽑혀 놋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렘39:2-7).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바벨론 군대의 함정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두고 한 말입니다. 당시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름 받은 자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이 콧김으로 여겼던 자였습니다. ‘콧김’에 해당되는 ‘아페누 루아흐’(רוח אפינו)는 코의 호흡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이 전에 그의 그늘 아래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그의 이방인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살 것이라 믿었던 자였습니다. 유다 백성이 생명처럼 여겼던 왕이 도망하다가 붙잡혀 사로잡혀갔습니다. 결국 유다 백성을 바벨론군대로부터 애굽도 막아주지 못했고 유다 왕도 지켜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백성들의 기대와 소망이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유다에 임한 재난은 바벨론 군대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범죄하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벨론 군대를 이용하여 징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애굽 군대가 도와줄 것이라 기대하고 유다 왕이 지켜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애굽 군대는 바벨론 군대와 접전하는 척하다가 물러가고 유다 왕은 사로잡혀 끌려갔습니다. 재난의 때에 사람을 신뢰하고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예레미야17:5-7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 에돔의 심판 (21-22절)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21절에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고 했습니다. ‘딸 에돔’은 에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에돔 사람들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사34:8-15, 렘49:7-22, 겔 35장). 에돔 사람들은 유다 백성이 망하는 것을 기뻐한 자들이었습니다. 에돔 사람들에 대해 ‘즐거워 하며 기뻐하라’는 말은 그들을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계속 기뻐해 봐라’의 뜻입니다. 결국 잔이 그들에게도 이를 것이니 그들도 취함을 당해 벌거벗기리라고 했습니다. ‘잔’은 재난, 고난, 고통에 대한 상징의 표현입니다. 에돔 족속들에게도 잔이 이르고 벌거벗기리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도 심판이 임하여 고통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22절에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고 했습니다. ‘딸 시온’은 유다 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죄악의 형벌이 다했으니 주께서 다시는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내린 징벌의 때가 반드시 끝날 것이고 다시는 그 같은 재난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통해 유다 백성을 정결케 하고 회복시키며 제사장적 목적을 이룰 것을 확신하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에돔 족속은 하나님이 허물을 드러내고 죄를 벌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회복시킨 다음에는 반드시 에돔 족속의 죄를 드러내어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아주 멸절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바로세우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지만 언약 백성이 징계를 받을 때에 좋아하는 백성에 대해서는 언약 백성을 바로 세운 다음에 반드시 그 죄를 물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십니다 (살후1:6-9).
<結言>
유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멸망했고 유다 백성은 참담한 고통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하나님은 언약 백성인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한 목적을 이루어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재난의 때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6:1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