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출애굽기27:1-21

<題目> 성막과 기구들 3

 

<序言>

  성막 본체의 윤곽과 성막 내의 기구들에 대한 계시(25-26장)이후 본 장에서는 전체 성막의 크기과 성막 뜰에 설치되어야 할 성물들이 설명되었습니다. 내용구조는 번제단의 양식과 재료(1-8절), 성막 뜰의 양식과 재료(9-15절), 출입문의 양식과 재료(16-19절), 등불에 관한 규례(20-2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번제단의 양식과 재료 (1-8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 100×50×5규빗(50×25×2.5m) 크기의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고 동쪽에 있는 20규빗(10m)되는 출입문을 통과해서 들어갑니다. 그 때 제일 먼저 맞게 되는 기구가 번제단입니다. 이 번제단을 거치지 않고는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번제단을 통과하지 않고는 물두멍과 진설병상과 등잔대와 분향단과 언약궤와 속죄소를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번제단은 5×5×3규빗(2.5×2.5×1.5m)의 크기입니다. 그리고 조각목을 상자처럼 짜서 그 겉에 놋으로 입혔습니다. 그리고 그 단 가운데는 제물을 잘 타게 하고 타고난 재가 아래로 잘 빠지도록 하기 위해 그물처럼 생긴 놋 망을 가로질러 넣었습니다. 그리고 단 양편에는 놋 망을 중간에 고정시킬 뿐 아니라 단을 이동시킬 때 안전하고도 손쉽게 메고 갈 채(봉)을 끼울 수 있도록 놋 고리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25:13, 38:5). 그래서 이 번제단을 토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20:24).

 

   ①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보여 주는 표징입니다.

 

  '공의'는 죄에 대해 벌하고 의에 대해 상을 주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생축(짐승)을 데리고 와서 머리에 안수를 통해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전가시킨 다음 제사장들이 생축을 잡아 번제(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그 때에 사용되는 단입니다. 이 때 번제로 드려지는 생축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죄지은 사람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생축을 사람 대신 죽게 한 것입니다. 로마서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고 히브리서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리라"고 했습니다 (레17:14). 하나님께서 이런 율법을 내신 것은 그가 얼마나 죄에 대해 미워하시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곧 공의로운 성품을 알게 합니다. 그 공의의 법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였습니다. 베드로전서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롬6:10).

 

   ②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보여 주는 표징입니다.

 

  '사랑'은 죄행대로 갚지 않고 긍휼로 용서를 하는 것입니다. 번제단에 드려지는 생축은 사람의 죄를 대신 전가받아 죽은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 사람이 죽어야 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람 대신에 짐승으로 죽게 하고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법을 내신 것은 그가 얼마나 택한 백성을 사랑하는지 알게 해 줍니다. 그 사랑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게 한 것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영 단번에 속죄제사를 드리게 한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히브리서10:4에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고 했고, 11절에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고 했고, 히브리서9:11-12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③예수 그리스도의 연약성을 상징하는 표징입니다.

 

  번제단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속주임을 나타내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이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생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 죄값으로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만족시켜 줄 것을 예표하는 표징입니다 (히9:11-12,22, 10:4,11). 번제단의 재료와 모양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보여 줍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1절). '조각목'은 싯딤나무(Shittim wood)인데 아카시아나무(acacia wood)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나무는 시내산 아래에 있는 나무로서 가구를 만들만한 유일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내구력이 강한 단단한 나무이지만 가구를 만들면 갈라지고 비틀어지는 성향이 있어서 좋은 목재는 아닙니다. 화목(火木)으로나 쓸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신10:3).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연약한 인성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인성을 가지셨음을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연약성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예언했습니다 (사53:2-3). 시편 기자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예언했습니다 (시118:22).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말구유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애굽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나사렛 한 촌에서 자랐습니다.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에서 사셨으며 침 뱉음과 능욕을 당하고 가시관과 창과 못에 찔려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the son of man). 예수님께서 그런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연약성을 체휼하기 위함입니다 (히4:15).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겔16:4~, 욥25:6, 엡2:3, 고전1:27-28).

 

   ④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상징하는 표징입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짠 다음 불에 타지 않도록 놋을 입혔습니다 (2절). 번제단에는 부속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물에서 떨어지는 재를 담는 통, 제물의 재를 통에 담는 부삽, 제물에서 떨어진 피를 담는 대야(24:6), 번제단에서 취한 불씨를 분향단에 옮기는 데 사용하는 불 옮기는 그릇(30:7-8, 37:23, 레16:12, 민16:46, 4:9). 잘려진 제물(고기)를 단 위에 골고루 펴는데 사용하는 고기 갈고리(삼상2:13) 등이 있습니다. 그 부속물들도 모두 불에 타지 않도록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3-7절). 민수기16:35-39에 보면 향로를 가지고 불의의 제물을 드리려 했던 고라당 250명이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의 불에 타 죽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향로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불에 타 죽었지만 향로는 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향로가 놋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타지 않고 뜨거운 열도를 통과한 향로를 두들겨 쳐서 번제단을 싸게 했습니다. '놋'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특히 그의 죄없으신 의를 상징합니다. 진노의 심판의 불에 견디려면 신성 특히 죄가 없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 죄가 있어서 죄값으로 내려진 형벌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법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 천사라도 그 진노의 벌을 이겨낼 자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심판을 견디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만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divinity). 히브리서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고, 요한일서3:5에도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그 의를 전가받아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심판받지 않는 것입니다.

 

   ⑤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상징하는 표징입니다.

 

  번제단 네 귀퉁이에는 제물(생축)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묶는데 사용하기 위해 뿔을 만들었습니다 (2절, 시118:27). 열왕기상1:50-53에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아를 죽이려 하다가 그가 이 제단의 뿔을 잡는 것을 보고 살려 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이 제단의 상징 의미를 알고 긍휼을 베푼 것입니다. '뿔'은 권세와 능력의 상징입니다 (단8:3-20, 삼상2:10). 번제단의 뿔은 죄로 인해 죽게 된 자를 살리는 권세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죄로 죽을 자를 살리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과 보혈을 믿는 자에게는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구원의 뿔'이라고 했고 (시18:2), 사가랴도 예수님을 '구원의 뿔'이라고 찬양한 것입니다 (눅1:69). 우리는 그 구원의 뿔을 붙잡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권세가 삶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나타나도록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을 다 받으시고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22:37~, 요14:21, 요일5:3, 요21:15~). 요한복음13:34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고린도후서5:18-19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 했습니다.

 

   ⑥제사는 하나님께 근거를 두어야 할 것을 제시하는 표징입니다.

 

  번제단은 번제를 드리는 곳입니다. 곧 생축을 불로 태우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제물을 태우는데 사용되는 불은 사람들이 피운 불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불입니다 (레9:24). 그래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가 아침마다 불을 피워야 했습니다 (레6:9-13). 우리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내신 방법이라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죄사함 받아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방법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은 그만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을 같이 가진 자).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창4:1-5, 히10:4).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중생)뿐 아니라 계속 이루어 나가야 할 구원(성화)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드리려다가 심판을 당했습니다 (레9:24-10:2). 우리는 예배를 비롯하여 모든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근거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해야 하고,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2. 성막 뜰의 양식과 재료 (9-15절)

 

  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 쪽을 당하게 할지니

  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1 그 북쪽에도 너비가 백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기둥의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12 뜰의 옆 곧 서쪽에 너비 쉰 규빗의 포장을 치되 그 기둥이 열이요 받침이 열이며

  13 동쪽을 향하여 뜰 동쪽의 너비도 쉰 규빗이 될지며

  14 문 이쪽을 위하여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요

  15 문 저쪽을 위하여도 포장이 열다섯 규빗이며 그 기둥이 셋이요 받침이 셋이며

 

  성막의 전체 제원은 100×50×5규빗(50×25×2.5m)입니다 (18절). 사방으로 놋 기둥을 놋 받침 아래 세웠고 그 놋 기둥에 은 갈고리를 달았고 기둥을 연결하는 은 가름대(장대)로 서로 고정했습니다. 그 기둥은 남쪽과 북쪽은 20개씩 세웠고 서쪽은 10개를 세웠고 동쪽은 출입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좌우에 3개씩 모두 6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의 갈고리에 세마포 포장(휘장)을 걸어서 막았습니다. 성막은 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남쪽과 북쪽은 100규빗(50m)이었고 서쪽은 50규빗(25m)였고 동쪽은 50규빗(25m)에서 출입문 20규빗(10m)을 제외한 나머지 좌우 15규빗(7.5m)씩 합 30규빗(15m)을 포장으로 친 것입니다. 포장인 '세마포'(히.쉐쉬, 細麻布, fine-linen)는 애굽에서 많이 재배되던 삼(hemp)을 표백하여 만든 것으로서 밝은 흰색을 띤 아마포입니다. 사실 조각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막 재료가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광야생활을 할 때  사용할 수도 있지만 먼저 성막을 짓는데 헌신하게 한 것입니다.  

 

  한편 성막 전체에서 성소와 지성소의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뜰이라고 했습니다. '뜰'(court)의 히브리어 '차르'는 '둘러 싸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차라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괴롭히다'입니다. 이 뜰은 희생제물로 바쳐질 짐승을 대기시키고 잡고 태우는 곳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괴로움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짐승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집어 씌고 죽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곳을 연상하게 합니다 (벧전2:24). 바울은 갈라디아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을 생각해도 고통스럽고 그 안에서 우리의 죄성을 죽이는 일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롬7:24, 고전15:31).    

 


       3. 출입문의 양식과 재료 (16-19절)

 

  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17 뜰 주위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8 뜰의 길이는 백 규빗이요 너비는 쉰 규빗이요 세마포 휘장의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19 성막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그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을 다 놋으로 할지니라

 

  성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직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양식을 받아 지은 성전입니다(출24:18, 25:1-9). 당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짓게 한 것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막의 정확한 칫수와 무게와 재료를 기록하는데 있어서 여러 장(章)을 할애한 것은 단순히 성막의 건축 내용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과 천국의 실체와 성도의 생활 모범을 제시하기 위한 모형(표호)입니다 (히8:5, 9:23-24).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을 알게 하고 그와 영적 교제를 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기위해 주신 표징입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은 구름기둥(하나님의 임재)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구름기둥이 멈추면  곳에서 멈추고 진(陣)을 칩니다(야영). 맨 중앙에는 성막을 치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주위는 레위 자손이 진을 치고  동쪽에는 유다에 속한 지파들이(유다,잇사갈,스블론), 남쪽에는 르우벤에 속한 지파들이(르우벤,시므온,갓), 서쪽에는 에브라임에 속한 지파들이(에브라임,므낫세,베냐민), 북쪽에는 단에 속한 지파들이(단,아셀,납달리) 진을 칩니다(민2:3-35, 계21:12).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다시 진행을 하는데, 그 때는 유다 진기(陣旗)-르우벤 진기-성막과 레위 진기-에브라임 진기-진기 순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러다가 구름기둥이 멈출 때는 다시 그 곳에 진을 치는데 그 때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막을 중심으로 십자가 형태로 진을 칩니다.

 

  성막 외부를 두룬 세마포 휘장의 전체 길이는 18절에 보면 장(長)과 광(廣)과 고(高)가 각각 100×50×5규빗 (50×25×2.5m)입니다. 참고로 1규빗은 45.6㎝인데 편의상 50㎝로 계산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17절에 보면 휘장을 세우는 기둥은 남쪽(좌)과 북쪽(우)이 각각 20개씩이고 서쪽(뒤)과 동쪽(앞)이 각각 10개로 되어 있습니다(성막은 동쪽을 향하고 있음- 계7:2 참조). 거기에 은으로 만든 가름대(장대)와 갈고리 그리고 놋으로 만든 받침으로 휘장을 고정했습니다. 그리고 동쪽(앞)에는 50규빗(25m) 너비의 10개 기둥 중 중간부분 20규빗(10m) 너비의 4개 기둥에는 출입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을 때는 짐승(생축)을 이 곳으로 끌고 들어가 제사를 드리므로 죄 사(赦)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히브리서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막 구내 동편 끝에 마련된 이 출입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영적 자유함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 출입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오늘날 이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14:6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고, 10:9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했고, 사도행전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고, 로마서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이 문은 어느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도록 20규빗(10m)이나 되게 넓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은 항상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곳으로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지위고저, 학식유무를 무론하고 누구든지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합니다. 이는 기본회개의 의미든 중복회개의 의미든 모두에 다 적용됩니다. 요한복음7:37-38에는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라고 했고 (사55:1), 누가복음14:21에는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잠1:20-21, 계22:17). 고린도전서1:26에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자이든, 병든 자이든, 괴로운 자이든, 외로운 자이든, 번뇌하는 자이든, 근심하는 자이든, 불화한 자이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아무리 보리 떡 같고 막대기 같고 고자와 같은 자라도, 소를 몰던 자요 뽕나무를 기르던 자요 고기를 잡던 자라도 받게 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보여 줍니다. 16절에 보면, 출입문은 4기둥에 휘장을 가로질렀는데 그 휘장은 청색과 홍색과 자색과 가늘게 꼰 베실(흰색)로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그 색깔들은 한결같이 오실 그리스도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 줍니다. 청색은 그리스도의 천상적인 성품인 생명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요3:13,31, 고전15:47). 이는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λογοs)로서 육신(σαρξ)을 입고 오셨다는 선언을 생각게 합니다 (요1:1,14, 마27:43, 빌2:6). 자색은 그리스도의 만왕의 왕으로서의 권세와 존귀를 나타냅니다 (삿8:26).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악령과 죽음과 질병을 물리치신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마27:38, 28:18). 홍색은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순종과 겸손을 나타냅니다 (계7:14). 이는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모습과 죽기가지 복종했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11:29, 빌2:8). 흰색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결과 순결을 나타냅니다 (계19:8, 20:11). 이는 그에게 죄가 없으시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일3:5). 이 4가지 색깔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각 다른 시각(핵심은 같지만)에서 기록한 4복음서와 잘 대조되기도 합니다. 자색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제시하는 마태복음(사자복음)에, 홍색은 예수님을 고난받는 종으로 제시해 주는 마가복음(송아지복음)에, 홍색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제시해주는 누가복음(사람복음)에, 청색은 그리스도를 영원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하는 요한복음(독수리복음)에 잘 어울리는 색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돕는 하늘의 천사들도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4:7에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우리도 이 4가지 색깔이 의미하는 성품을 점점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요구합니다. 성막은 흰 세마포로 둘러져 있기 때문에 사방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며 다른 천막들과 대조를 느끼게 합니다. 이는 그 내부의 순결과 거룩함을 암시해 줍니다. 성막 전체를 두고 있는 장(세마포 휘장)과 출입문 휘장의 높이는 5규빗(2.5m)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 휘장들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것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모릅니다. 성막 안에 있는 진귀한 성구들과 제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이스라엘 백성이 죄용서 받음을 모릅니다.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거룩과 순결과 평안을 느낄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둘려진 세마포장과 출입문에 수놓아진 색과 문양을 보고 느낄 뿐입니다. 그런데 출입문의 4색깔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내용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입문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문이기는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존재와 언행과 삶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게 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성전입니다(고전3:16). 그러므로 4가지 색깔 곧 청색 홍색 자색 흰색이 상징하는 진리를 삶 속에서 나타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 생애의 사역과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삶, 겸손한 순종의 삶, 영권이 있는 능력의 삶, 순결한 의로운 삶을 통해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 것입니다 (고후2:15, 3:3). 야고보서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언행 이전에 인격에 이루어 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약3:1-9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부단히 알아 가야 하고 그의 인격을 닮아 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목적과 가장 주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바뀌지 않으면 행동의 제어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심히 어렵습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단히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루어 이방에 대한 출입문 역할 곧 제사장적 사역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4. 등불에 관한 규례 (20-21절)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의 건물이 있습니다. 성소 안에는 왼쪽에 등잔대와 오른쪽에 진설병상과 맞은 편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등잔대는 한 줄기에 7가지가 있고 그 가지들 끝에는 등잔이 있습니다. 그 등잔은 불을 켜는 곳으로서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두어 불을 밝히게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 등잔불을 켜고 끄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저녁에 켜서 아침에 끄게 했는데 매일 그 일을 하여 그 등잔불이 끊이지 않게 하게 했습니다 (레24:2-4, 27:1, 삼상3:3, 슥4:1-6). 

 

  등잔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靈)이신 성령께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에 대해 상징으로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4:5에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했습니다 (계3:1참조). 등잔불의 역할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등잔대를 비추는 것입니다. 등잔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 주고 변호해 주는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과 사역을 알게 하고 그가 말한 모든 진귀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시인하게 하고 고백하게 합니다 (마16:16-17참조). 고린도전서12:3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진설병상을 비추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떡을 차리고 물리는 일, 떡을 먹는 일 등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진설병상의 떡은 말씀을 상징합니다 (마4:4).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한복음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진리되는 모든 말씀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요6:48-59, 14:26, 16:13). 한복음16:13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진리'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진리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니틀본에서는 'εν τη αληδεια -GNT'로 나와 있고 스테판본에서는 'ειs την αληδεια -GTS'로 되어 있습니다. 전치사 εν은 '...안에'(in)의 의미이고, ειs는 '...으로' '...을 향하여'(into)의 의미입니다. 니틀본을 따른다면 성령은 '진리 안에서 역사하시기도 하고 진리를 방편으로 역사하기도 합니다. 스테판본을 따른다면 성령은 진리 안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진리를 통과하게도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λογs)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적용(ρημα)하도록 도와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그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의지와 그 말씀을 지킬 때에 은혜를 느끼도록 감동시키십니다 (벧후1:19-21, 계2:7 참조). 셋째, 분향단을 비추는 것입니다. 분향단은 제사장들들이 향을 피우는 곳입니다. 분향단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시141:2). 요한계시록5:8에 "~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도록 감동시키시며,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에 대한 감동과 확신을 얻도록 도와주십니다. 로마서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結言>

  우리는 영적으로 제사장입니다 (벧전2:9, 계5:10). 성령께서 구속사역을 잘 역사할 수 있도록 매일 저녁마다 등불을 정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에서 구원사역을 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주장을 버려야  합니다. 등잔에 감람나무 잎이나 감람 열매의 꼭지 등이 들어가지 않은 순전한 기름으로 채워야 하듯이 인본주의적 욕망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하게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