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에스겔41:1-26

<題目> 성전 측량 (2)

 

<序言>

  성전은 크게 바깥뜰과 안뜰과 성소로 나눌 수 있습니다. 40장에서는 성전의 외벽()과 바깥뜰과 안뜰을 측량했습니다. 41장에서는 성소에 대해 측량을 하게 됩니다. 내용구조는 성소 내부 측량(1-12), 성소 외부 구역 측량(13-15), 성소 내부 장식(15-26)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성소 내부 측량 (1-12)

 

   ① 문 통로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에 이르러 그 문 벽을 측량하니 이쪽 두께도 여섯 척이요 저쪽 두께도 여섯 척이라 두께가 그와 같으며

  2 그 문 통로의 너비는 열 척이요 문 통로 이쪽 벽의 너비는 다섯 척이요 저쪽 벽의 너비는 다섯 척이며 그가 성소를 측량하니 그 길이는 마흔 척이요 그 너비는 스무 척이며

  3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 통로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는 두 척이요 문 통로가 여섯 척이요 문 통로의 벽의 너비는 각기 일곱 척이며

  4 그가 내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스무 척이요 너비는 스무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성소는 외소(外所)와 내소(內所)로 나뉘는데 외소를 성소(聖所)라 하고 내소를 지성소(至聖所)라 합니다. 외소인 성소의 길이와 너비는 40×20규빗(21×11m)로 직사각형이었습니다. 2절에 “~그가 성소를 측량하니 그 길이는 마흔 척이요 그 너비는 스무 척이며라고 했습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문 통로는 10규빗이었으며 문 통로 벽의 두께는 6규빗이었고 문 통로 좌우편 벽은 각각 5규빗씩이었습니다 (2). 내소인 지성소의 길이와 너비는 20×20규빗(11×11m)이었습니다. 4절에 그가 내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스무 척이요 너비는 스무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문 통로는 6규빗이었으며 문 통로의 두께는 2규빗이었고 문 통로의 좌우 벽은 각각 7규빗씩이었습니다 (3). 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1차례 곧 710일 대속죄일에 속죄피를 가지고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6:29, 25:9, 9:7)

 

  성소의 문 통로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집니다. 성소의 문 현관 문 통로는 14규빗이었습니다. 현관의 너비는 20규빗이었는데 현관은 벽이 좌우편으로 3규빗씩 들어와 있었으므로 현관 문 통로는 20규빗에서 6규빗을 뺀 수치로서 14규빗인 것입니다. 40:49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척이요~”라고 했고, 40:48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측량하니 ~두께는 문 이쪽도 세 척이요 문 저쪽도 세 척이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의 문 통로는 10규빗이었습니다. 2절에 그 문 통로의 너비는 열 척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의 문 통로는 6규빗이었습니다. 3절에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 통로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는 두 척이요 문 통로가 여섯 척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현관 문 통로와 성소 문 통로와 지성소 문 통로가 각각 14규빗(7.4m), 10규빗(5.3m), 6규빗(3.2m)으로 점점 좁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갈수록 출입구가 좁아진 것입니다.

 

  마태복음7:13-1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넓은 문''좁은 문'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길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을 말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길과 말씀대로 사는 길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길과 사명을 감당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생애보다 예수님을 믿는 생애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생애보다 말씀대로 사는 생애가,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생애보다 사명을 감당하는 생애가 더 좁고 협착합니다. 사람들은 좁은 길은 발견하기도 힘들고 그 길을 가기란 더욱 힘듭니다. 생명이 사는 길을 알기도 힘들지만 안다고 해도 그 길을 가기란 더욱 힘듭니다. 하나님 뜻을 알기도 힘들거니와 안다고 해도 그 뜻을 따라 살기란 더욱 힘듭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을 얻는 길이고 하나님 앞에 영원히 인정받는 길입니다 (3:17-18, 4:16, 20:22-24, 3:8, 14:12, 20:4).

 

   ② 골방

 

  5 성전의 벽을 측량하니 두께가 여섯 척이며 성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너비는 각기 네 척이며

  6 골방은 삼 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서른이라 그 삼면 골방이 성전 벽 밖으로 그 벽에 붙어 있는데 성전 벽 속을 뚫지는 아니하였으며

  7 이 두루 있는 골방은 그 층이 높아질수록 넓으므로 성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질수록 성전에 가까워졌으나 성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8 내가 보니 성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높이는 한 장대 곧 큰 자로 여섯 척인데

  9 성전에 붙어 있는 그 골방 바깥 벽 두께는 다섯 척이요 그 외에 빈 터가 남았으며

  10 성전 골방 삼면에 너비가 스무 척 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11 그 골방 문은 다 빈 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쪽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쪽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 터의 너비는 다섯 척이더라


  ‘성전은 성소 건물을 말하고 외전은 성소를 내전은 지성소를 말합니다. 성소 건물 외부 3(,,)에 폭이 20규빗의 뜰이 있었고 (10), 성소 건물 바로 양옆에는 폭이 5규빗인 빈터가 있었습니다 (9,11).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의 3(,,) 내벽과 외벽 사이에 골방이 30개가 있었습니다. 6절에 골방은 삼 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서른이라고 했습니다. 그 골방은 3층으로 되어 있어서 모두 합하면 90개가 되었습니다. 그 골방의 크기는 너비가 4척이었고 (5), 길이는 전체를 계산해 보아 5척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9-11). 이 골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좌우(,)1개씩 있었는데 1-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고 각 골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11, 왕상6:8). 이 골방들의 용도는 성소 비품들과 제사 때 사용되는 성구들 그리고 십일조와 각종 예물들을 보관하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Schroder). 어떤 이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숙소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Thenius).

 

  그 골방은 층이 높아질수록 각 층이 더 넓어졌습니다. 7절에 이 두루 있는 골방은 그 층이 높아질수록 넓으므로 성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질수록 성전에 가까워졌으나 성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고 했고, 6절에 “~그 삼면 골방이 성전 벽 밖으로 그 벽에 붙어 있는데 성전 벽 속을 뚫지는 아니하였으며고 했습니다. 골방은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졌습니다. 때문에 벽은 올라갈수록 얇아졌습니다. 하지만 성소 안벽이 좁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이 골방들이 성소 벽에 접해 있으면서도 일반 건출물처럼 각층의 들보가 성소 벽을 뚫어 삽입한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축조된 벽에 들보를 얹어 만든 것입니다. 이런 축조방식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소에 외부적인 요소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거룩성이 침해당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Bahr).

 

  영적 제사장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골방이 있습니다. 기도의 골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6: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 세계는 골방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진 것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이해가 넓어집니다 (3:18-19). 뿐만 아니라 그 세계는 골방이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성소와 지성소에 가까워진 것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님이 가까워집니다 (4:8). 그런데 주의할 것은 골방의 들보가 성소를 뚫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많아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고 해서 마음이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43:7).

 

  사도행전12: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솔로몬왕 이후로 유대지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롯왕은 어떤 일로 인해서 두로와 시돈에 대해 노했습니다. 그래서 두로와 시돈에서 헤롯에게 화친하기 위해 사절단이 왔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영국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경기를 열었다고 하는데, 헤롯이 이 날 왕복을 입고 공식 행사에 참여하여 효유 곧 연설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 백성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고 두로와 시돈에서 온 사절단도 참여했습니다. 헤롯의 왕복은 은으로 빛나는 옷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햇빛이 비췰 때는 신비함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헤롯이 군중에게 연설을 하자 사절단들이 아첨하기 위해 왕의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그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영광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헤롯의 의식(意識)적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그를 쳤습니다. 결국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헤롯이 갑작스런 복통으로 5일 만에 죽게 되었는데 몸이 썩어 벌레가 났다고 합니다. 헤롯이 벌레에 의해 죽어간 것입니다.

 

     ③ 지성소 뒤의 건물

 

  12 서쪽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너비는 일흔 척이요 길이는 아흔 척이며 그 사방 벽의 두께는 다섯 척이더라

  성소(성소와 지성소) 서편 곧 뒤편에 커다란 건물이 있었습니다. 이는 서쪽 뜰 뒤에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성소 건물과 분리된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지대는 성소 지대보다 낮은 안뜰 지대와 같았습니다. 그 건물의 너비와 길이는 70×90규빗(37×48m)이었고 4면 벽 두께는 5규빗(2.7m)이었습니다. 12절에 서쪽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너비는 일흔 척이요 길이는 아흔 척이며 그 사방 벽의 두께는 다섯 척이더라고 했습니다. 너비가 70규빗이고 길이가 90규빗이라는 말은 내부 규격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 규격으로 하면 너비가 80규빗(70+5+5규빗)이고 길이는 100규빗(90+5+5규빗)이 되는 것입니다. 이 건물의 남쪽 벽과 북쪽 벽에는 회랑(다락)이 있었습니다 (15). 이 건물의 용도는 아마도 성소에서 유출되는 모든 종류의 쓰레기나 오물을 성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보관하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일종의 창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C.F.Keil). 성전에는 오물을 버리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내면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부패한 성품 곧 죄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7:21-23에서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3:8). 그것을 옛 사람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에베소서4: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했습니다. 그것은 한 단어로 한다면 욕심 혹은 탐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1:14-15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그 욕심을 제어하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각은 양심의 평안한 상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벧전3:21). 필로(Philo)양심은~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행하려 했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썼습니다 (23:1, 24:16). 무엇보다 성경 말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6: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2. 성소 외부 구역 측량 (13-15)

 

  13 그가 성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백 척이요 또 서쪽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길이는 백 척이요

  14 성전 앞면의 너비는 백 척이요 그 앞 동쪽을 향한 뜰의 너비도 그러하며

  15 그가 뒤뜰 너머 있는 건물을 측량하니 그 좌우편 회랑까지 백 척이더라~

  여기에서 성전에 해당하는 뻬이트’(בית)으로서 성전 전체에서 성소(성소+지성소) 건물을 두고 사용한 말입니다. 성소 구역의 크기는 너비와 길이가 각각 100×100규빗(53m×53m)의 정방형이었습니다. 14절에 성전 앞면의 너비는 백 척이요~”라고 했고, 13절에 그가 성전을 측량하니 길이는 백 척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소 건물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 건물이 있는 구역의 대지 규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 뒤 건물 구역의 크기도 너비와 길이가 각각 100×100규빗(53m×53m)이었습니다. 15절에 그가 뒤뜰 너머 있는 건물을 측량하니 그 좌우편 회랑까지 백 척이더라~”고 했고, 13절에 “~또 서쪽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길이는 백 척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도 성소 뒤 건물만이 아니라 성소 뒤 건물이 있는 구역의 대지 규격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소 앞 안뜰 구역의 크기도 너비와 길이가 각각 100×100규빗(53m×53m)이었습니다. 14절에 “~그 앞 동쪽을 향한 뜰의 너비도 그러하며라고 했습니다. 이도 성소 앞 번제단이 있는 안뜰 구역의 크기를 말합니다. 곧 성소 구역과 성소 뒤 건물 구역과 성소 앞 제단 구역이 모두 100×100규빗의 정방형으로 된 것입니다.

 

  구역들은 모두 네모반듯한 정방형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수나 거짓으로 살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행하고 정당한 길로 행해야 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도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말을 합니다. 논어(論語)에 나온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바른 길로 행해야 한다. 잠언16: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나 거리낌이 없도록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24:16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역들의 수치는 모두 100규빗이었습니다. ‘100’10×10으로서 ‘10’은 충만과 완전을 상징하는 만수입니다. 에베소서3:19“~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성품, 예정, 내주, 현재, 능력, 통치, 섭리 등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것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모든 충만한 것으로'(εις παν το πληρωμα)서 전치사 에이스(ειs)'안으로' 뜻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4:11-13).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이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신앙 인격이 자라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장성한'(ηλικιας)은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자란 것처럼 성숙한 상태를 말합니다. '분량'(μετρον)은 척도, 정도, 한계 등을 의미합니다. '충만한'(πρηρωμα)는 가득 찬 것, 가득 채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나가고 닮아 가는 일은 성도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가치이며 목적인데, 그 일에 제한된 한계의 끝까지 자라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속성을 닮아 가는 것 그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에베소서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범사에'(παντα)는 일반적으로 '모든 일에'로 해석하나 어떤 이는 부사적 목적격으로 보아 '모든 방법으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Lincoln). 성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혹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영적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3. 성소 내부 장식 (15-26)

 

   ① 내부 벽 장식

 

  15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16 문 통로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회랑은 문 통로 안쪽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자로 가렸고 (창은 이미 닫혔더라)

  17 문 통로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방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측량한 크기대로며

  18 널판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각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19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쪽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쪽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성전 사방이 다 그러하여

  20 땅에서부터 문 통로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성소(성전 본 건물)는 현관과 성소와 지성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외전은 성소를, ‘내전은 지성소를 말합니다. 현관과 성소와 지성소의 내부 벽은 사방이 모두 널판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15-17절에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문 통로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회랑은 문 통로 안쪽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자로 가렸고, 문 통로 위와 내전과 외전의 사방 벽도 다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백향목으로 되어 있었다고 했지만 에스겔 성전에서는 어떤 나무로 되어 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왕상6:15). 그리고 그 각 널판자에 마다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룹들에는 얼굴이 있었는데 한 쪽은 사람의 얼굴이었고 한쪽은 어린 사자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그룹들의 얼굴들은 양 옆에 있는 종려나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18-20절에 널판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각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쪽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쪽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성전 사방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 통로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천사는 스랍과 그룹과 가브리엘과 미가엘입니다. 스랍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수종드는 천사이고,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천사이고,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천사장이고, 미가엘은 하나님의 대적과 전투를 하는 천사장입니다. ‘그룹’(Cherub)은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천사입니다. 그룹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인 것은 지혜 있음을 나타내고, 사자의 얼굴인 것은 용기를 나타냅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입니다 (대하5:14).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은 그룹이 하나님의 영광을 지킵니다. 그 사역을 하는 그룹은 지혜가 있으며 용기가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12:13, 7:9).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언제나 승리(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언제나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고 성취하십니다. 요한계시록22: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했습니다. ‘알파’(Α)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로서 시작을 의미하고, ‘오메가’(Ω)는 헬라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서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룹들이 그 종려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룹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승리하도록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승리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10:16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하여 넘어뜨린 뱀은 지혜로웠습니다 (3:1-5). 그 뱀은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넘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탄의 지혜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탄을 이기려면 사탄보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지혜를 이용해야 합니다. 뱀이 사탄의 지혜를 이용하므로 지혜로웠던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의 지혜를 이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이사야41:14-15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가랴4:6-7“~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② 나무 제단

 

  21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양식은 이러하니

  22 곧 나무 제단의 높이는 세 척이요 길이는 두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성소(외전)안에 제단이 있었습니다. 곧 지성소(내전) 바로 앞에 제단이 있었습니다. 21“~내전 전면에 있는 양식은 이러하니그 제단은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길이와 높이가 2×3규빗(1×1.6m)이었습니다. 22곧 나무 제단의 높이는 세 척이요 길이는 두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아마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각각 2×2×3규빗(1×1×1.6m)이었을 것입니다.

 

  이 나무 제단의 용도는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히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2가지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분향단(焚香壇) 역할입니다. 이 제단은 내전인 지성소 앞면에 있었습니다. 21절에 “~내전 전면에 있는 양식은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지성소 앞이기 때문에 성소의 안쪽 중앙에 위치한 것을 말합니다. 모세 때에 있었던 성막에서도 이 자리에는 향불을 피우는 향로를 놓는 분향단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30:1-6). 출애굽기30:6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을 보면 여기의 제단도 분향단 역할을 하는 단이었을 수 있습니다. 모세 때의 분향단은 향을 피우는 곳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매일 성소 좌편에 있었던 등잔대(촛대)의 등잔에 등불을 끌 때와 켤 때에 향을 사르는 곳이었습니다 (30:7). 둘째는 진설병상(陳設餠床) 역할입니다. 어원상으로 볼 때는 진설병상(떡상) 역할을 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제단을 여호와 앞의 상이라고 했습니다. 22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지성소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라면 바로 앞에 이 제단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 앞의 상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에 해당하는 슐한’(שלחן)식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제단이 진설병상(떡상) 역할을 겸한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세 때의 진설병상은 성소 우편에 있었습니다 (25:23-30). 이 상에는 제사장들이 고운가루로 구운 떡 12개를 6개씩 2줄로 차려놓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일주일에 1번 안식일에 새로운 떡을 차렸고 물려 나온 떡은 제사장들이 먹었습니다 (24:5-9, 6:16).

 

  만일 이 나무 제단의 용도가 분향단 역할이었다면 기도가 강조되는 교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죄사함과 칭의를 얻게 하므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가갈 수 있도록 중보사역을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로마서8:3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고, 요한일서2: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제사장들로서(벧전2:9, 1:6) 제사장들이 분향단에 향을 살랐듯이 하나님께 중보기도(도고)를 해야 합니다. 창세기19: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했습니다 (18:20-33). 우리의 기도는 분향단의 향이 하나님 앞에서 올라간 것처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요한계시록5:8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편141:2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 나무 제단이 진설병상(떡상) 역할을 겸했다면 영적 양식에 대한 교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설병상은 구속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므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고 그 표적성을 말하면서 자신을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했고 자신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6: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요한복음6: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했고, 요한복음6:58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먹는 방법은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고 했는데, 요한복음6: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고 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과 상호 내주 연합하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6:57“~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설병상은 영적 양식이 하나님 말씀을 생각나게도 합니다. 마태복음4: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고 했습니다 (8:3). 이 영적 양식을 사모해 합니다. 이 영적 양식을 날마다 상고하여 적용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시편119:131에는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했고, 사도행전17:11에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고 했고, 요한계시록1:3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습니다.

 

   ③

 

  23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24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25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성소(외전)에 들어가는 문도 있었고 성소에서 지성소(내전)로 들어가는 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들은 접이식 여닫이문들이었습니다. 한쪽 문짝이 두 판을 이어져 있어 접어서 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23-24절에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문들에도 그룹과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문은 구속사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를 믿는 우리가 죄 사함과 칭의를 얻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0: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중보자는 아니지만 중재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제사장입니다 (벧전2:9, 1:6).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중간에서 사역하는 자로서 백성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제사장으로 부르신 것은 불신자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2: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 했고, 고린도후서3:3에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④ 디딤판

 

  25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26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겨져 있고 성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

 

  현관 앞에는 디딤판이 있었습니다. 25-26절에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겨져 있고~”라고 했습니다. 현관 앞에 디딤판이 놓여 있었는데 그 디딤판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그 디딤판에도 역시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발을 딛는 디딤돌이라면 현관 턱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받쳐놓은 판이거나 성소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해 덮은 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47: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디딤판에 해당하는 원형 아브’(עב)덮다는 뜻인 점을 들어 발을 딛는 디딤판이 아니라 차양(처마)일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현관으로 들어갈 때 햇빛이나 비를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덮다는 뜻은 바닥을 덮는 디딤판에도 사용될 수 있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봉사하라에 해당하는 원형 디아코네오’(διακονεω)시중들다’ ‘섬기다’ ‘관리하다등의 뜻입니다. 봉사는 다른 사람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은사에 해당하는 카리스마’(χαρισμα) 선물로 준 능력(재능)을 말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라고 거저 주신 능력으로서 다양합니다 (12:6-8, 고전12:4-11). 은혜에 해당하는 카리스’(χαρις)는 대가 없이 베푼 호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호의를 받은 청지기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에 해당하는 원형 오이코노모스’(οικονομος)는 가정 관리인을 말합니다. 가정의 재산과 일 전체를 맡아 관리하는 관리인(집사)입니다. 이 관리인은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하며 종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청지기의 심정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공동체의 일원을 도와야 합니다.

 

<結言>

  우리는 세상에서 항상 근심하며 불안해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체 구속역사뿐 아니라 우리 개인에 대한 구원역사도 반드시 계획하신 선한 목적대로 성취하십니다. 성소 내부 벽이 종려나무로 그려져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종려나무를 그룹이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돕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소의 나무 제단이 분향단 위치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중보기도를 해주십니다. 거기에다 성령께서도 간구로 도와주십니다. 로마서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