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에스겔42:1-20

<題目> 성전 측량 (3)

 

<序言>

  본장은 앞장들에서부터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본장에서는 뜰에 있는 부속 건물들과 성전 전체의 크기를 측량하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제사장들의 방 측량(1-14), 성전 담 측량(15-20)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제사장들의 방 측량 (1-14)

 

  1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쪽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 뜰을 향하였고 다른 하나는 북쪽 건물을 향하였는데

  2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 그 문은 북쪽을 향하였고

  3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 길이는 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

  5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

  6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

  8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

  9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 남쪽 골방 뜰 맞은쪽과 남쪽 건물 맞은쪽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 이 남쪽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쪽 길 어귀에 있더라

  13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제사장들의 방

  성전 가장 중앙 안쪽에는 성소가 있었습니다. 성소 주변에는 안뜰이 있었습니다. 그 성소 좌우편 곧 남쪽과 북쪽에는 거룩한 방으로 일컬어지는 제사장들의 방들이 있었습니다. 13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쪽과 남쪽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고 했습니다. 그 건물은 총 4개였는데 성소 남편에 2, 북편에 2개가 있었습니다. 남편에 있는 2개와 북편에 있는 2개는 제원이 같았습니다. 11절에 “~그 방들의 모양은 북쪽 방 같고 그 길이와 너비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한 편에 있는 2개의 건물이 자리한 대지는 너비가 50규빗(27m, 2개의 건물 가운데 짧은 건물 옆에 있는 담까지 포함한 대지임), 길이가 100규빗(53m)이었습니다. 2절에 그 방들의 자리의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쉰 척이며~”라고 했습니다. 2개의 너비는 기록되지 않았고, 길이는 긴 건물의 길이가 100규빗이었고 짧은 건물의 길이는 50규빗이었습니다. 8절에 바깥뜰로 향한 방의 길이는 쉰 척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백 척이며라고 했습니다. 2개의 사이로 가운데에 통로가 있었는데 그 중앙통로의 너비는 10규빗(5m)이었습니다. 4절에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너비는 열 척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짧은 건물 바깥쪽으로 담이 있었는데 그 담들의 길이는 50규빗이었습니다. 7절에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길이는 쉰 척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들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인 통행구는 1개로서 8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동쪽에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9절에 이 방들 아래에 동쪽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고 했습니다. ‘통행구에 해당하는 마보’(מבוא)는 단수이므로 1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들에는 여러 방들이 있었고 그 방들마다 문들이 있었는데 그 방들의 문은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4절에 “~그 문들은 북쪽을 향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2건물의 1층에 있는 방들은 모두 북쪽을 향해 있었던 것입니다 (남쪽 두 건물의 1층에 있는 방들의 문은 모두 남쪽을 향함). 하지만 2층과 3층의 문은 두 건물의 방문들이 서로 마주 향하고 있었습니다. 3절에 그 방 삼층에 회랑들이 있는데 한 방의 회랑은 스무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다른 한 방의 회랑은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짧은 건물은 바깥뜰 옆에 있었는데 안뜰과 마주보고 있었고, 긴 건물은 안뜰 옆에 있었는데 바깥뜰과 마주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회랑’(回廊)은 지붕이 있는 복도나 툇마루나 난간을 말합니다. 이 회랑은 통로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2층과 3층은 두 건물의 방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방들 앞에 회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2층과 3층의 두 건물의 방들의 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건물들은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방이 좁아졌습니다. 5절에 그 위층의 방은 가장 좁으니 이는 회랑들로 말미암아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위층이 더 줄어짐이라라고 했고, 6절에 그 방은 삼층인데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위층이 아래층과 가운데 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고 했습니다. 2층과 3층에는 회랑이 있었고 기둥이 없었으므로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졌다는 것입니다. 성소 3면 벽에 있는 골방들은 위층으로 올라갈 수로 넓어졌다고 했는데 (41:6-7), 성소 밖 좌우편에 있는 제사장들의 방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진 것입니다.

 

  이 제사장들의 방의 용도는 2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보관하고 먹는 곳이었습니다. 13절에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에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니 이는 거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지성물’(至聖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데쉐 하카다쉼’(קדשי הקדשים)거룩한 것 중의 거룩한 것’(the most holy things -KJV)으로서 거룩한 제물 가운데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도록 특별히 구별한 것들을 말합니다.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 가운데 제사장 몫으로 돌아가는 제물들을 말합니다. 구약의 5대 제사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번제와 화목제가 빠진 것은 번제는 다 살라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고 화목제는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방은 제사장들이 그 지성물들을 보관하고 그 지성물들을 먹는 곳인 것입니다. 둘째, 제사장들의 의복을 보관하고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14절에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44:19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밖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사역을 위해 성소에 들어갈 때는 이 방에서 평상복을 벗고 제사장복으로 갈아입고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갈 때는 이곳에서 제사장복을 벗어두고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제사장입니다.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했고, 요한계시록1:6"~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영적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큰 사역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 일에는 하나님 말씀을 먹는 것과 옷을 갈아입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먹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영적 양식으로 먹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4:4"~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둘째는 옷을 갈아입는 일입니다. 인격의 옷을 갈아입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육욕에 속한 옛사람의 소행을 벗어버리고 영욕에 속한 새사람의 속성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에베소서4:22-24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3:5,8-12). 속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합당하지 못한 죄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성경 말씀에 맞는 성품으로 변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을 소화하여 인격이 만들어지게 하는 데는 힘이 듭니다. 요한계시록10:10"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지적 능력으로 이해할 때는 기쁘지만 인격에 내면화시킬 때는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말씀을 실천할 때도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방해하기 때문이고 죄성이 방해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고 환경이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세계는 올라갈수록 좁은 세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7: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거나 추구하는 사람도 적지만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인격이 그 말씀대로 만들어지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더욱 드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세계는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면이 있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우리가 절대적으로 해야 할 신앙생활의 핵심인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인격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그것을 성화(聖化)라고 하기도 하고, 중생(重生, 거듭남)한 영()이 자라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이미 얻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벧후3:18, 4;13, 2:12, 벧전2:2). 성화는 점진적으로 되며 일생동안 계속됩니다. 그래서 죽을 때 그 성장한 대로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하나님 뜻의 표준인 성경 말씀대로 만들어진 인격만 남아 있게 됩니다 (고전3:12-15). 그래서 그 성장한대로 영광과 상을 얻게 됩니다. 고린도전서15: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했습니다 (고전3:15). 성화에 대한 내용은 므나비유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9:12-26).

 

 제사장들의 부엌

  성소 좌우편 곧 남쪽과 북쪽에 거룩한 방으로 일컬어지는 제사장들의 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복을 보관하며 갈아있는 곳이고 제물 가운데 제사장들 몫으로 물려 나온 제물을 보관하며 먹는 곳이었습니다 (1-14절). 그 제물들을 먹기 위해 굽거나 삶는 부엌이 있었습니다. 그 제사장들의 부엌은 제사장들의 방 뒤편 곧 제사장들의 방 서편에 제사장들의 부엌이 있었습니다. 46:19에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 곁 통행구를 통하여 북쪽을 향한 제사장의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쪽에 한 처소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의 부엌은 제원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고 용도에 대해서만 언급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소제의 제물을 굽고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제물을 삶는 처소였습니다46:20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의 종류는 번제(燔祭)와 소제(素祭)와 화목제(和睦祭)와 속죄제(贖罪祭)와 속건제(贖愆祭)가 있습니다 (1~6). 번제는 봉헌, 소제는 감사, 화목제(감사제, 서원제, 자원제)는 화목,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 용서를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둘 다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이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뜻인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범한 경우로서 그 범위가 넓고, 속건제는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했거나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여 해를 끼친 경우로서 그 범위가 좁다할 수 있습니다. 속건제는 배상이 강조되었습니다. 번제는 희생제물(짐승)로 드리는 제사이고 소제는 고운가루(곡식)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희생제물로 드리는 다른 제사들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번제단에서 불살라 드리고 화목제는 제물을 일부만 불살라 드린 후 제물의 대부분을 제사장과 가족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들은 일부만 불살라 드린 후 모두 제사장들이 먹도록 했습니다. 불살라 드린 부분은 하나님 몫이었고 나머지는 제사장 몫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은 제사장들만의 몫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 제사장들의 부엌은 그 제물들을 요리하는 곳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에게는 제물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것을 먹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만큼 하나님의 제물을 누릴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자들에 대한 당연한 은혜의 혜택입니다. 이는 성전에 드려지는 헌물과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을 하나님이 사역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전도를 보내면서 마태복음10:9-10에 보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했습니다 (10:5-7). 하나님이 복음을 받은 자들을 통해 먹을 것을 주게 한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이 복음 전도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자가 사례비(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성전과 제단에서 사역하는 이들이 성전과 제단에 드려진 것을 얻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정리하여 언급했습니다. 고린도전서9:13-14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전도 효과를 위해 고린도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철학자(Sophist)들이 인생강의를 해주면서 사례비를 받았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전도 사역을 하면서 사례비를 받으면 자신이 전한 복음진리가 그들이 전하는 지식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래는 복음전도자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근거를 든 것입니다. 요즘 예수님이 목수 일을 했고 바울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해서 자비량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오늘날 사역자들도 일을 하면서 자비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일반 사회 안에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역자는 그 사역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사역을 하는 자라할지라도 교회가 생활비를 지급해 줄 수 없는 수준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급 능력이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제공받고 교회 사역에 전무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는 목수 일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통해 들어온 헌금으로 생활을 하셨으며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당시만 제외하고는 모든 교회에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받아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도 목회사역이나 선교사역에 전무하는 복음전도자들은 교회로부터 교회에 드려지는 헌금 가운데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정한 금액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더 영적 유익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에게 성전과 제단에 드려지는 것을 먹게 했고 신약시대에도 복음수용자들이 공궤하는 것을 먹게 한 것입니다. 그런 점을 이해하고 교인들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전하는데 전무하는 이들을 귀히 여기고 함께 하려 해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인 말씀을 가르쳐 바른 신앙으로 인도해주는 사역자에게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15:27에도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6:6에도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갈5:15).

 

  그리고 제사장이 제물을 삶는 부엌을 그 곳에 둔 이유는 제사장들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46:20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 가운데 제사장 몫으로 지정한 지성물들은 제사장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음식이 남는다고 해서 그것을 바깥뜰로 나가 레위인들이나 백성들에게 주면 안 되었습니다. 제사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의 구역인 안뜰과 성전 봉사를 하는 레위인들의 구역인 바깥뜰을 구별한 것입니다. 성소와 제단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이 물려 나온 제물(소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을 요리하는 제사장의 부엌과 그들이 그 제물을 먹는 제사장의 방은 안뜰에 있었고, 성전에서 일반봉사를 하는 레위인들과 백성들과 함께 먹을 제물(화목제물)을 요리하는 4개의 부엌과 그들이 함께 먹는 30개의 방은 바깥뜰에 있었습니다. 이는 성소와 제사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을 일반 봉사를 하는 레위인들과 성전에 들어온 일반 백성들과 철저히 구분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모두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위치에 있습니다 (벧전2:9, 1:6).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목회사역자나 일반봉사자와 일반 교인들이 모두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구약시대의 규례처럼 목회사역자를 일반봉사자나 일반교인을 구별하여 차등을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상 목회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사적인 영역이나 사역인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내세워 교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교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회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촛대는 교회를. 별은 목회자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1:20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5: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때 장로는 오늘날 교훈장로(목사)와 치리장로(장로)가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로서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고 사역을 주관하는 목회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순종하고에 해당하는 원형 휘포타쏘’(υποτασσω)종속하다’ ‘복종하다’ ‘굴복하다’ ‘순종하다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개인적인 사안에서는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예배와 사역 등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그 권위 인정하고 순종하려 해야 합니다



       2. 성전 담 측량( 15-20)

 

  15 그가 안에 있는 성전 측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쪽을 향한 문의 길로 나가서 사방 담을 측량하는데

  16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7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8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19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

  20 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에스겔이 성소 측량을 마친 후에 안뜰의 동문으로 나와서 바깥뜰에서 성전 외벽을 측량했습니다 (15). 성전 외곽 곧 바깥뜰을 둘러싼 벽()을 측량한 것입니다. 16-19절에 그가 측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북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남쪽을 측량하니 오백 척이요. 서쪽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측량하니 오백 척이라고 했습니다. 너비와 길이가 각각 500×500규빗(266×266m)의 정방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5에 보면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 여섯 척이라 그 담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도 한 장대며라고 했습니다. 그 담의 높이는 6규빗(3.2m)이었고 두께도 6규빗(3.2m)이었습니다. 이 담은 견고하고 높았습니다. 이 담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성전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담입니다.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었습니다. 20절에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성전 외곽 담은 일반영역과 성전을 구별하는 담으로서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의 장소를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3:5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라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45, 19:2, 20:26).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피조물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훼손되고 무시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과 이름과 영예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사시대에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법궤를 빼앗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법궤를 두는 곳마다 재앙을 내렸습니다. 다곤 신상을 훼파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독종으로 죽게 하고 농작물에 쥐들로 해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스스로 법궤를 유다 벧세메스로 돌려보냈습니다 (삼상6:1-12).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 뚜껑을 열어보다가 7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무엘상6: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라고 했습니다.

 

<結言>

  하나님은 성전과 같은 성도도 지키십니다. 고린도전서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고전6:16). 하나님의 이름과 목적과 영광이 있는 성도를 지키십니다. 시편37:28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도의 모든 소유를 지키십니다. 시편16: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와 성도의 기업을 사방으로 지켜주십니다. 스가랴2:5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