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출애굽기31:1-18

<題目> 성막 건축 담당자와 안식일

 

<序言>

  본 장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40일간 머물면서 받은 계시 가운데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우상 사건으로 하산을 하게 됩니다. 본 장은 성막 건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지도자와 그를 도울 지혜로운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안식일 규례에 대해 언급합니다. 내용구조는 성막 건축의 담당자(1-11절), 안식일 준수 명령(12-17절), 두 개의 증거판 수수(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성막 건축의 담당자 (1-11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4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5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6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7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8 상과 그 기구와 순금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9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10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하게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의 아들들의 옷과

  11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하나님이 성막과 성막 기구들과 제사장의 옷을 만들 책임자를 지명하고 그들에게 그것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 이름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입니다. '브살렐'은 유다 지파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홀리압'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로서 '아버지는 나의 장막'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로 일하게 한다고 했고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들을 붙여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어 명령한 것들을 다 만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사역자를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자신이 소명감을 느끼고 열정을 느낄 때 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브살렐은 유다 지파이지만 오홀리압은 단 지파입니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의 축복이 나오는데 그 축복은 언약적 축복의 의미가 있고 예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곳에 보면 유다 지파는 사자 지파로서 그리스도가 날 지파입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뱀 지파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방해할 지파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부르실 때도 차별을 두지 않지만 사역을 위해 부르실 때도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출신 성분과 신분과 지위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심정을 가진 자를 들러 사용하십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이 들어 쓰신 사람들 중에는 천하고 미약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1:26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부른 자에게는 성령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역자로 선택하여 부르실 때는 그에게 성령의 은혜와 은사도 함께 주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전도 보낼 때 당시 전도에 필요한 능력을 주시고 내 보냈습니다. 마태복음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실 때도 많이 준 자에게 많이 원했는데 그것은 많이 원하는 자에게 많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킬 때 필요한 은혜와 은사와 재능과 환경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줄 믿고 일을 하면 그것들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안식일 준수 명령 (12-17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십계명 중 제 4계명에 속합니다. 안식일(安息日,솨바트,Sabbath)은 산술역법에 따른 기념 절기로서 20:8-11, 레위기23:1-3에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안식일 규례는 십계명중 네번째 계명에 해당되지만 안식일 계명을 어기고는 다른 계명도 지키기 어렵습니다. 안식일 규례는 모든 신앙 생활의 구심점이 되는 규례입니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는 여부에서 확인됩니다 (13,16-17절).

 

  안식일을 지키게 한 이유와 목적은 첫째, 하나님의 창조사역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7절, 20:1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째날 하루를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안식일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상사를 주관하는 분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참된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안식일 지키게 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했음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5:15, 골2:16-17, 히7:18-19, 마12:8, 요5:9).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받던 애굽에서 해방시켜 인도해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장래에 주실 안식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히4:4-10, 계7:15-17, 21:3-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한 것은 가나안 땅에서 주실 안식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안식일의 규례는 첫째,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4-15절, 20:10). 안식일에는 본인뿐 아니라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육축이나 집 안에 거하는 객(손님)이라도 누구든지 일을 하지 말고 쉬어라고 했습니다 (신5:12-14). 이는 생업을 위한 일을 그치라는 말입니다. 만나(양식) 모으는 일이나 나무를 하는 일이나 짐을 운반하는 일을 그치라는 말입니다 (출16:22-23, 민15:32-36, 렘17:22). 그 날에는 상거래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느10:31, 13:15-21). 심지어는 자기를 위한 목적의 여행이나 오락이나 사사로운 말도 그치라고 했습니다 (사58:13-14). 둘째, 제사와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제사와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민수기28:9-10보면 매주(每週) 안식일에는 번제로 일 년된 흠없는 숫양 둘, 소제로 고운가루 에바 십분의 이와 기름, 전제로 포도주를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제물은 상번제 이외에 드리는 제물입니다.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보다 2배의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곧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9절에"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기 위해 일을 쉽니다. 그러기 위해서 6일 동안은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6일 동안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경고되어 있고 잘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14-15절, 민15:32-26, 출31:15).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죽임 당하고 총회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주실 언약적 축복에서 제외 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을 범하므로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습니다 (느13:18, 겔23:38). 그러나 안식일을 잘 지키는 자에게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사야58:14에 보면 즐거움을 얻고, 땅의 높은 곳에 올려 주고, 야곱의 업(業)으로 지켜 준다고 했습니다 (신32:9-14참조). 첫째,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58:14). 육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육체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길로 행하지 않고 오락을 행하지 않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으므로 육체적인 즐거움을 잃겠지만 그것들 이상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땅의 높은 곳에 올려 준다고 했습니다 (사58:14). '땅의 높은 곳'은 일차적으로 고지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이차적으로 안정과 번영에 대한 상징입니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잘 지키면 고토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안정과 번영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 야곱의 업(業)으로 길러 준다고 했습니다 (사58:14). '야곱의 업'은 언약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 자손을 하늘에 별같이 많게 하여 제사장적 나라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해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에 주일로 대치됩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제 7일, 일곱째 날로서 지금의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는 주일은  제 1일, 첫째 날로서 지금의 일요일입니다. 우리에게 안식교로 알려진 '제 칠일 안식일 재림교회(화이트)'에서는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하나님의 교회'(장길자, 안상홍증인회)에서도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토요일인 안식일이 아니라 일요일인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다른 날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전의 계명의 연약하여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그 날을 폐하고 다른 날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2:11, 히4:7, 7:18-19). 그 다른 날이 언제인지 문구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구원 역사를 언제 행하셨는지를 보면 일요일인 주일을 구속사(救贖史)의 중심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삼위의 하나님이 주일에 구속사를 행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했습니다 (마28:1-6). '안식 후 첫날'은 안식일인 토요일 다음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을 '주의 날'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할 보혜사 성령께서도 오순절에 강림했습니다 (행2:1-4).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고 유월절 다음날로부터 하면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이 안식일로서 토요일이니 유월절 다음날은 일요일인 주일입니다. 그 날로부터 49일째인 오순절도 일요일인 주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종말에 있을 계시를 주신 날이 '주의 날'입니다 (계1:10). '주의 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로서 일요일인 주일을 말합니다. 셋째, 사도들이 주일을 지켰습니다. 예수님 제자였던 초대교회 사도들도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느끼고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배했습니다 (행20:7, 고전16:2, 요19:20-25). '안식 후 첫날'은 지금의 일요일인 주일을 말합니다. 사도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것은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시 유대교인들이었던 유대인들이 토요일인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때 회당에 들어간 것입니다. 넷째, 교부들도 주일을 지켰습니다. 교부들은 사도들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The Ante-Nicence Fathers'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교부시대부터 AD325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교부들도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요일인 주일을 지켰습니다. 1세기 말경 안디옥교회 익나티우스(Ignatius)도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2세기 후반 고린도교회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Dionysius)도 주일을 지켰다고 했고, 3세기초 신학자 터툴리안(Tertullian)도 당시 주일을 지키기 위해 주일에 일상적인 일을 중단한 크리스찬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4세기 초 321년에 로마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을 돕기 위해 일요일을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일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일요일인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구속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실 영적 안식을 주실 것을 예표하는 계명입니다. 골로새서2:16-17에 보면 안식일은 그림자이고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의 실체와 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안식일은 하나님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택한 백성을 죄와 세상에서 구원할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참된 안식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그로 인하여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게 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날이고, 그 기쁨 속에서 미래에 약속된 궁극적인 안식(천국생활)을 사모하는 날입니다. 그것이 영적 안식에 참여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현대의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구약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오늘날은 주일을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원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외부적 방법 보다 영적 목적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4:24). 주일은 안식일이 예표하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기념하는 날입니다 (마28:1).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기쁨과 감사와 영광 가운데 영적 안식을 누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는 날입니다 (마12:7, 23:23-24). 그러므로 예배를 적극적으로 드려야 합니 (눅4:16-17, 행20:7, 13:42, 16:13).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에 대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구원적인 은혜뿐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함께 하셨으며 여전히 선한 목적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죄를 정결케 하고 영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교제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의 영이 살고 하나님을 향한 결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기에 사단은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을 방해합니다. 능력 사역에서 귀신을 쫓아낼 때 언제 들어왔느냐고 물어 보면 70%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들어왔거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때에 아주 망하게 하려고 들왔다고 대답합니다. 주일을 지키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극적 의미보다 적극적 의미를 더 중요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2:11-12). 주일에는 잘못된 것을 안 하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명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12:11-12, 요5:9-10). 찬송과 기도와 전도와 심방과 봉사와 구제와 헌신 등 생명을 살리는 선한 사역을 해야 합니다 (마12:5,11-12, 눅4:16, 행전13:42, 16:13, 20:7, 요5:9-10). 셋째, 내용이 중요시된 다음에는 방법 차원의 규례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입니 (마23:23-24). 그것은 외부적 규례가 내용을 더욱 온전케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율법규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 목적을 알맹이라 한다면 외부적 규례는 그릇으로서, 규례는 내용을 더욱 가치있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구약시대 때처럼 지키지는 않아도 되지만 나름대로 규례를 정해 놓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6일 동안은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해서 먹을 것이 있고 선한 일을 할 것이 있게 해야 합니다 (후3:10).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표징이었습니다 (13, 16-17절). '표징'(히.오트. sign)은 표시, 증표, 증거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미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주었습니다 (출20:8-11).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과 목적과 약속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산다는 증거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표징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초대교회 때 주일을 지키는 것은 크리스챤의 증거 곧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였습니다.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께 속한 증거입니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므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요 하나님의 자녀된 자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요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려는 모든 약속있는 축복을 받기로 결정된 자라는 증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증거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으며 삽니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삽니까?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삽니까? 누구에게 속한 자입니까?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주일을 지키므로 그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3:15에서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소망하며 사는 자인지 주일을 지키므로 우리를 아는 자들에게 대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3. 두 개의 증거판 수수 (18절)

 

  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다음에 모세에게 두 돌 판에 친히 기록하여 주었습니다. 그 돌 판을 증거판이라고 했습니다. 이 돌판에는 모든 율법의 말씀을 기록했다고 하기 보다는  율법을 간추린 십계명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돌에 새겨 주신 것입니다. 이는 이미 약속하신 대로 하신 것입니다 (24:12). 하나님이 기록하여 주신 계명은 모든 하나님 백성에게 삶의 표준과 기준과 척도가 됩니다. 이 두 돌판의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돌 판에 불과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생명력과 사랑과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結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를 새워 나가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역을 위해 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사역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소명의식이 있는지 하나님이 감당할 은혜와 은사와 능력과 환경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문화된 말씀이 한낱 종이에 불과한지 아니면 영혼을 살게 하고 생활의 기준이 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