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에스겔44:1-31

<題目> 성전 출입에 관한 규례

 

<序言>

  앞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광경과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규례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본장에서는 성전에서 제사로 섬기는 제사장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내용구조는 닫힌 동쪽 문(1-3), 성전 출입에 관한 규례(4-9), 레위지파 사람들에 대한 징벌(10-14), 사독 가문에 부여된 제사장직(15-16), 사독 제사장들이 지켜야할 규례(17-27), 사독 제사장들의 기업(28-31)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닫힌 동쪽 문 (1-3)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

  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지니라

  3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에스겔은 안뜰에서 번제단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인도자인 천사에 이끌려 바깥뜰 동문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동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1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혔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 것이라고 했고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문을 잠가 출입을 완전히 봉쇄한 것입니다.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그 동문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3절에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에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왕이라 해도 동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남문이나 북문으로 들어가 현관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나갈 때도 동문으로 나갈 수 없었고 들어왔던 남문이나 북으로 나가야 해야 했습니다. 현관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공적인 행사를 의미합니다.

 

  누구도 동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2절에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고 했습니다. 동문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문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문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과 구별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인간은 부정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한 취급을 받으려 하거나 하나님 행세를 하려 하거나 하나님 흉내를 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같은 취급을 받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과 같은 취급을 받으려 하지 않는 분입니다 (19:24, 삼상6:19, 삼하6:6-7). 둘째, 하나님이 성전에 영원히 계시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났었습니다 (10:18-22, 11:22-24).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동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왔었습니다. 43:4-5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영광에 해당하는 까보드’(כבוד)장관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관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 나타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났다가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들어오신 그 문을 닫아둔 것은 하나님이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자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제 하나님이 성전에 돌아오므로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하나님이 성전을 다시는 떠나지 않으므로 예루살렘을 영원히 번영케 하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이 유다를 떠나셨다가 다시 돌아오시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행위의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셨을 때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성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과 집들을 불사르고 약탈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신 것은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자들을 돌아오게 하여 유다를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나가지 않으시겠다고 들어오신 문을 닫아 잠그신 것은 다시는 유다를 떠나지 않으시고 유다 백성들과 영원히 거하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유다에 거하면서 유다 백성들과 교제하고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세우신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성령으로 거하시고 구원받은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성도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면서 성도와 교제하시기도 하십니다. 요한복음14:16-17“~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3:16에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14:16-17, 8:9,11, 고후1:22, 1:13).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담대하길 바랍니다.

 

 

       2. 성전 출입에 관한 규례 (4-9)


  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

  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

  6 너는 반역하는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7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성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며

  8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9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①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에스겔이 천사의 인도로 북쪽 문간을 통해 성전 앞에 이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4절에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성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성전’(בית)은 성소를 말합니다. 영광에 해당하는 까보드’(כבוד)장관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관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 나타난 상태를 말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영광에 해당하는 헬라어 독사’(δοξα)평판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에 대한 평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에서 자주 언급한 하나님의 영광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 부정한 인간이 그 위엄 앞에 엎드러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광을 통해 그가 임재하여 있는 것을 느끼고 서 있을 수 없어 그 앞에 엎드러진 것입니다. 다니엘10:8-9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시 환상으로 장차 오실 구원자의 모습을 보고 몸에 힘이 빠지고 썩는 듯하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1:17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고 했습니다. 요한은 계시 환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죽은 자같이 그 발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면 그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패함과 완악함과 부정함과 연약함과 무능함을 느껴서 그 앞에 떳떳이 서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뵈옵고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고 했고,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연기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뵈옵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했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갈릴리 디베랴 바다에서 예수님을 뵙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했고,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에 대해 깨달은 이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했습니다 (4:10, 6:5, 1:6, 5:8, 9:3-7, 딤전1:15).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겸손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 족속에게 규례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전심으로 주목하여 성전에 관한 모든 규례를 듣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목하고고 했습니다. ‘전심으로’ ‘주목하여’ ‘귀로 듣고에 해당하는 기본형은 마음(לב) (עין) (אזן)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성전의 모든 규례와 율례를 집중하여 보고 듣고 마음에 새겨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반역하는 자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다고 했습니다. 6절에 너는 반역하는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는 이스라엘 족속이 우상숭배와 같은 가증한 죄를 많이 지었는데 이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곧 이제는 새로운 성전에 참여하기 위해 그 죄들을 버리고 정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우상적 존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우상은 돈(mammonism)입니다. 본질적으로 자기(egoism)입니다. 그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세력을 구축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와 성도 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2:21-22, 고전3:16).

  

   ③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은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는 이방인을 데려오고 제물을 드릴 때에 성소에 있게 하므로 언약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7절에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성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며고 했습니다. ‘할례’(割禮)는 유대인 가운데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 8일째에 생식기 포피 끝을 돌칼로 잘라내는 의식을 말합니다 (17, 12). 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됨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몸의 할례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 됨의 징표로 생식기 표피 끝을 잘라내는 것이라면, 마음의 할례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혈통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 족속에 속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물을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직무를 맡을 수 없었고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22:25. 민수기18:2,7). 그런데 이방인들을 성전에 들이고 성전 직무를 맡기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실제 어떤 상황을 두고 한 말씀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전 직무와 관련된 정책이 느슨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은 성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9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8: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자들은 할례가 의미하는 내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2:28-29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후3:3, 10:15). 구약시대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로 대치되었습니다. 골로새서2:11-12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6:8). 세례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자가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로 받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사적 은혜에 참여하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이차적으로 죄성을 제거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3. 레위지파 사람들에 대한 징벌 (10-14)

 

  10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11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12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에 걸려 넘어지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이 그 죄악을 담당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그들이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14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떠났다고 했습니다. 10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고 했습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모세 때 금송아지 사건에서 충성된 모습을 보였었습니다 (32:25-29).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지파들 전체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고 (3:41,45, 8:15-19),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로 삼았습니다 (32:29, 1:49-53, 10:8-9).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으로 봉사하는 직무를 맡았거나 제사장이 아닌 일반 레위인들도 제사장의 봉사를 돕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졌고 이스라엘 족속으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넘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12절에도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 이스라엘 족속이 죄악에 걸려 넘어지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이 그 죄악을 담당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뒤의 내용들을 보아 레위 지파 가운데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지나온 역사에서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우상숭배에 앞장서거나 우상숭배에 참여하거나 우상숭배에 관망하므로 다른 지파 사람들도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죄를 물어 형벌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지파 사람들에게 제사 직분을 맡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13절에 그들이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직분을 맡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19:22, 21:21).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것도 희생제사에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지극히 거룩한 것들을 다루지 못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4:19). 한마디로 제사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제사 직분 외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들은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11절에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과 다른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 들게 되리라고 했고, 14절에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성전을 지키게 하고 성전에 모든 수종 드는 일과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 직분은 맡지 못하지만 일반 봉사 직분은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기 일, 그리고 일반적으로 백성들이 자신들의 희생 제물을 직접 도살했던 것을 돕는 일 등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일반 업무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레위 지파 사람들 가운데 그 동안 제사장 직무를 맡았던 제사장들이 우상숭배와 관련한 죄로 인해 그 동안 맡았던 제사 직분을 맡지 못하고 일반 레위인들이 하는 일을 맡으므로 제사장들이 레위인의 지위로 낮아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상숭배와 관련된 죄로 징벌을 받는 가운데서도 성전에서 일반 레위인들이 하는 일로라도 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긍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4. 사독 가문에 부여된 제사장직 (15-16)

 

  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6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

 

  미래의 새 성전에서는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이 제사와 성소 사역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하나님을 떠났을 때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직분을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15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직무는 처음에 레위 자손의 아론의 가문이 맡았고 아론 가문 가운데 엘르아살 가문이 맡았습니다. 그 전통은 엘리 가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엘리 가문의 부패로 다윗 때에 사독으로 세워졌습니다. 사독은 다윗 때에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직을 수행했고 (삼하8:17, 대상12:28, 24;1,3), 압살롬의 반역 사건 때에 다윗 왕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삼하15:24), 아도니야 반역 때에도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한데 반해 다윗의 후계자로 지목한 솔로몬을 후원했습니다 (왕하1:7,26,32). 그 결과 솔로몬 왕에 의해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왕상1:39, 2:26-27, 35). 사독 가문의 위치는 포로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40:46, 43:19). 에스겔과 에스라도 사독 계열로 추측됩니다 (7:1-7). 다윗 왕 때 발탁되어 신실하게 제사장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성전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일반 레위 사람들은 희생제물을 도살하거나 성전 복합 건물을 지키거나 성전 문을 지키는 일들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사 사역과 성소 사역의 직무는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에게 맡긴 것입니다. 15“~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사 사역을 말합니다. 또한 16절에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 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라고 했습니다. 이는 분향사역을 말합니다. 은 성소 가운데 곧 지성소 앞에 있던 나무 제단을 가리킵니다. 41:22곧 나무 제단의 높이는 세 척이요 길이는 두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이라고 했습니다. 성소 가운데 지성소 앞에 나무 제단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여호와 앞의 상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성전에는 진설병상(떡상)이나 등잔대(촛대)는 없고 분향단이 있어야 할 위치에 나무 제단만 있었습니다. 이 나무 제단의 역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위치를 보면 분향단 역할을 했을 수도 있고 어원을 보면 에 해당하는 슐한’(שלחן)식탁을 뜻한다는 점을 보아 진설병상(떡상) 역할을 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두 역할을 다 했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범죄로 인해 제사와 분향사역을 하지 못하게 하고 희생제물 도살이나 성전 복합건물과 성전 문 수직 사역을 맡게 했습니다. 하지만 레위 지파에서 사독 가문은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직분을 잘 감당했기 때문에 제사와 분향 사역을 하게 했습니다.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데 바로 앞 성소에서 사역을 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게 하는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새 성전에서는 하나님 편에서 직책을 바로 감당한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복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상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했습니다.

 

 

       5. 사독 제사장들이 지켜야할 규례 (17-27)

 

  앞 단원에서 레위지파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가운데서도 사독 가문은 위치를 잘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 성전에서는 사독 가문에게 제사와 성소 사역을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15-16). 그리고 이제 본 단원에서는 사독 가문의 제사장이 제사와 성소 사역을 할 때 지켜야 할 규례를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적으로 제사장 위치에 있습니다 (벧전2:9, 1:6). 사독 가문의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들을 살펴보면서 그 영적 의미들을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17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

  18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19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20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21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22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

  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24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25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 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26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27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첫째, 안뜰에 들어올 때는 가는 베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17절에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성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을 것이니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안뜰로 들어가는 것은 제단이나 성소 사역을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안뜰에 들어갈 때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양털 옷’(צמר)은 털로 만든 두터운 의복을 말합니다. 이는 땀이 나게 하는 옷으로서 땀을 흘리는 것은 불경한 것으로 간주되어 땀이 나게 하는 옷은 제의상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C.F.Keil, Schroder). ‘가는 베 옷’(בגדי פשתים)은 아마포(linen)로 만든 겉옷으로서 입으면 쉽게 구겨지지만 시원한 것이 특징입니다. 겉옷만 가는 베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쓰는 관도 가는 베 관을 써야하고, 바지도 가는 베 바지를 입고 허리를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동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18절에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고 했습니다. ‘’(פאר)은 머리에 쓰는 모자(turban)을 말하고, ‘바지’(מכנס)는 속옷을 말합니다. ‘땀이 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는 허리에 띠는 띠도 가는 베 띠로 띠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들이 사역을 위해 안뜰에 들어올 때는 밖에서 입던 일번 옷을 벗고 가는 베로 만든 제사장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둘째, 바깥뜰로 나갈 때는 수종 드는 옷을 벗어 놓아야 했습니다. 19절에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수종드는 옷은 가는 베로 만든 제사장복을 말합니다. ‘거룩한 방42:1-14에 자세히 나왔던 방으로서 성소 좌우편에 있던 3층으로 된 방을 말합니다. 그 방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보관하고 먹으며 제사장옷을 보관하고 갈아있는 방입니다. 제사장들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 안뜰로 들어갈 때는 이 방에서 일상복을 벗고 제사장복으로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친 후 바깥뜰로 나갈 때는 이 방에서 제사장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제사장복으로 백성들이 거룩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 19“~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거룩한 제사장복을 백성들이 있는 밖으로 입고 나가게 되면 거룩한 제사장복이 부정한 일반 백성들에게 접촉되므로 일반 백성들까지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이 부정한 인간들에게 노출되므로 의식상 인간들의 부정함이 하나님의 거룩성과 동일시되고 그로인해 하나님의 거룩성이 모욕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46:20에도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고 했습니다. 성물도 밖으로 가져나가 일반 백성들에게 접촉하게 하면 그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 때 시내산 위에 임재하셨는데 그 때 백성들을 산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격할 것이라 했습니다 (19:24). 유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블레셋에서 돌아온 언약궤(법궤) 뚜껑을 열어보았다가 70명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삼상6:19).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모실 때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가 뛰므로 언약궤가 흔들리자 뒤 따르던 웃사가 붙들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삼하6:6-7).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침해한 것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인간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입니다.

 

  셋째, 머리털을 깎기만 하고 밀거나 길게 자라게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20절에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머리털을 너무 짧게 밀어서 혐오스럽게 하거나 너무 길게 길어서 지저분하게 하지 말고 적당하게 잘라서 단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넷째, 안뜰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습니다. 21절에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제단과 성소 사역을 위해 안뜰에 들어갈 때는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마시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수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사역을 할 때 포도주를 마실 경우 경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게 될 수 있으므로 먹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으므로 욕되게 했습니다 (9:21). 이사야28:7“~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22절에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 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 들 것이며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아내를 선택할 때 과부나 이혼한 여인은 선택하지 말아야 하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 제사장의 아내였다가 과부된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과부나 이혼한 여인은 도덕적으로 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거룩한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은 결혼생활에서도 무흠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가르쳐야 했습니다. 23절에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제사 사역만이 아니라 신앙 교육에도 힘써야 할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이 제사 사역을 하지 않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쳐 분별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정해준 규례를 올바로 가르쳐 깨닫게 하므로 백성들이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송사하는 일을 규례대로 재판해야 했습니다. 24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백성들의 분쟁도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간에 분쟁이 생겨 송사가 있을 경우 제사장은 그 일을 재판하는데 있어서 자기 생각대로 하거나 자기 사익에 끌려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내신 규례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절기와 안식일을 법도대로 지켜야 했습니다. 24“~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모든 절기와 안식일은 모든 백성이 당연하게 하나님이 주신 규례를 따라 거룩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이 말씀을 한 것은 제사장들이 절기와 안식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모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홉째, 시체를 가까이하여 스스로 더럽혀서는 안 되었습니다. 25절에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고 했습니다. 율법에서는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21:1-4, 6:6-7, 19:11-19). 그것은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19). 그래서 의식법상 시체를 접촉한 자는 그 사람도 부정해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제사장은 시체를 접촉하므로 자신을 스스로 더럽혀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만 부모나 형제나 자매(시집가지 않은)의 시체는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장례를 치러야 하는 가족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는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7일을 더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체를 만진 자가 정결하게 하는 기간은 7일이었는데 (19:11-13), 제사장이 시체를 만진 경우엔 그 기간이 지난 후에 7일을 더 정결기간으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성소에서 수종들기 위해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정결기간을 모두 채운 후에도 제사와 성소 사역을 할 때는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4:3-12). 새 성전에서는 거룩과 성결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영적인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고 했고, 요한계시록1: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고 했습니다 (5:10, 20:6). 하나님이 사독 가문 제사장들에게 왜 이같은 규례를 지키도록 했는지 생각하고 그 의미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사독 제사장들에게 요구한 규례들을 함축적으로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첫째, 사역에 있어서 정결(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에 있어서 모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이나 기도를 하는 것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나 본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생활에서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생활에서도 덕을 상실하지 않도록 단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 사독 제사장들의 기업 (28-31)

 

  유다 백성들을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레위인들도 앞장섰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독 제사장의 후손들은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맡은 직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로운 성전에서는 사독 제사장의 후손들을 제단과 성소 사역을 하는 제사장으로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15-16). 그리고 그들이 지켜야 할 규례를 제시했습니다 (17-27). 그리고 나서 그들이 받은 기업에 대해 제시했습니다 (28-30).

 

  28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29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30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

  31 새나 가축이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서 죽은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말 것이니라

 

  사독 제사장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업과 산업이 되어 주실 것이므로 그들에게 기업이나 산업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28절에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에 해당하는 나할라’(נחלה)는 토지 같은 상속재산을 의미하고 산업에 해당하는 아후자’(אחזה) 소유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들에게는 토지나 소유를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토지나 소유가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필요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모든 예물들을 제사장들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첫째,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29절에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지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라고 했습니다. 제사의 종류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번제와 화목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번제는 모두 불살라 드리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 없어서 언급하지 않은 것 같고, 화목제는 제사장뿐 아니라 가족과 객과 빈민이 함께 먹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모든 제물을 제사장들에게 주게 한 것입니다. 둘째, 처음 익은 열매와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과 첫 밀가루는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30절에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모든 열매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고 모든 열매의 대표를 드린 열매입니다. ‘각종 거제 제물은 제사 방식에서 제사장이 예물을 제단 위에서 높이 올렸다가 내리는 제사를 거제(擧祭)라고 하는데 그 거제로 드려진 모든 제물을 가리킵니다. ‘첫 밀가루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로 만든 떡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9:28, 7:14,32, 15:19-21). 신약시대의 복음전도자들도 하나님이 복음수용자들을 통해 생활할 것을 제공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복음전도를 보내면서 마태복음10:9-10에 보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했습니다 (6:8, 9:3). 이는 다음절에 보면 복음수용자를 통해 제공받게 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10:11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고 했습니다. 핵심은 하나님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에게 생활의 필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 사역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복음전도 사명을 가진 자로서 육신의 필요는 하나님이 제공해 주실 것을 믿고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업이나 직업을 가지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목적을 두고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제사장들에게 돌아갈 예물들을 열심히 드리므로 그들로 복을 내리도록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30“~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예물을 응식으로 받은 제사장들이 예물을 드린 집에 축복할 수 있도록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성전사역에 전무하는 제사장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자에게 그들의 축복을 통해 복을 주십니다. 말라기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성전 사역에 전무할 수 있도록 백성들이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필요를 제공하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성이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이 제사제도를 통해 성전을 유지하려는 의도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들로부터 축복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이 일정부분 목회사역자의 생활비로 사용됩니다. 헌금이 목회사역자의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에 많이 부족하게 되면 사역자들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하면서 목회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목회사역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헌금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 유지시키고 영혼을 구원하여 성장시키려는 의도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생각하면서 헌금을 하는 자들은 목회 사역자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목회사역자들의 생활을 위해 헌금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9: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했고, 로마서15:27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6: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저절로 죽거나 찢겨서 죽은 것들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31절에 새나 가축이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서 죽은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연사하여 썩은 것이나 다른 짐승에게 물려서 찢겨 죽은 것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4:14, 22:31, 22:8). 그런 것들을 먹는 자는 본토인이든 거류민이든 부정한 자로 간주했습니다 (17:15). 의식상으로도 부정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취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일반 백성들보다 더욱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금한 것입니다.

 

<結言>

  하나님은 사독의 후손들이 모든 백성과 레위인들이 타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직책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독 후손들을 새로운 성전에서 제단과 성소 사역을 전무하게 하는 은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업과 산업이 되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모든 사람들이 다 타락할지라도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지 않으므로 하나님 나라의 구원사역에 쓰임 받는 은혜를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