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에스겔46:1-24
<題目> 왕이 준수해야 할 규례와 부엌
<序言>
앞장에서 언급한 절기에 대한 규례들이 본장에서도 계속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제사에 대한 결론적인 부분에 해당합니다. 내용구조는 절기와 제사에서 왕과 백성의 역할(1-15절),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16-18절), 제사장들의 부엌(19-20절), 레위인들의 부엌(21-24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절기와 제사에서 왕과 백성의 역할 (1-15절)
유월절을 포함한 주요 절기는 앞장 45:18-25에서 언급했었습니다. 이제 초하루 안식일과 매일 드리는 제사에 대해 제시합니다. 특히 제사에서 예배 관리와 제물 공급의 권한을 가진 왕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44:3에서 하나님은 왕에게 신성한 제사장적 특권을 부여했었습니다. 백성들의 대표로서 제사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오직 왕만이 하나님께서 친히 들어가셨던 바깥뜰의 동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43:1-12).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대제사장 직분을 연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요17장, 히2-10장).
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2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
4 안식일에 군주가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 마리와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라
5 그 소제는 숫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 씩이니라
6 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어린 양 여섯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7 또 소제를 준비하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8 군주가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9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백성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지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지며
10 군주가 무리 가운데에 있어서 그들이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이 나갈 때에 나갈지니라
11 명절과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 만일 군주가 자원하여 번제를 준비하거나 혹은 자원하여 감사제를 준비하여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 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지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지니라
13 아침마다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로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 이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준비하여 항상 드리는 번제물로 삼을지니라
①왕은 안뜰 문 통로에서 예배를 하라고 했습니다.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고 안식일과 초하루에는 열라고 했습니다 (1-2절). ‘안식일’은 일주일 중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초하루’는 매월 1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를 월삭(月朔)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바깥뜰 동문뿐 아니라 안뜰 동문도 닫혀 있었습니다 (44:1-3). 그런데 안뜰의 동문은 안식일과 초하루(월삭)에는 열어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왕이 제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해 들어와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해 번제와 감사제(화목제)를 드리고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 밖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 문은 저녁때까지 닫지 말라 했습니다 (2절). 왕이 바깥뜰 동문 현관으로 들어와 안뜰 동문 벽(문설주) 곁에서 제사장이 그를 위해 번제와 감사제를 드린 것을 본 후 안 뜰 문 통로에서 예배하고 밖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3절). ‘이 땅 백성’은 제사장들과 왕 이외의 나머지 예배자들을 가리킵니다. 일반 백성들은 안뜰 동문 입구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바깥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뜰에 이루어지는 제사장들의 제사사역은 볼 수 없었고 문 통로에서 예배하는 왕의 예배는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왕처럼 안식일과 초하루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되 왕과는 달리 문 입구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②왕은 안식일과 초하루에 번제와 소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군주가 드릴 번제(燔祭)는 흠 없는 어린양 5마리와 흠 없는 숫양 1마리라고 했고, 소제(素祭)는 숫양 하나에 밀가루 1에바이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1에바에는 기름 1힌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하루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1마리와 어린양 6마리와 숫양 1마리를 드리고 소제로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1에바이며 숫양에도 밀가루 1에바이며 모든 어린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1에바에는 기름 1힌씩이라고 했습니다. 군주가 올 때는 이 문 현관을 통해 들러오고 나갈 때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4-8절). 이는 왕이 안식일과 초하루에 드려야할 제사의 제물을 제시한 것이며 왕이 들어온(2절) 역순으로 나가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에바’(איפה)는 곡식이나 밀가루 같은 고체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1에바는 23ℓ정도 됩니다. ‘힌’(הין)은 감람유(올리브유)나 포도주 같은 액체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1에바는 3.7ℓ 정도 되는 양입니다. 5절에 나오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에 해당하는 ‘마타트 야도’(מתת ידו)는 직역하면 ‘그의 손의 선물’입니다. 이는 7절에 나오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와 동일한 의미의 표현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카아쉐르 타시그 야도’(כאשר תשיג ידו)로서 직역하면 ‘그의 손이 미치는 대로’입니다. 유사한 표현은 신명기16:17에 나오는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에 해당하는 ‘케마테나트 야도’(כמתנת ידו)가 있습니다. 이는 직역하면 ‘그의 손에 재물을 따라’입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힘을 다해 드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곧 감사하는 마음과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최선을 다해 드릴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③백성들은 성전을 출입할 때 들어온 문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초하루를 비롯한 모든 절기 때에 백성들이 성전으로 들어올 때는 북문으로 들어와 경배한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와 경배한 자는 북문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들어온 문으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초하루에는 왕이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았지만 (2,8절) 그 외의 절기에서는 왕이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왕이 백성들과 함께 들어올 때도 백성들이 들어올 때 들어오고 백성들이 나갈 때 함께 나가라고 했습니다 (9-10절). 성전 출입에서 들어온 문으로 나가지 말고 반대편 문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절기 때 백성들이 일시에 몰려들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뒤로 돌이키지 말라는 교훈을 줍니다 (눅17:31-32).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자들입니다. 골로새서3:9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소행으로 돌이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믿기 전에 행하던 나쁜 습관들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빌립보서3:13에는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라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육체적으로 신뢰했던 것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자랑하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인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문하에서 수학한 자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있었던 역사적 관념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자랑할 만한 혈통과 지위와 명예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빌3:3-9).
④왕이 자원제를 드릴 때는 안식일 때와 같은 방법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성전에서 명절과 성회 때에 성전에 모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소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바이며 숫양 한 마리에도 한 에바이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라고 했습니다 (11절).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로서 희생제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이 있는 번제나 화목제나 속죄제 등에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인 수송아지나 숫양이나 어린양 등에 따라 해당하는 소제의 양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규례는 앞서 5절과 7절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왕이 자원하여 번제나 감사제를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릴 때는 그를 위해 동쪽을 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가고 나간 후에 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12절). 이는 왕이 드리는 자원제(自願祭)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원제는 낙헌제(樂獻祭)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즐거움으로 헌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자원제로 번제와 감사제(화목제)를 준비해 드릴 때는 동문을 열고 제사를 끝내어 나간 후에는 다시 닫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바깥뜰 동문이나 안뜰 동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44:1-3). 하지만 안식일과 초하루(월삭)에는 왕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열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1-2절). 그런데 본 절에서는 왕이 자원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때는 동문을 열어 동문으로 들어오게 하되, 제사를 끝내 나간 후에는 다시 닫으라고 한 것입니다.
⑤백성들은 매일 아침마다 번제와 소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침마다 번제(燔祭)와 소제(素祭)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번제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로 드리고 소제는 밀가루 육분의 일 에바와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어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13-15절). 매일 아침마다 번제로 흠 없는 어린 양 1마리를 드리고, 그것과 함께 소제로 밀가루 6분의 1 에바와 기름 3분의 1 힌을 함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세 때에는 상번제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라고 했으나 새로운 성전에서는 아침에만 드리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모세 때의 상번제 소제물에 비해 새 성전에서의 소제물이 더 증가했습니다 (출29:38-40, 민28:1-15). 40-48장에 나오는 새 성전에서의 규례는 모세의 규례가 변경되거나 생략된 것들도 있습니다.
매월 초하루와 매주 안식일에와 매일 아침에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한 때에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공예배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일정한 때를 정해놓고 습관을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22:39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고 했습니다.
2.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 (16-18절)
1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군주가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17 군주가 만일 그 기업을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 후에는 군주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군주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라
18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지니 군주가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라 백성이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47:7-8에서 왕의 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왕에게 분배된 땅은 계속해서 그 아들의 기업이 됩니다. 왕이 땅을 아들에게 주면 그 땅은 아들의 기업이 된다고 했습니다. 만일 땅을 아들이 아닌 종에게 주었다면 그 땅은 희년에 다시 왕이나 왕의 아들이 돌려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6-17절). 한마디로 왕은 분배받은 땅에 대한 소유권이 있었고 그 땅에 대한 상속권은 그 아들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일시적으로 이전할 수는 있지만 희년에 다시 왕의 아들들이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땅은 왕가의 세습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희년’(禧年)에 해당하는 ‘쉐나트 하떼로르’(שנת הדרור)에서 ‘떼로르’(דרור)는 면제, 자유, 해방 등의 뜻입니다. 그래서 희년은 50년째 되는 해에 경제적인 문제로 종이 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고 경제적인 문제로 판 땅은 원소유주로 돌려보내는 해입니다 (레25:8-12). 이렇게 왕에게 땅을 분배해 주고 그 땅이 세습 기업이 되게 한 것은 왕이 권력과 무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은 백성의 기업을 빼앗아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때도 자기 땅으로만 주어야 하고 백성의 것을 빼앗아서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백성의 것을 빼앗아 주므로 백성들이 각각 산업을 떠나 흩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18절). 왕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게 되면 그 백성들은 경제적인 궁핍으로 결국 자신 살던 고토를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 왕에게 땅을 규정하여 준 것은 백성들을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제사장들의 부엌 (19-20절)
19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 곁 통행구를 통하여 북쪽을 향한 제사장의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쪽에 한 처소가 있더라
20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제물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제사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에게는 제물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것을 먹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만큼 하나님의 제물을 누릴 특권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자들에 대한 당연한 은혜의 혜택입니다. 이는 성전에 드려지는 헌물과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을 하나님이 사역자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전도를 보내면서 마태복음10:9-10에 보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고 했습니다 (눅10:5-7). 하나님이 복음을 받은 자들을 통해 먹을 것을 주게 한다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이 복음 전도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자가 사례비(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성전과 제단에서 사역하는 이들이 성전과 제단에 드려진 것을 얻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정리하여 언급했습니다. 고린도전서9:13-14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전도 효과를 위해 고린도교회에서는 사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철학자(Sophist)들이 인생강의를 해주면서 사례비를 받았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전도 사역을 하면서 사례비를 받으면 자신이 전한 복음진리가 그들이 전하는 지식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래는 복음전도자가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근거를 든 것입니다. 요즘 예수님이 목수 일을 했고 바울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해서 자비량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오늘날 사역자들도 일을 하면서 자비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일반 사회 안에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역자는 그 사역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역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목회사역을 하는 자라할지라도 교회가 생활비를 지급해 줄 수 없는 수준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는 일을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급 능력이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제공받고 교회 사역에 전무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는 목수 일을 하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통해 들어온 헌금으로 생활을 하셨으며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당시만 제외하고는 모든 교회에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받아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도 목회사역이나 선교사역에 전무하는 복음전도자들은 교회로부터 교회에 드려지는 헌금 가운데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정한 금액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좀 더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더 영적 유익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에게 성전과 제단에 드려지는 것을 먹게 했고 신약시대에도 복음수용자들이 공궤하는 것을 먹게 한 것입니다. 그런 점을 이해하고 교인들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전하는데 전무하는 이들을 귀히 여기고 함께 하려 해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인 말씀을 가르쳐 바른 신앙으로 인도해주는 사역자에게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15:27에도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고, 갈라디아서6:6에도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갈5:15).
그리고 제사장이 제물을 삶는 부엌을 그 곳에 둔 이유는 제사장들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절下에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 가운데 제사장 몫으로 지정한 지성물들은 제사장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음식이 남는다고 해서 그것을 바깥뜰로 나가 레위인들이나 백성들에게 주면 안 되었습니다. 제사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의 구역인 안뜰과 성전 봉사를 하는 레위인들의 구역인 바깥뜰을 구별한 것입니다. 성소와 제단에서 사역하는 제사장들이 물려 나온 제물(소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을 요리하는 제사장의 부엌과 그들이 그 제물을 먹는 제사장의 방은 안뜰에 있었고, 성전에서 일반봉사를 하는 레위인들과 백성들과 함께 먹을 제물(화목제물)을 요리하는 4개의 부엌과 그들이 함께 먹는 30개의 방은 바깥뜰에 있었습니다. 이는 성소와 제사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을 일반 봉사를 하는 레위인들과 성전에 들어온 일반 백성들과 철저히 구분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모두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장 위치에 있습니다 (벧전2:9, 계1:6).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목회사역자나 일반봉사자와 일반 교인들이 모두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구약시대의 규례처럼 목회사역자를 일반봉사자나 일반교인을 구별하여 차등을 두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서상 목회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목회사역자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사적인 영역이나 사역인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내세워 교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교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목회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촛대는 교회를. 별은 목회자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1:20에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5:5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때 장로는 오늘날 교훈장로(목사)와 치리장로(장로)가 나누어지지 않았을 때로서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고 사역을 주관하는 목회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순종하고’에 해당하는 원형 ‘휘포타쏘’(υποτασσω)는 ‘종속하다’ ‘복종하다’ ‘굴복하다’ ‘순종하다’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개인적인 사안에서는 따르지 않아도 되지만 예배와 사역 등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그 권위 인정하고 순종하려 해야 합니다.
4. 레위인들의 부엌 (21-24절)
21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를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22 뜰의 네 구석 안에는 집이 있으니 길이는 마흔 척이요 너비는 서른 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같은 크기며
23 그 작은 네 뜰 사방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방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24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
바깥뜰 4모퉁이 구석에 부엌이 있었습니다. 21-22절上에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를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뜰의 네 구석 안에는 집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집이 있으니’에 해당하는 기본형 ‘파타르’(קטר)는 ‘에워싸다’는 뜻입니다. 이는 담이 둘려 있었다는 말로서 23절에 나오는 ‘부엌’의 담을 말하는 것입니다. 23절에 “그 작은 네 뜰 사방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라고 했습니다. 그 부엌에 대해서는 이미 40:17-19에서 바깥뜰 박석 깔린 땅 위에 있었던 30개의 방을 설명하면서 언급했었습니다. 그 부엌은 4모퉁이에 1개씩 있었으므로 모두 4개인 것입니다. 그 부엌의 크기는 너비와 길이가 30×40규빗(16×21m)이었습니다. 22절에 “뜰의 네 구석 안에는 집이 있으니 길이는 마흔 척이요 너비는 서른 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같은 크기며”라고 했습니다. 그 부엌은 백성의 제물을 삶는 곳으로서 삶는 기구가 설비되어 있었습니다. 23-24절에 “~그 사방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그 부엌은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인들이 백성들 먹을 제물을 삶는 곳이었습니다. 제물 가운데 화목제(감사제, 서원제, 자원제)의 제물 경우에는 물려 나온 제물을 제사장과 레위인과 가족들과 극빈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이 부엌에서 화목제물을 삶아서 백성들이 박석 깔린 땅(기둥과 지붕이 있음)에서 먹은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안뜰에 있는 부엌은 제사장들의 부엌이었고 본 절에서 말한 바깥뜰에 있는 부엌은 레위인들의 부엌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의 부엌에서 삶은 제물은 안뜰에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고, 레위인들의 부엌에서 삶은 제물은 레위인들과 백성들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부엌과 레위인들의 부엌 곧 제사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의 구역과 수종 드는 레위인들의 구역이 구분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었습니다.
<結言>
희생제물을 먹는 것은 제물과 연합된다는 의미로서 제사의 의미를 인격과 삶에 적용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의 모든 희생제물이 지시하는 실재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인들의 죄를 십자가 죽음으로 대속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셨습니다. 친히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어주시고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롬3:25, 요일2;2, 골1:22, 고후5:18-19). 예수님은 자신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6:5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부가적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상호 내주하는 생활을 말하고 예수님을 인하여 사는 생활을 말합니다. (요6:54-57).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하며 이미 믿은 사람은 예수님과 교제하며 예수님을 목적하여 살기를 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