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아모스3:1-15

<題目> 현재 이스라엘에 대한 설교

 

<序言>

  3~6장까지는 설교 형태로 예언을 합니다. 그 중 3장은 현재, 4장은 과거, 5-6장은 미래의 틀에서 예언을 합니다. 3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을 2장에 비해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장의 내용구조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1-8), 이스라엘의 범죄 지적(9-10),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양상(11-15)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 (1-8)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게 일렀습니다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모두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백성으로 삼았음을 증명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제사장나라로 세우기 위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해낸 것입니다 (19:6).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민족 가운데 그들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그들만 알았으니 하나님이 모든 죄악을 그들에게 보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이는 이스라엘에게만 특별한 사랑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ידע)는 지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앎으로서 관계성을 기초한 지식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만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애정을 쏟았다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만 다른 민족에게 주지 않은 특별한 은혜를 주었습니다. 그들에게만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그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에게만 자신의 뜻을 알 수 있는 율법을 주었고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성전과 제사제도를 주었습니다. 그들에게만 특별한 은혜를 베푼 것은 그들을 거룩한 제사장나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름을 두시고 그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19: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했습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그에 합당한 징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4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5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에 대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했습니다 (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고는 같은 방향으로 같이 걸아갈 수 없습니다. 쟁기를 가는 소도, 행진을 하는 군사도, 여행을 하는 친구도, 사업을 하는 동업자도, 가정생활을 하는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처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뜻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지킨데 반해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기고 불순종과 죄악으로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고 했습니다 (4). 사자는 먹이를 사냥하여 잡았을 때 포효하며 먹이를 굴에 가져가 새끼들에게 먹이기 위해 새끼들을 부를 때 소리를 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심각한 죄악을 보았기 때문에 심판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고 했습니다 (5). 덫은 얇은 판이나 그물 등으로 장치한 기구 안에 새 모이를 넣어두고 새가 모이를 먹기 위해 들어왔다가 장치를 건드리면 판이나 그물이 덮쳐서 새를 잡는 형태의 기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려는 것은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만한 죄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드러났는데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8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아모스는 연이어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성읍에서 나팔이 울리는데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고 했습니다 (6). 성읍에서 파수꾼이 나팔이 부는 것은 적군이 쳐들어올 때 부는 것입니다. 그 경고의 나팔을 불 때 백성들은 두려워 피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려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7).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기 전에 먼저 선지자에게 알려서 그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한 다음에 그래도 돌이키지 않을 때 심판을 내립니다. 노아 때 세상이 홍수로 멸망당할 때도 그러했고 아브라함 때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6:13-21, 18:17-21, 19:12-13). 본절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종말의 날짜를 예언하면서 그 근거로 자주 활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절의 내용은 날짜 개념이 아니라 사건 개념의 계시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려할 때도 아모스에게 미리 그 계획을 알려 주었는데 그것은 아모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심판을 경고하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심판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어서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8). 사자가 부르짖으면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경고하면 그 심판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영광받으려는 목적을 가지셨습니다. 베드로전서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다른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수님의 구속과 성령님의 강림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성경말씀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배와 교제와 사역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범죄 지적 (9-10)

 

  9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10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스돗 궁궐들과 애굽 땅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산들이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고 하라 했습니다 (9). ‘아스돗’(Ashdod)은 블레셋의 5대 성읍중 하나로서 블레셋을 가리켜 한 말로서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자주 침입하여 괴롭힌 나라였습니다. ‘애굽’(Egypt)은 이스라엘이 그곳에 살 때 학대하여 괴롭힌 나라였습니다. 그처럼 이방국가로서 대적국가였던 나라에게 이스라엘의 죄를 보게 한 것입니다. ‘사마리아’(Samaria)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이방국가에게 이스라엘에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요란함에 해당하는 메호마’(מהומה)는 혼란, 소동, 괴롭힘 등의 뜻이 있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괴롬힘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레셋과 애굽은 그 나라의 왕궁과 성읍들에서 괴롭힘과 학대가 심하게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성읍들에 괴롭힘과 학대함을 있는지 보라는 것은 이스라엘 왕궁과 성읍에 괴롭힘과 학대함이 블레셋과 애굽에 못지않게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언약국가가 이방국가에 못지않은 죄를 지으므로 이방국가가 그들을 보고 놀랄 정도라는 것입니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른다고 하라 했습니다 (10). 권세자들이 궁궐에 살면서 포학과 겁탈을 일삼는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진 자들이 권세를 이용하여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심하게 억압하고 착취한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고 했습니다. 권세자들은 큰 궁궐을 짓고 살았습니다. 궁궐을 겨울 궁과 여름 궁이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냉난방 시설이 없는 때였으므로 겨울에는 벽을 두껍게 하고 문과 문틀을 튼튼하게 단 따뜻한 집에서 지내고 여름에는 벽이나 창을 거의 없는 시원한 집에서 지냈습니다. 아내들의 거처로 별채를 따로 두기도 했는데 상아(코끼리 이)로 장식을 해서 상아궁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침상과 의자의 방석이 언급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침대와 쇼파를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인데 그런 것들을 갖추고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요한 생활이 9절에서 언급한대로 학대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것을 탈취한 것들로 누리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권세를 가진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빚을 주고 빚을 못 갚으면 경작지와 집 등을 빼앗은 것입니다. 빼앗긴 자들은 자연히 사마리아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가난한 자들을 도울 것을 요구합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 때에는 종도 풀어주고 땅도 되돌려주고 빚도 탕감해 주게 했습니다 (25:13-55). 추수 때 곡식 한 뭇을 잊어버리고 왔으면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버려두라고 했습니다. 포도도 다 따지 말고 얼마를 남겨두고 감람나무도 한 번 떤 후에 다시 가서 살피지 말라고 했습니다 (19:10, 24:19-21). 그것은 가난한 자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사회는 그런 정신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기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국가는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세금을 충분히 거두어 국방과 교육에 사용하는 동시에 복지에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인이나 극빈자들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부자들은 자발적으로 기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사회 지도층이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 혹은 책임을 강조하는 프랑스어입니다. 당시 귀족들이 노동자들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자신들과 사회 전체가 잘된다는 생각을 가진 데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적으로는 교우들 가운데 극빈자들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3.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양상 (11-15)

 

  11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13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이스라엘의 힘을 쇠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궁궐을 약탈하리라고 했습니다 (11). 사면에 대적이 있어 힘을 약화시키고 궁궐을 약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Assyria) 제국의 디글랏 빌레셀 3(Tiglath-pileser III)B.C.733년에 북이스라엘에 속한 길르앗과 갈릴리를 침략하고, 살만에셀 5(Shalmaneser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도 건져냄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12). 당시 목자가 양을 치는 중에 맹수가 양을 잡아먹게 되었을 때 목자가 양의 다리나 귀 조각 등을 주인에게 가지고 가면 그것이 목자가 양을 지키려 했다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잃어버린 양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맹수에게서 양의 다리나 귀 조각을 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적을 통해 멸망시킬 때에 그들을 멸망시키는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심판 가운데서도 회복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전체의 의미를 볼 때는 두 번째 의미일 것 같으나 본문 자체만을 볼 때는 본문이 심판을 강조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아스돗)과 애굽에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야곱 족속에게 증언하라고 했습니다 (13). 이방민족이 증언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을 꺾어 땅에 떨어뜨릴 것이라고 하라 했습니다 (14). ‘벧엘’(Bethel)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배도에 대한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여로보암1(Jeroboam)는 북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제단을 쌓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왕상12:28-33). ‘제단의 뿔은 제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입니다. 속죄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벧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우상숭배의 장소를 완전히 파괴하되 가장 핵심적인 것까지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도 타락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종교적이 타락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범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데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쳐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라 했습니다 (15). 왕을 비롯한 권세자들은 겨울에 거할 곳과 여름에 거할 곳을 따로 두고 그 집을 상아로 장식했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것을 착취한 것으로 풍요를 누렸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結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언약국가로서 이방국가의 모습으로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미 심판을 경고했던 이방국가들에게 이스라엘의 심판을 증언하라고 한 것입니다. 13절에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고 했습니다. 이방민족이 증언을 할 정도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적인 단체와 다를 바 없고 성도들이 세속적인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가 바른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17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하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