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아모스6:1-14

<題目>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

 

<序言>

  본장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교만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해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은 북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북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내용구조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타락(1-6),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7-14)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타락 (1-6)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①마음이 교만했습니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을 이스라엘 집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1).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는 자들에 대한 지적입니다.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시온 산에 성전이 있으므로 적에게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고,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마리아 산이 요새화되었으므로 적에게 멸망하지 않을 것을 자부했습니다 (왕하17:5). 13절에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에 해당하는 카르나임’(קרנים)은 지명인 아스다롯 가르나임(Ashtaroth-karnaim)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아람 땅을 침략하여 승리했을 때 취한 곳이라고 합니다. 왕은 그 군사적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만심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아람의 성읍을 자기들의 힘으로 빼앗았으니 자기들 힘으로 북스라엘을 든든히 지킬 수 있다는 자만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어도 자기들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교만이었습니다. 아모스는 그 사실을 풍자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하여 지도자들에게 만연했던 자만심을 지적한 것입니다 (T.E.McComiskey).

 

  하나님은 그들에게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들보다 나으며 그들의 영토보다 넓으냐고 했습니다 (2). ‘갈레’(Calneh)는 이스라엘 동쪽 앗수르 지역으로 생각되고, ‘하맛’(Hamath)은 이스라엘 북쪽의 아람 지역이고, ‘가드’(Gath)는 유다 남쪽 블레셋 지역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을 보라는 것입니다. 앗수르와 아람과 블레셋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보다 강하지도 않고 땅도 넓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그리 교만하냐는 것입니다.

 

   ②사치와 연락을 즐겼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3). ‘흉한 날은 재앙의 날,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이 징벌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범죄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징벌하는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징벌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부정하고 더욱 포악하여 담대하게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는다고 했습니다 (4). 그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상아 상’()은 목재로 만든 침상에 코끼리 윗 턱 위로 길게 자란 송곳니로 장식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먹었습니다.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어린 것들을 골라 잡아먹은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맨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잤을 것입니다. 양고기나 소고기를 1년에 3차례 절기 때에나 먹었을 것입니다. 극빈자들은 그조차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부()로 사치를 부린 것입니다.

 

  그리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발랐다고 했습니다 (5-6). 그들은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렸습니다. ‘비파는 현대에 하프(harp)와 비슷한 현악기입니다. 또한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했습니다. 다윗처럼 자기를 위해 악기를 제조했다는 말은 그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악기를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다윗처럼 악기를 만들되 자기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악기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쾌락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또한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술에 도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귀한 기름을 몸에 발랐습니다. ‘기름’(שמן)은 감람나무에서 나온 액체로 만든 향수용 기름을 말합니다. 몸에 향수용으로 기름을 바른 것을 말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가난하여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인데 그들은 부()로 향락을 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6“~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환난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두 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북이스라엘이 당한 환난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해서 북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를 일컫는 말, 곧 북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표현으로 봅니다. 그래서 요셉의 환난은 북이스라엘이 당한 환난을 의미로 봅니다. 앞장 5:15에서 요셉의 남은 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곳에서도 요셉을 북이스라엘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볼 경우 본절은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사치와 향락을 누리면서도 북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할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7-11절의 내용인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한다면 이 관점이 맞는 듯합니다. 두 번째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당했던 환난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셉을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 요셉으로 보고 요셉의 환난을 요셉이 당한 환난으로 보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빠지고 애굽에 종으로 팔리고 애굽 보디발 장군 아내에게 무고를 당해 시위대 감옥에 갇히는 환난을 당했었습니다 (37:18-28). 그렇게 볼 경우 본절은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부를 근거로 사치와 향락을 누리면서 가난하여 요셉처럼 고난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라고 했습니다. 말들은 바위로 뒤덮인 곳으로 달리지 않습니다. 소도 바위로 뒤덮인 곳에서 쟁기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의를 쓸개와 쓴 쑥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나 도리어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5:7-12에 보면 본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한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높은 이자로 빚을 주고 빚을 못 갚을 경우 밭을 빼앗거나 채무자를 붙잡아 종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희년 때 종에서 돌아와 밭을 찾으려 하면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해서 그 사람의 밭이 아니라는 증언을 하게하고 재판관에게 뇌물을 주어 굽은 판결을 내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사치와 향락을 누렸고 그러면서도 고통을 당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7-14)

 

  7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9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10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11 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

  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13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혀갈 것이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7).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교만하고 사치와 향락만 일삼고 환난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대적에게 붙여 멸망하게 할 때 사로잡힌 자들 가운데 가장 앞서 사로잡혀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치와 향락으로 시끄러웠던 소리가 그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그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고 했습니다 (8).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서 여기에서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번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번영을 혐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적들에게 정복당하고 약탈당하게 할 것이라는 겁니다.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해도 다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9). ‘한 집은 성읍의 집들 가운데 최소의 집을 말하고, ‘열 사람은 성읍에서 최소의 사람을 말합니다. 최소한의 남은 집도 파괴되고 최소한의 남은 사람도 다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군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소수도 기근과 전염병으로 모두 죽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철저하게 파멸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친척 곧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하면 대답하기를 없다할 것이라고 할 것이며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 죽은 사람의 친척이 죽은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그 시신을 집 밖으로 가져갈 때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아직 더 있는지 물으면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집 깊숙한 곳에 죽음을 기다리며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자가 없다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또 다른 재난이 오게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시신을 가져가는 친척이 더 이상 죽은 사람이 없냐고 물었을 때 안에서 없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경우 시신을 가져가는 친척이 그 대답을 하는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등의 표현 말입니다. 그래서 안에서 시신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시신을 가지러 온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말을 했다가는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아시고 자기들까지 모두 죽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죽고 죽어가는 비참함을 나타낸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1). 큰 집에서 작은 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집이 지진의 재난으로 모두 파괴될 것을 말합니다.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12). 말들은 바위로 뒤덮인 곳으로 달리지 않습니다. 소도 바위로 뒤덮인 곳에서 쟁기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의를 쓸개와 쓴 쑥으로 바꾼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나 도리어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높은 이자로 빚을 주고 빚을 못 갚을 경우 밭을 빼앗거나 채무자를 붙잡아 종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희년 때 종에서 돌아와 밭을 찾으려 하면 그들은 사람들을 매수해서 그 사람의 밭이 아니라는 증언을 하게하고 재판관에게 뇌물을 주어 굽은 판결을 내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사치와 향락을 누렸고 그러면서도 고통을 당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한다고 했습니다 (13). 가치없는 허탄하고 허망한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었던 것처럼 에 해당하는 카르나임’(קרנים)은 지명인 아스다롯 가르나임(Ashtaroth-karnaim)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아람 땅을 침략하여 승리했을 때 취한 곳이라고 합니다. 왕은 그 군사적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만심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아람의 성읍을 자기들의 힘으로 빼앗았으니 자기들 힘으로 북스라엘을 든든히 지킬 수 있다는 자만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어도 자기들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교만이었습니다. 아모스는 그 사실을 풍자하여 북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하여 지도자들에게 만연했던 자만심을 지적한 것입니다 (T.E.McComiskey).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를 일으켜 그들을 쳐서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시내까지 학대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4). 북이스라엘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강해진 줄 알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나라를 일으켜 그들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는 앗수르(Assyria) 제국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파멸당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 아바라 시내까지 학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맛 어귀에서 아바라 시내까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기업의 경계선으로서 여로보암이 회복한 경계입니다 (34:8-12, 왕하14:25,28). 곧 이스라엘 전 영토를 의미합니다.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전체를 압제하고 유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 제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結言>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나라가 안정되고 번영하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생각지 않고 자기들이 힘을 자랑했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옵니다 (18:12, 4:6, 벧전5:5). 그리고 북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부요하게 되자 가난한 자들을 생각지 않고 사치했으며 향락을 누렸습니다. 교만과 향락은 말세의 현상입니다. 디모데후서3:1-4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고 했습니다. 이어지는 디모데후서3:5에는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