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아모스7:1-17
<題目> 세 가지 환상
<序言>
아모스가 지금까지는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했었습니다. 본장에서는 3가지 환상을 통해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내용구조는 재앙에 관한 세 가지 환상(1-9절), 아마샤 제사장의 대적(10-17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재앙에 관한 세 가지 환상 (1-9절)
북이스라엘은 심각한 범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고 다른 우상들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지도자들이 소외계층을 억압하므로 공의와 정의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재앙을 보내어 징벌하기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재앙에 관한 내용을 아모스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① 메뚜기 환상이었습니다 (1-3절).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첫 번째 계시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이 메뚜기를 지으시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 내용이었습니다 (1-2절上). 메뚜기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풀이 자라면 베고 그 후에 풀은 다시 움이 돋아 자라게 되면 또 풀을 벱니다. 당시에는 대개 처음 난 풀은 백성들이 베어 왕에게 바쳐서 왕궁에서 사용하게 했고 그 다음에 나는 풀은 백성들이 베어서 자기들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T. E. McComiskey, D. Stuart). 풀은 베어다 가축을 먹이기도 하고 가축의 저장용 먹이로 건초를 만들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사용할 풀은 있었으나 백성들이 사용할 풀은 전혀 얻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메뚜기를 보내어 땅의 모든 풀을 먹어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막 지역의 메뚜기는 한 떼(무리)가 1천억 마리까지 나오고, 메뚜기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배에 달하는 식물을 먹으며, 메뚜기 떼 1톤이 하루에 사람 2,500명분의 식량을 없애버린다고 합니다. 그런 메뚜기 떼들이 모든 풀을 다 먹어버리니 백성들 생계가 막막하게 되는 것입니다. 메뚜기 환상은 하나님이 자연재해를 통해 징벌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아모스는 첫 번째 환상에서 재앙의 내용을 보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여호와여 청하건데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했습니다 (2절下). 아모스는 재앙에 관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할 재앙이 이스라엘의 죄 때문인 것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미약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토록 끔직한 재앙을 견뎌낼 힘이 전혀 없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야곱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이 야곱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임을 강조하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하나님이 죄악이 관영한 소돔성을 유황불로 멸하려 했을 때 아브라함이 소돔성에 있는 롯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소돔성에서 롯의 가정을 건져내주었습니다 (창18:22-33, 19:29). 하나님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 했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출32:11-14, 31-32). 야고보서5:16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했습니다.
② 불 환상이었습니다 (4-6절).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두 번째 계시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는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4절). 하나님이 불로 북이스라엘이 활동하는 모든 바다를 징벌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육지까지 징벌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거센 불길로 바다의 모든 것을 태우고 육지의 모든 것을 태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불 재앙환상은 하나님이 전쟁을 통해 징벌할 것을 보여주는 내용인 듯합니다.
아모스는 두 번째 환상에서 재앙의 내용을 보고 또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이것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5-6절). 아모스는 첫 번째 이상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하나님께 간청을 드렸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③ 다림줄 환상이었습니다 (7-9절).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세 번째 계시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주께서 담 곁에서 다림줄을 가지고 서신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셨고 아모스는 다림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7-8절上). ‘다림줄’은 건축물에서 기둥이나 벽이나 담을 쌓을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줄 끝에 돌이나 금속 추를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려서 수직을 보는 도구입니다. 당시 담을 쌓을 때 수직으로 곧게 쌓기 위해서는 이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담 곁에 서서 다림줄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담이 비틀어지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담을 헐고 다시 쌓으려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건축가로, 이스라엘을 담으로, 다림줄을 공의의 법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준인 공의의 법에 비추어 비틀어진 이스라엘의 행위는 징벌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림줄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8下-9절).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언약 백성답게 살아야 하나 그렇지 못했기에 하나님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의 산당과 이스라엘의 성소를 헐겠다고 했습니다. ‘이삭’과 ‘이스라엘’은 모두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지칭하는데 있어서 ‘이삭’을 언급한 것은 족장 이삭이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을 산 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할 자들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산당’은 산에서 바알 등의 우상을 숭배하던 장소를 말하고 ‘성소’는 도시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던 장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둘 다 우상숭배의 장소에 대한 표현들이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다 훼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JeroboamⅡ)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칼로 살해당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왕하15:8-10).
하나님이 첫 번째 메뚜기 환상과 두 번째 불 환상을 보여주실 때 아모스는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은 백성들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다림줄 환상을 보여주실 때는 아모스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범죄 핵심을 말씀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범죄행위의 주된 장소와 주범에 대해 징벌할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인 공의의 법에 비추어 잘못된 것을 심판하겠다고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인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행위를 징벌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왔을 때는 하나님 말씀에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말씀대로 바로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도 말씀으로 판단하여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는 천국에 갈지라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냐에 따라 상급이 다릅니다 (고전3:12-15). 그 판단 기준은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2. 아마샤 제사장의 대적 (10-17절)
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① 아마샤가 여로보암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했습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여로보암이 칼에 죽고 이스라엘이 사로잡혀 이스라엘 땅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10-11절). 북이스라엘은 벧엘을 중심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에게 3가지 계시환상을 통해 재앙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다림줄 환상을 통해 우상숭배의 장소들을 훼파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의 집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환상을 예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샤가 아모스 선지자를 여로보암왕에게 모반죄로 고발했습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가 왕은 칼에 죽고 백성들은 사로잡혀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 중 멸망을 경고한 내용만 들어서 고발을 한 것입니다. 아마샤(Amaziah)는 벧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벧엘은 당시 종교의 중심지로서 우상숭배가 극심했던 곳인데 아마샤는 그곳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죄를 지적하면서 벧엘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에 대해 지적했기 때문에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에 관심을 가질게 될 경우 자신이 하는 사역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를 여로보암왕에게 고발을 한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여로보암 왕가의 몰락을 예고하여 반역을 획책한다고 고발을 한 것입니다. 마치 신약시대에 유대교 수장들이었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자기들의 권위와 수익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정치적 모반죄로 고발한 것과 같습니다. 아마샤 제사장의 고발은 40년 동안이나 오랫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대적 세력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던 여로보암왕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②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벧엘을 떠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선견자로 부르면서 하면서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예언을 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왕의 성소이고 나라의 궁궐이라고 했습니다 (12-13절). ‘선견자’(先見者, חזה)는 선지자(先知者, נביא)와 같은 말입니다. 굳이 구별하자면 선견자는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 면이 강조된 명칭이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면이 강조된 명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샤가 선견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아모스가 하나님의 이상을 본 것을 선포했기 때문에 아모스가 본 이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T.E.McComiskey). 아마샤는 아모스를 고발한 다음에 아모스에게 북이스라엘의 벧엘을 떠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북이스라엘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고 유다로 가서 떡을 먹으며 예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떡을 먹으며’라는 표현은 예언사역을 하여 얻은 소득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표현입니다. 아마샤는 자신이 제사장 사역을 생계를 위해 직업적으로 했기 때문에 아모스도 선지자 사역을 생계를 위해 직업적으로 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런 표현을 썼을 것입니다. 예언사역으로 소득을 챙기려면 남유다로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아모스가 남유다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해 예언사역을 하려면 남유다로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역을 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생계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벧엘이 왕의 성소이며 나라의 궁궐임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여로보암왕이 종교생활을 하는 곳이고 수익으로 여로보암왕의 궁궐을 돕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자신은 벧엘의 종교를 담당한 대표자로서 나라와 왕을 위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왕의 관계를 말하여 아모스로 하여금 자신이 왕에게 고발한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므로 아모스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③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고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양 떼를 따를 때 하나님이 자신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백성 북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14-15절). 아모스는 자신이 원래 소나 염소나 양들을 기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목자이자 농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소명을 주어 북이스라엘에 예언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생계를 위해 사역을 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불러서 보낸 선지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자신이 생계를 위한 목적이라면 예언사역을 할 필요가 없는 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예언사역은 하나님이 명령한 사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어서 아마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하지 말고 이삭의 집을 향해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그의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며 그의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그의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그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16-17절). 아모스는 하나님이 직접 불러 북이스라엘에 예언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 선지자를 왕에게 고발하고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는 행위였습니다. 자신의 육신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 죄를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그에 대해 징벌을 경고한 것이었습니다. 아마샤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고, 그의 아내는 성읍에서 창녀가 될 것이고, 그의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고, 그의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마샤가 더러운 땅에서 죽는다는 말은 이방 땅에서 죽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우상숭배한 곳에서 죽는다는 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이든 수치스러운 죽음을 죽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의 아내가 창녀가 된다는 것은 노예로 끌려가 창녀로 팔릴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 노예로 팔리면 하녀가 되지만 이방인에게 노예로 팔리면 창녀로 팔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노예중에 가장 비참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칼에 엎드러진다는 말은 자연사하지 못하고 살해당한 것을 말합니다. 그의 땅이 측량하여 나뉘어질 것이라는 말은 그의 많은 땅들도 다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상숭배에 앞장서고 왕에게 아부하면서 축적한 재산이 자기도 누리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다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대적에게 침략당해 패하고 그들에게 사로잡혀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토에서 이방 땅으로 사로잡혀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앗수르(Assyria) 제국의 살만에셀(Shalmaneser)에게 점령당하므로 성취됩니다 (왕하17:24, 렘6:12, 미2:4).
아모스 선지자는 남유다 드고아에서 가축도 치고 농사도 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생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사역을 하라고 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북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벧엘에서 제사사역을 하던 아마샤 제사장이 방해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제사사역이 해를 입게 되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해야 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에게 아부하며 우상숭배를 조장하면서 자기 자리를 유지했고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사역 때문에 백성들이 이탈하므로 자기의 생계가 위태롭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모반죄로 고발했고 아모스 선지자를 협박하여 벧엘을 떠나게 하려 했습니다. 그는 실로 생계를 위해 사역을 하는 거짓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표현으로 하면 삯군목자인 것입니다 (요10:2).
<結言>
오늘날 목회자나 선교사는 생계 때문에 사역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역을 시켜준 것만도 감사해야 하고 그 사역이 더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고 했고, 빌립보서1:20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명예를 지키고 자기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거나 사역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해주시고 사역에 참여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고 주를 위해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