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아모스9:1-15
<題目>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
<序言>
본장에서는 환상을 통해 번제단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종교적 심판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남은 자’를 통한 회복에 대해 언급하므로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역사는 변함없이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이스라엘 대한 최종적인 심판(1-10절), 이스라엘의 미래(11-15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 대한 최종적인 심판 (1-10절)
1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
2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3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 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이요
6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모스가 계시환상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일렀습니다.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1절). ‘제단’은 북이스라엘 벧엘 성소의 번제단을 가리킵니다 (Ellicott).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번제단이라는 사람들도 있으나 (J.Calvin, F.Keil, J.Deane) 본 내용이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보면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벧엘 성소의 제단 곁에 서서 일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고 말입니다. ‘기둥 머리’는 성소의 문이 달린 기둥의 꼭대기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둥 머리를 치게 한 것은 기둥을 무너뜨려 기둥이 받치고 있던 주랑이나 지붕이 내려 앉아 성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환난에서 남은 자는 칼로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통해 벧엘 성소를 무너뜨리고 그로인해 그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을 죽게 하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는 대적들이 칼로 죽일 것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죄가 신앙적인 타락에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내앙을 내릴 때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낼 것이고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2절). 스올로 파고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의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올’(שאול)은 구덩이, 무덤, 음부, 지옥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지하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지하세계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땅의 깊은 곳으로 도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붙잡아 올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거기서 붙잡아 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스올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간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은 하늘로 도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서 끌어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기 때문에 혹시 인간이 갈 수 없는 곳까지 간다 해도 하나님이 붙잡아 온다는 것입니다 (시139:7-12).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며 하나님의 눈을 피해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갈멜산 꼭대기로 숨을지라도 하나님이 찾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멜산’(Carmel. mt)은 북이스라엘에 있는 산으로서 표고가 546m인데 숲이 우거져 있어서 은신처로 삼기 좋았고 좁은 동굴들이 많이 있어서 은신처로 삼기 좋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가장 높은 험한 지역으로 도망할지라도 하나님이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다 밑’은 갈멜산 꼭대기와 대조된 뜻으로서 가장 깊은 은밀한 곳을 말합니다. ‘뱀’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물뱀으로 번역했으나 히브리인들이 바다 속에 있다고 생각했던 상상의 동물인 뱀, 용, 악어, 라합, 리워야단 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깊은 곳까지 가서 숨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찾아서 징벌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되면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포로로 사로잡혀 갔어도 죽임을 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앙에서 피하려는 자를 유심히 주목하고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리지 않고 화를 내리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는 공의로운 성품을 가진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심판하려하는지 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만져 녹게 하사 거기 거주하는 자가 애통하게 하며 그 온 땅이 강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낮아지게 하시며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시라고 했습니다 (5-6절). 하나님은 땅을 만져 녹게 하고 땅을 솟아오르게 하고 낮아지게도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온 땅을 녹게 하고 지진이나 홍수를 일으킬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시46:6). 또한 하늘에 궁전을 세우시며 땅 위에 창공이 펼쳐지게 하고 바닷물을 지면에 쏟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서 땅을 주권적으로 움직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온 땅에 재앙을 내릴 수 있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애통하게 할 수 있는 분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단에 성전를 짓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놓고 우상처럼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우상 자체를 숭배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전을 무너뜨려 그 우상숭배하는 곳에서 죽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로 도망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지방에서 범죄하면 서울로 도망하고 서울에서 범죄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도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범죄한 사람이 서울에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대표기도를 하고 서울에서 범죄한 자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교회에 다니면서 대표기도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교인이 교회에 등록하면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왔는지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눈을 감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못 보는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므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바로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바로 서야 합니다.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8 보라 주 여호와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노니 내가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0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앞에 구스 족속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7절). ‘구스 족속’(Ethiopians)은 피부가 검은 에디오피아 지역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하찮게 여기는 족속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Philistines)은 유다 서쪽 지중해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라 사람들을 가리키고, ‘갑돌’(Caphtor)은 지중해의 그레데 섬을 가리킵니다. ‘아람 사람’(Syrians)은 이스라엘 북쪽에 수리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기르’(Kir)는 이스라엘 동쪽 메소포타미아의 앗수르 지역에 있는 한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 앞에는 하찮은 민족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냈지만 블레셋 사람들도 그레데 섬에서 이주하게 했고 아람 사람들도 기르에서 이주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특별한 민족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했지만 다른 민족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범죄한 나라를 주목하니 그것을 지면에서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8절). ‘야곱의 집’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나라들을 보시고 그들을 딸에서 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인 까닭에 심판하되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체’는 곡식을 거르는 도구입니다. 밑이 그물로 되어 있어서 곡식을 넣고 흔들면 불순물들은 그물 아래로 떨어지고 체 위에는 곡식 알갱이만 남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만국에 사로잡혀 가게 하여 온갖 시련 속에서도 참 신앙을 유지하는 자들을 남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른 바 ‘남은 자’들입니다 (T.E.McComiskey).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가운데서도 후에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쓰임받은 남은 자를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보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화가 자기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이르지 않는다고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10절). 하나님이 남은 자를 보존하시지만 범죄한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언약백성인 까닭에 결코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이라면 언약 백성답게 죄에서 떠나야 하는데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게 한 것은 거룩한 제사장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출19:6).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므로 번영하는 나라가 되어서 열방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블레셋 족속의 이주나 아람 사람들의 이주나 다름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세속적인 목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체질하듯이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질에서 남은 자 곧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들만 남겨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어 구원하신 것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벧전2:9).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체질하기 전에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의 미래 (11-15절)
이 부분은 아모스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벌하지만 종국에는 은혜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담긴 부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언약 백성과 맺은 언약을 근거하여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보게 해줍니다.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14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5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절). ‘그날’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여 징벌하는 날을 말합니다. 곧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9-10절). 그날에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통합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인바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은 허물어진 다윗의 집을 말하는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몰락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가를 영원히 지속시켜 주시겠다고 언약한 대로 다시 다윗 왕가를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삼하7:12-13). 다윗이 왕으로 있었을 때 통합 이스라엘이 강성했던 것처럼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할뿐 아니라 나뉘어져 있었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한 나라가 되어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에돔에 남은 자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그들’은 회복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에돔을 비롯하여 주변 열국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장차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오셔서 복음으로 인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을 예언한 것이며 그 때에 세계 만민에게 복음이 전해져 수많은 이방인들이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을 예언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은 선교사역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예루살렘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역이 순조롭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예루살렘 공회에 참여했습니다. 사도들을 만나 설득하고 공회에서 토론도 했습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니 이방인에게 할례라는 무거운 멍에를 지우지 말자고 했습니다. 베드로에 이어 사도 야고보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본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하면서 이방인들 중애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사도행전15:16-17에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고 했습니다. 이 사실로 보아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것은 장자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오셔서 복음으로 인한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 그리고 복음이 세계에 전해져 이방인들이까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이스라엘을 번영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날이 이르면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을 녹으리라고 했습니다 (13절).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따른다는 말은 농사가 너무 잘되어 곡식을 추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추수가 끝나자마자 밭을 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잇는다는 말은 포도 수확은 포도를 따서 포도즙 틀에 밟아 포도즙을 저장하게 되는데 곡식을 파종하고 나서 곧바로 포도를 수확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곧 곡식 추수를 마치자마자 곡식 파종을 하고 곡식을 파종하자마자 포도를 수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한기가 없이 바쁘게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농사가 잘되어 식량이 풍성하게 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을 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요엘3:18에 보면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고 했습니다.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말은 산들에서 포도가 풍성하게 수확될 것을 표현한 말이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라는 말은 산들에서 양들로부터 풍성한 젖을 얻게 될 것을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곧 평지의 농사가 잘될 뿐 아니라 산지에서도 농사와 목축이 잘되어 그야말로 부요한 삶을 살게 될 것임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농산물과 목축물이 풍성히 수확된다는 것은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을 묘사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므로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14절).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킨다는 말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고 포도원과 과원을 가꾸어 포도주와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장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주어질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55:1에도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영적양식을 충분히 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복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4:23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와 말씀의 은혜가 풍성하게 주어지는 때가 올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그가 말씀을 밝히 깨닫게 하므로 영적인 부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심을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영구히 풍요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그리스도인도 평생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結言>
북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해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서 살게 했습니다. 언약적 목적이 있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되 정결하게 한 다음에 다시 더욱 완전하게 회복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제사장적 목적이 있는 대상입니다. 베드로전서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못할 때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더욱 온전케 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따른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새롭게 하셔서 영광받으시는 분입니다. 9절에 “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