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미가1:1-16
<題目>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고
<序言>
본서는 남유다 출신 미가 선지자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본장은 본서 전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서론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미가 선지자의 출생지와 예언의 대상과 예언의 형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하나님의 심판 임박(1-7절), 이스라엘 심판에 대한 애곡(8-16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의 심판 임박 (1-7절)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유다 왕 요담 왕과 아하스 왕과 히스기야 왕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하나님께 받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고 했습니다 (1절). 본서는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입니다. ‘미가’(מיכא)는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미가는 모레셋 출신입니다. ‘모레셋’(Morasth)은 블레셋의 가드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을 ‘가드모레셋’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곳이 블레셋 가드 사람들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가는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을 한 사람입니다. 요담왕은 B.C.739-735년에, 아하스왕은 B.C.735-725년에, 히스기야왕은 B.C.725-697년에 남왕국 유다를 통치한 왕들입니다. 세 왕의 재위 기간은 약 63년 정도됩니다 (B.C.750-687년). 63년 내내 예언한 것을 아니겠지만 세 왕에 걸쳐 예언한 것은 분명합니다.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사마리아’(Samaria)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예루살렘’(Jerusalem)은 남왕국 유다의 수도였습니다. 미가의 예언은 두 왕국 전체에 적용된 내용이기도 했지만 주로 수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당시 사회악에 대한 책임이 주로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과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증언하시되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절). ‘백성들’은 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C.F.Keil). 열방 백성들과 그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들어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심판이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심판을 당하는 것은 열방 백성이 심판받을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죄 때문에 징벌하신다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열방 백성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에서에서 증언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그 ‘성전’은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는 하늘 성소를 말합니다 (J.Calvin).
하나님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와 강림하신다는 표현은 죄정하신 하늘 성전에서 강림하신다는 말이며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산의 정상에 서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시행하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들입니다.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하나님이 높은 정상에 서시자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불에 녹는 밀랍처럼 녹아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이 치닫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화산폭발을 연상케 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국가나 조직이나 사람들이 다 밀랍 녹아내리는 것처럼 허망하게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심판하는 것은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고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며 사마라아가 아니냐고 했고,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며 예루살렘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5절). ‘야곱’과 ‘이스라엘 족속’은 이스라엘 전제를 말합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재난을 당하는 것은 모두 다 그들의 허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허물’은 그들의 범죄 사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허물은 사마리아이고 유다 산당은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북이스라엘을, ‘유다’는 남유다를 말합니다. ‘산당’은 우상숭배를 한 곳들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죄는 대표적으로 수도 사마리아에서 범죄한 것이고, 남유다의 대표적인 죄는 수도 예루살렘에서 범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언급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대표성을 가진 수도들로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전체가 범죄 가운데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 사마리아 성읍을 훼파하여 돌무더기가 되게 하고 그 도로들을 포도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갈아엎는 것처럼 뒤집고 그 성곽들을 무너뜨려 바닥이 다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목상들을 깨뜨려 그가 기생 값으로 모았으니 그것이 기생 값으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7절). 북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남편을 떠나 다른 대상과 음행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음행의 대상인 우상들을 다 훼파하고 그 음행으로 얻어 모은 모든 재산들을 불사르겠다는 것입니다. ‘기생 값으로 모았으니 그것이 기생 값으로 돌아가리라’는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인 우상을 숭배하여 얻은 것들을 또 다른 대상인 대적들에게 빼앗길 것을 가리킵니다. 곧 우상과 우상숭배로 얻은 것들은 깨뜨려지거나 불타거나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제국의 살만에셀의 침략으로 성취됩니다.
오늘날에도 보이는 우상들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영향을 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 어떤 것이든 우상적인 존재입니다. 디모데후서3:2-4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이유에 대해 나열하면서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했습니다. 종교, 사상, 신념, 가치, 취미, 단체, 사람, 물질 등이 모두 우상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숭배하는 우상은 돈(mammonism)이면 자신(egoism)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3;2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우상을 숭배하므로 얻은 것들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들이며 영원히 남아있는 것들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이스라엘 심판에 대한 애곡 (8-16절)
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9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10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11 사빌 주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에게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12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13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14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이리라
15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미가 선지자는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애통하고 애곡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들개와 타조같이 애곡하고 애통해 한다고 했습니다 (8절). 애통함이 너무 커서 옷을 찢고 맨발로 다니면서 들개와 타조같이 애곡한다는 것입니다. ‘들개’와 ‘타조’는 울음소리가 기이한 특징이 있습니다. 밤에 울게 되면 마치 사람이 구슬피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미가 선지자가 그렇게 애곡하는 이유는 그 상처를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 이르고 예루살렘에도 비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9절). 북이스라엘과 사마리아 더 이상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 심판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에까지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다고 했습니다 (10절). ‘가드’(Gath)는 블레셋 도시입니다. 가드에 알리지 말라는 것은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남유다를 침략하기 위해 가드를 통해 들어올 것이고 앗수르제국의 침략은 가드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될 것임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라고 한 것은 다윗이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블레셋 가드 사람들이 알게 되어 기뻐할 것을 염려하여 그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점을 착안하여 가드가 기뻐하지 못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삼하1:20). 곧 가드의 멸망을 말한 것입니다. ‘베들레아브라’(Beth-le-aphrah)는 예루살렘 인근의 아브라 마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베들라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다는 것은 그 뜻이 ‘먼지의 집’이라는 점을 착안하여 그곳이 먼지처럼 멸망하게 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빌 주민은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11절). ‘사빌’(Saphir)은 유다 산지와 해안 평야 사이의 구릉지대에 있는 ‘사와피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마을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사빌은 ‘아름다운’의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사빌 주민에게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가는 것은 과거 이름과는 달리 벗은 몸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아난’(Zaanan)은 유다의 스난과 동일한 지역으로 여겨집니다. 사아난은 전쟁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다’의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사아안 주민이 나오지 못한다는 말은 성읍 이름의 뜻처럼 용감했던 사아난 거민들도 성읍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읍 안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벧에셀’(Bath-ezel)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유다의 한 성읍일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뿌리의 집’인 것처럼 기초가 굳건한 성읍이었을 것입니다. 벧에셀이 애곡하여 의지할 곳이 없게 한다는 말은 그처럼 견고함을 자랑했던 성읍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을 의미합니다.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12절). ‘마롯’(Maroth)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다의 한 지역일 것입니다. 그 뜻은 ‘쓴’ ‘고통’ ‘수고’ 등의 뜻입니다. 그곳은 이름 뜻대로 살아가기에 열악한 곳이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란다는 말은 하나님이 평안과 부요를 주기를 바라지만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재앙이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라는 말은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마롯을 칠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기스 주민은 준마에 병거를 메우라고 했습니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스라엘의 허물이 그에게서 보였음이라고 했습니다 (13절). ‘라기스’(Lachish)는 뜻이 정확하지 않고 지역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유다의 한 지역으로 여겨집니다. 라기스는 병거로 무장된 견고힌 성읍이었습니다 (대하11:9). 주민에게 준마에 병거를 메우라고 한 말은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침략할 것이니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로서 앗수르제국의 군대와 싸우다가 멸망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라기스가 멸망하게 된 것은 딸 시온의 죄의 근본으로서 이스라엘의 허물이 그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유다 예루살렘으로 유입되었는데 라기스가 그 관문역할을 했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시온은 가드모레셋에 작물하는 예물을 주고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이리라고 했습니다 (14절).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고 했습니다. ‘너’는 딸 시온 곧 유다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가드모레셋’(gath-Moresheth)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유다의 한 성읍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딸 시온에게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주라는 말은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낼 때 예물을 주어 보내듯이 유다의 핵심 방어 진지역할을 했던 라기스가 무너지므로 예루살렘은 앗수르제국에 가드모레셋도 내어주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곧 가드모레셋도 멸망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악십’(Achzib)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유다의 한 성읍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뜻은 ‘속이는’으로서 물이 없는 메마른 시내처럼 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자에게 속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일 것이라는 말은 그 이름의 뜻대로 왕들이 악십에 기대를 걸지만 악십도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막지 못하고 멸망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마레사 주민은 하나님이 장차 그들에게 그들을 소유할 자로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15절). ‘마레사’(Mareshah)는 미가 선지자의 출신지인 머레셋 인근인 유다 평지에 있는 성읍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정상’으로서 르호보암왕이 요새화한 성읍이었습니다. 마레사를 그들에게 그들을 소유할 자로 이르게 한다는 말은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그 성읍을 빼앗아 소유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아둘람’(Adullam)은 다윗이 사울왕의 추적을 피했던 동굴이 있는 곳으로서 유다의 한 성읍이었습니다 (삼상22:1). 그 이름의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곳은 르호보암왕이 방어 성읍으로 건설한 성읍중 하나였으며 한 때 왕의 도성이기도 했습니다 (수12:5).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렸던 부귀와 영화가 아둘람까지 이른다는 말로서 북이스라엘이 영화로웠으나 멸망한 것처럼 아둘람도 멸망하여 피난처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다는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라고 했습니다. 유다의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사로잡혀 유다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6절). 미가 선지자는 12성읍의 파멸을 언급한 후 재난의 시작을 예언할 때와 마찬가지로 유다의 파멸을 애통해 했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제국에 유린을 당하지만 마침내 바벨론제국에 완전히 멸망하여 사로잡혀가게 됩니다. 그래서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당시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밀지 않았는데 머리털을 독수리처럼 미는 것은 극한 슬픔을 나타낼 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제 유다가 마침내 완전히 멸망하여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이니 그런 극한 슬픔있을 것을 애곡하라고 한 것입니다.
<結言>
두 형제가 나란히 병원에 입원했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둘 다 혈색은 좋은데 검사해보니 둘 다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말합니다. 한 사람은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병이 깊어서 죽을 준비를 해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죽음에 가까운 대수술을 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겠는데 평생 반신불수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영적으로 그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진단받은 미가 선지자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애통해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었고 이어서 남유다도 앗수르제국의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었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제국의 군대가 수도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는 동안 남유다의 12성읍이 파괴되고 예루살렘만 비참한 상태로 간신히 남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대 선지자인 이사야 선지자는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사1:8). 그로인해 미가 선지자는 애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그런 상황을 맞지 않을 방법은 그들이 오직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