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미가5:1-15
<題目> 미래에 나타날 왕
<序言>
앞장에서는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본장에서는 그 나라를 통치하는 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내용구조는 시온을 다스릴 왕의 출현(1-9절), 시온의 성결 작업(10-15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시온을 다스릴 왕의 출현 (1-9절)
1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딸 군대는 떼를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1절). 이는 남왕국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에 닥칠 재난에 대한 언급입니다. ‘딸 군대’는 유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Albert Bames). 유다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군대입니다. 딸 군대에게 떼를 모으라는 말은 대적들의 포위 공격을 막을 군대를 모으라는 말로서 그럴 정도로 급박한 상황임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대적들이 에워싸고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칠 것이라는 말은 대적들이 유다를 공격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지도자에게 치욕을 가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C.F.Keil). 앗수르 제국 산헤립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유다 왕 히스기야와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고 (왕하18:19, 사37:23),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의 자녀들과 그의 신하들을 모욕하게 될 것을 두고 한 에언일 것입니다 (왕하25:6-7, 대하36:13,17-18, 렘52:6).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서 하나님께 나올 것이라고 했고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다고 했습니다 (2절). 이는 이전 왕처럼 침략을 당해 수치를 당하는 왕이 아니라 온전한 참된 통치자가 나서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베들레헴은 유다 자손의 고을 이름이고,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베들레헴을 말하면서 에브라다를 추가한 것은 갈릴리에 있는 스블론 자손의 성읍 베들레헴과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수19:15). ‘베들레헴’(בית לחם)은 ‘떡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고, ‘에브라다’(אפרתה)는 ‘열매를 많이 맺음’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입니다. 두 지명 모두 지역의 비옥함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라는 말은 베들레헴이 유다 고을 가운데 크기가 작은 고을이기도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천한 고을임을 의미입니다 (시68:27). 새로운 통치자는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유다 고을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는 말은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가 나올 것을 말합니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기원이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오래전 곧 고대 혹은 영원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것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멀리 유다 베들레헴에서 구원자(메시야, 그리스도)가 나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것을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은 구원자가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헤롯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본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2:5-6에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구원자로 오시게 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계셨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1:1에는 예수님의 근원에 대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태초’(αρχη)는 문자적으로 시작을 말합니다. 의미상으로 볼 때 창세기1:1의 태초는 만물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본절 요한복음1:1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는바 영원에 해당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스'(λογος)는 기록된 말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헬라 관점에서 표현한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수신자가 헬라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계셨던 분임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헬라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당시 헬라철학에서 사용했던 '로고스'(λογος) 단어를 채택한 것입니다. 당시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에서는 '로고스'(λογος)를 하늘에 속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특히 스토아학파에서는 우주의 합리적인 원칙과 원리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헬라인들은 '로고스'를 우주의 원리, 주관자 등으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헬라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로고스(λογος)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다른 분이라는 표현과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라는 표현을 같이 사용한 것은 한쪽 논리에 고정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세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세 인격이 한분(三位一體)이기 때문에 한 가지 표현으로 제시하기 힘든 분입니다. 빌립보서2:6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요한복음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λογος) 곧 하나님이 육신(σαρξ)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3절). ‘여인’은 임산한 여인으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Calvin, Theodoret). 그것은 4:9-10의 임산한 여인이 시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이 해산을 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통치자가 날 것을 의미입니다.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신다는 말은 이스라엘에 통치자가 나기까지는 사로잡혀간 자들이 대적들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그들 가운데 남은 자가 동족에게도 돌아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남겨둔 자들을 말합니다. 이 남은 자 사상은 여러 선지자들이 언급합니다 (2:12-13, 4:6-7, 슥10:10, 사11:11-12).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고 했습니다 (4절). 포로에서 남은 자를 본토로 인도한 통치자에 대해 목가적인 용어들로 표현했습니다. 참된 목자는 양 떼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서서 지켜봅니다. 그처럼 새로운 통치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로 다스리므로 평안과 번영이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창대함이 땅 끝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평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궁들을 밟을 때에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이 사람’은 새로운 이스 라엘의 통치자를 말합니다. 그는 사로잡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이끌고 본토로 인도할 자이며 이스라엘을 평안과 번영을 가져오게 할 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평강을 줄 자입니다. ‘평강’(שלום)은 안전, 평화, 평안, 번영 등의 뜻입니다. ‘앗수르 사람’은 앗수르 제국을 비롯하여 앞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위협할 모든 이방국가들에 대한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은 여러 지도자들에 대한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새로운 통치자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평강이 있고 대적이 쳐들어오면 많은 지도자들과 용사들을 일으켜 그들을 물리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건져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 ‘니므롯’(Nimrod)은 바벨론 제국의 국가적 영웅 길가메시(Gilgamesh)와 동일시되는 인물로 여기에서는 바벨론 제국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대적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땅까지 공격해 그들의 땅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인생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 ‘야곱의 남은 자’는 포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설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말은 그들의 영향력이 열방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목축이나 농사를 하는 이들에게 이슬과 단비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그들을 통해 열방에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전달하는 자들로서 사람에게 기대를 두거나 사람에게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 있을 것인데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사자 같을 것이며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밝고 찢을 것이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야곱의 남은 자가 사자 같이 강하여 열국의 정복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그 손이 대적들 위에 들려서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9절). 대적을 철저하게 제압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로인해 평안과 번영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장차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구원자(메시야)가 탄생하므로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회복될 것, 곧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사7:14). 새로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통치자로 오셔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사10:34, 11:1). 그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구원과 영생에 관한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할 것입니다. 또한 평강이 있게 할 것입니다 (사9:6, 눅2:14, 엡2:14-16).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사탄의 세력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오히려 그들의 영역을 정복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시89:21-22, 롬8:38-39). 이른바 남은 자들 곧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통해 사탄의 세력들을 제압하게 하실 것입니다 (눅10:19, 살후2:8, 계11:3-6, 20:4).
2. 시온의 성결 작업 (10-15절)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11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
12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13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14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15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이르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마를 멸절하며 병거를 부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그 날’은 4:1-4에 예언된 새로운 이스라엘인 하나님 나라를 세운 때를 말합니다. 곧 새로운 왕이 도래할 때를 가리킵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신뢰하며 말씀이 지배원리가 됩니다. 그래서 말과 병거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과 병거를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읍들을 멸하며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절). 새로운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안전과 평안과 번영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필요 없습니다 (4:3, 슥2:4-5). 그래서 전쟁을 위해 쌓은 성읍과 성이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또 복술을 이스라엘의 손에서 끊으므로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복술’(כשף)은 사술이나 마술을 가리키는데 어떤 징조나 예언을 얻기 위해 막대기나 반지 등을 이용하여 점을 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점쟁이’(ענן)는 마법사를 가리키는데 구름 등의 상태를 통해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점을 치는 행위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술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 때부터 금지시켰습니다 (레20:27, 신18:10-11). 새로운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이 지배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긴 우상과 주상을 멸절하므로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3절). ‘우상’(פסיל)은 나무나 돌로 조각한 우상의 형상을 말하고, ‘주상’(מצבה)은 금은동철 등으로 만든 우상의 신상을 가리킵니다. 그 같은 것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생명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므로 그 같은 우상들을 섬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세라 목상을 빼버리고 성읍들을 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4절). ‘아세라’(אשרה)는 가나안의 여신으로서 성 생활과 자녀 출산과 관련하여 숭배하던 목상이었습니다. ‘성읍’은 11절에 나온 성읍처럼 전쟁을 위해 만든 성읍이 아니라 우세라 목상 같은 우상을 숭배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에서는 아세라 목상 같은 우상과 그런 것들을 숭배한 성읍들이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15절).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는 선지자를 통해 계시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된 우상을 숭배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숭배한 나라는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結言>
미가 선지자는 역사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구속사적으로 장래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바라보았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성령님과 말씀으로 다스리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는 성령님의 감동과 말씀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우상을 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을 성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