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미가7:1-20
<題目> 선지자의 비탄과 탄원
<序言>
본장은 이제까지 제시되었던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과 소망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가 선지자의 탄원과 함께 미가 선지자의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을 내다보는 시각을 나타냈습니다. 내용구조는 이스라엘에 대한 선지자의 비탄(1-6절), 선지자의 탄원(7-14절), 하나님의 응답과 선지자의 찬양(15-20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이스라엘에 대한 선지자의 비탄 (1-6절)
1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4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가 선지자는 재앙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다고 했습니다 (1절). 미가 선지자는 타락하고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재앙에 대해 탄식했습니다. ‘여름 과일’은 6월에 결실한 처음 익은 무화과를 가리킵니다. 미가가 마치 여행자처럼 무화과와 포도가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무화과를 다 딴 후와 포도를 다 거둔 후처럼 무화과와 포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언약 백성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경건한 자와 정직한 자가 기대와는 달리 전혀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다고 했습니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 지도자들과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서로 결합한다고 했습니다 (2-3절). 미가는 이스라엘에 경건한 자와 정직한 자가 다 끊어졌음을 탄식했습니다. 마치 사냥꾼이 그물로 새를 잡으려 하는 것처럼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뇌물을 받으며 서로 힘을 합쳐서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 형벌의 날이 임했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라고 했습니다 (4절). ‘가시’와 ‘찔레 울타리’는 가시나무와 가시울타리를 말하는데 모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애물입니다. ‘선한 자’와 ‘정직한 자’는 곧고 올바를 자들을 말합니다. 가장 곧은 사람이라도 사람에게 해를 주는 사람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올바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조차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총체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파숫꾼들의 날’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세운 선지자들이 경고했던 심판의 날을 말하는데 이는 ‘형벌의 날’과 동격입니다. 이스라엘에 공의가 완전히 무너졌으므로 하나님이 심판할 것이고 그 형벌이 있을 때에는 그들에게 큰 혼란과 공포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입의 문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5절). ‘품에 누운 여인’은 아내를 말합니다. 이웃과 친구와 아내(배우자)는 관계에 있어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 있는 자들입니다. 특히 아내는 비밀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서 신뢰가 굳건한 관계에 있는 자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총체적으로 타락하여 모두가 이기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상태에서는 내밀한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입의 문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곧 말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장 신뢰하는 사람마저도 믿지 못하는 현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6절).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며 순종하며 부양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자입니다. 딸과 며느리도 어머니와 시어머니에 대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딸과 며느리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멸시하고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대적하여 원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마저 신뢰가 무너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사회적 부패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음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극한 상황의 예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공격했을 때 자기 어린 자녀를 먹는 비참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왕하6:28).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상상할 수 없는 죄악을 짓기도 합니다 (롬1:28).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으로 타락하여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치 과수원에서 무화과를 다 따고 포도를 다 딴 다음에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선한 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경건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인자한 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선한 자라도 불경건하고 거짓되고 이기적인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와 손해를 주는 자들이었습니다. 가장 신뢰하는 관계에 있는 가족들까지도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멸망시키고 새롭게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회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딤후3:1-5).
2. 선지자의 탄원 (7-14절)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14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하면서 탄원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자기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귀를 기울이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7절). 미가 선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패를 목격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여 구해주실 것을 바랐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대적들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엎드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고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하나님이 빛이 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 대적이 기뻐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다시 구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실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비록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논쟁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여 광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미가 선지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마땅히 그에 대한 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조소하는 대적들에게 보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라고 했습니다 (10절).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이방을 통해 징계합니다. 그런데 이방 대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목적을 알지 못해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후에 그들을 모욕한 이방 대적들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거리의 진흙을 밟듯이 멸절시킨다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랍사게 군대 185,000명을 보내어 예루살렘을 공격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몰살시키고 산헤립이 본국으로 퇴각하게 하고 산헤립의 두 아들이 살해되게 합니다 (왕하19:35, 대하32:21, 사37:36-37, 왕하19:37).
유다 백성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이에 대해 동시대에 사역을 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1:6). 하지만 하나님이 징계한 후에 다시 회복시키시겠다고 했습니다. 언약백성을 회복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대적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시키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하시고야 맙니다. 잠언24:16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과 선지자의 찬양 (15-20절)
15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16 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1절). 유다 백성이 이방에 멸망하고 사로잡혀 가지만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되고 지경을 넓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경을 넓힌다는 말은 국경이 넓혀질 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이 유입되어 인구가 늘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세계 도처에서 이스라엘로 모여들 것을 말합니다 (사19:24-25). ‘앗수르’와 ‘애굽’은 이방이 대표적인 나라들이고, ‘강’과 ‘바다’와 ‘산’은 이방이 있는 도처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라고 했습니다 (13절). 이방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고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이방은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살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달라고 했습니다 (14절). 마치 목자가 지팡이로 양떼를 인도하며 먹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을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기업의 양떼를 먹여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는 포로에서 귀환한 언약백성이 다른 민족과 달리 우상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상태에 있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갈멜 속 삼림’은 양떼들의 안전이 보장된 곳이며 충분한 꼴이 보장되는 곳입니다. 또한 과거에 이스라엘이 영화를 누리던 시대들처럼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바산과 길르앗’은 안전하며 비옥한 곳으로서 목축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간구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15절). 하나님이 과거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었던 것같이 언약백성에게 놀라운 섭리로 그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며 귀는 막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16절). ‘여러 나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멸망시킨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한 때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며 언약백성을 조롱했지만 하나님이 행하신 권능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축하는 함성도 지르지 못할 것이고 그들이 다시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7절). 뱀은 땅을 기어 다니며 벌레는 구멍에서 들어가 있으면서 잡아먹힐 것을 두려워하여 구멍에서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대적들이 공포에 질려 기어 다닐 것이고 은신처에서 나오길 두려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18절).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는 분임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언약백성을 이방 나라들에 멸망하여 사로잡혀가게 하지만 그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애를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애’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는 자기 백성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대하는 긍휼입니다. 다시 불쌍히 여겨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9절). 언약백성의 남은 자의 죄를 완전히 도말하여 제거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옛적에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 ‘야곱’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는 이유는 조상들에게 한 언약 때문입니다. ‘인애’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는 언약백성에 대해 가지신 사랑으로 대하는 긍휼을 의미한다면 ‘성실’에 해당하는 ‘에메트’(אמת)는 언약백성에게 한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나가시는 성실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상 때부터 한 언약을 그의 사랑과 성실의 성품을 근거로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창3:15, 17:7-8,13, 48:4). 그러기에 언약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結言>
언약백성이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겠지만 하나님이 회복시키고 더욱 번영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약시대에 메시야인 예수님을 보내주시므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성령과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이 확장되어 많은 이방인들이 유입되어 그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 개인에 대해서도 범죄할 때 징계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회복시켜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롬4:16, 벧전2:5, 히6: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