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호세아10:1-15

<題目> 이스라엘의 배반과 회개 촉구

 

<序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선택하여 복을 주신 목적에 합당한 결과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 신을 숭배했습니다. 본 장는 그에 대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바알 숭배 지적(1-4), 금송아지 숭배 지적(5-8), 회개 촉구와 심판 경고(9-15)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바알 숭배 지적 (1-4)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1). 이스라엘을 포도열매를 맺는 무 성한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그들은 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이후 풍요를 얻었습니다 (2:8, 80:8-11, 2:21, 19:10-11). 특히 여로보암 2(Jeroboam, B.C.793-753) 때에는 경제적으로 심히 번영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이 숭배했던 바알(Baal)이 풍요와 번영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매가 많이 맺힐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했다고 했습니다 (1). ‘제단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단으로 여기에서는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주상은 기둥처럼 세워 놓은 형상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바알(Baal) 석상과 아세라(Asherah) 목상 등을 두고 한 말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가나안 원부민들이 숭배했던 주신으로서 부부신으로 숭배했었습니다. 바알은 남성신으로서 비를 주관하여 농사가 잘되게 해주는 신으로 숭배했고 아세라는 여성신으로서 생명을 주관하여 자녀를 많이 낳게 해주는 신으로 숭배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와 번영을 누릴수록 그것들을 바알이나 아세라가 주었다고 생각하고 그 신들에게 제사할 제단과 신상들을 더욱 많이 좋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חלק לבם)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로서 (Their heart is divided KJV),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숭배한 사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숭배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혼합종교 형태를 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신앙이었으며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이 이미 경고하신대로 그들이 우상에게 제사하기 위해 만든 제단과 우상의 형상을 다 파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6:30). 이는 하나님이 앗수르 제국을 통해 그들을 멸망시킬 때 그것들이 모두 파괴될 것을 염두에 둔 말씀일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리요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3). 그들이 하나님의 징벌로 곤경에 처할 때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왕이 없게 되었지만 혹 있다 할지라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자주 모반이 일어나 왕이 바뀌므로 왕좌가 비어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왕인 호세아왕 때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가게 됩니다 (왕하18:9-12). 그때 백성들은 그런 상황에서 왕도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절망적인 탄식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 ‘그들을 백성들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3절에 제시된 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Stuart, Mays).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수많은 말들을 하고 거짓된 맹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강대국과 조약을 맺고 백성들에게 합리화하는 말들을 수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밭이랑에 독초가 수없이 나는 것처럼 수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왕하15:19-20). 하지만 그런 노력이 백성들을 곤경에 빠지지 않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이방 우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우상에 빼앗긴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영적으로 우상을 따르기도 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신()처럼 신뢰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신뢰합니다. 그것들이 성공과 행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따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줄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맙니다. 요한일서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고, 야고보서4: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대결할 때 모인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고 했습니다.

 

 

       2. 금송아지 숭배 지적 (5-8)

 

  5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벧아웬’(בית און)우상의 집’(헛됨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벧아웬은 지리적으로 벧엘 옆에 있는 성읍으로서 벧엘과 구분되었는데 (7:2) 여기에서는 벧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벧엘(בית אל)은 원래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인데 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벧아웬으로 부른 것입니다 (4:15, 5:8, 10:5). 벧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령한 내막이 있는 곳이었는데 (13:3, 28:19-22, 35:1-15, 20:18,26,31, 21:2-4, 삼상7:16, 10:3)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Jeroboam)가 정치적 목적으로 벧엘(Bethel)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고 하면서 숭배하게 했습니다 (왕상12:28).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우리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숭배한 사실을 본받은 것입니다 (32:4).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 숭배한 것은 애굽에 있을 때 애굽 사람들이 다산과 번성의 신으로 숭배했던 아피스(Apis)를 본 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우상의 형태로 만들어 숭배한 것으로서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20:3-6).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도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숭배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단(Dan)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지만 벧엘이 더 성행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여로보암 1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벌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금송아지가 탈취되어 갈 것이라는 것이고 그로인해 백성들이 두려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이 떠나감으로 인해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 금송아지 신상이 탈취되어 그 영광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금송아지 우상에 대해 제사의식을 주관하던 제사장들이나 그 우상을 섬긴 백성들이 슬퍼하며 탄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지켜줄 하나님으로 생각했던 금송아지 우상이 대적들에게 전리품으로 탈취되어 감에 따라 비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 금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6). ‘야렙’(ירב)전쟁의 왕’ ‘위대한 왕의 뜻으로 앗수르 제국의 왕을 지칭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Keil, Chrisholm). ‘예물’(מנחה)헌물’ ‘제물의 뜻으로 여기에서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전쟁국들을 지키는 수호신들의 전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승전국은 자신들의 신이 더 강하다는 의미로 패전국의 신들을 노략하여 자신들의 신전에 두었습니다 (삼상4:10-11, 5:1-5, 1:2). 그런 의식에서 앗수르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금송아지 신상을 탈취하여 앗수르 제국의 왕실에 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켰다는 승리의 상징행위입니다. 그로인해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6). ‘에브라임이스라엘은 모두 북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해 금송아지 우상을 노략당하므로 수치를 받을 것이고 계략을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그 동안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그 우상이 자기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멸망당하고 심지어 그 우상까지 탈취 당하게 되므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 앗수르 제국과 동맹을 맺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특히 마지막 왕인 호세아왕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Tiglath-pileser)에게 많은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왕하17:3). 그러다 디글랏빌레셀이 죽자 앗수르와 관계를 단절하고 애굽 왕을 의지하게 됩니다 (왕하17:4). 그것은 앗수르가 침공할 경우 애굽이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앗수르 왕 살만에셀(Shalmaneser)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호세아왕을 잡아 옥에 가두게 됩니다 (왕하17:4), 또한 앗수르 왕 사르곤(Sargon)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함락시키고 (B.C.722), 수많은 백성들이 앗수르 지역으로 사로잡아가게 됩니다 (왕하17:6, 18:9-12). 북이스라엘이 나름대로 지혜로운 외교 노력에도 결국 멸망하게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그 어떤 것들도 환난과 위기에서 건져주지 못하므로 그것들을 의지하던 것들이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44:11, 45:16).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같이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7). ‘사마리아 왕은 북이스라엘의 왕을 말합니다. 물 표면에 있는 거품은 순식간에 그 형체가 부서지고 소멸됩니다. 그처럼 무소불이의 권세를 가지고 호령하던 왕이 허망하게 권세를 잃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 우상이 멸망하고 그 왕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8). ‘아웬’(און)5절에 나오는 벧아웬(벧엘)을 말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헛됨’ ‘우상등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산당은 높은 언덕이나 산에 지은 집으로서 우상숭배의 장소들을 말합니다 (26:30, 22:41, 33:52). 왕정 초기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사용했으나 (왕상3:2-4), 점차 후기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로 변질되었습니다 (왕상12:31-32, 14:23, 왕하12;3, 16:4, 17:11). 그런 의미에서 아웬의 산당은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은 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장소였던 우상의 산당들을 부숴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는 가시와 찔레가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황폐화시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할 것이고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8).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 그들은 그 처참한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서 산들이 자기들 위에 무너져 죽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너무 무서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차라리 산사태가 나서 거기에 깔려 죽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Stuart).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혹독하고 비참할지를 나타내는 묘사입니다 (23:30, 6:16).

 

  북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숭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상과 같은 신으로 여기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신앙생활을 기복적인 방법으로 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사업을 하나님을 위한 사역인 것처럼 합리화하는 것도 유의해야 합니다. 로마서1: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경고했습니다.

 

 

       3. 회개 촉구와 심판 경고 (9-15)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이스라엘이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여 지금까지 죄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9). 9:9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고 했었습니다. 기브아 시대는 사사시대에 기브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19:10~20:48). 사사시대에 베냐민지파에 속해있던 기브아(Gibeah)에서 한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에 사는 비류(非類)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살해되었습니다. 레위인은 그 첩의 시체를 12조각으로 토막내서 전 이스라엘 지파에 보내어 기브아 사람들이 행한 일을 알렸습니다. 베냐민지파 사람들은 기브아 사람들을 두둔했고 전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은 베냐민지파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켜 베냐민지파 사람들을 전멸시켰습니다. 그로인해 베냐민지파 사람들은 겨우 6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9:9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음란하고 잔인한지 잘 나타내주는 사건이었는지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면, 본 절은 당시 사람들이 죄의 결과로 비참한 전쟁이 일어난 사건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아 시대 사람들처럼 범죄하니 그 때처럼 전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할 것이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 ‘그들이~ 걸릴 때에는 헬라어 70인 역의 번역대로 그들이 징계를 당할 때에의 의미로 이해됩니다 (ευ τω παιδευεσφαι -LXX). ‘두 가지 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본서 전체의 흐름으로 본다면 하나님을 배반한 죄와 이방을 의지한 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 풍요와 번영을 위해 우상을 숭배했고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방국가를 의지하여 그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혹 본 장을 중심으로 본다면 바알 숭배 죄와 금송아지 숭배 죄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으며 하나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 우상으로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두 가지 죄로 말미암아 주권적 의지와 계획에 따라 심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만민이 모여 그들을 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민을 이용하여 그들을 치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하나님이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11).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북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북이스라엘은 길들인 암소 같다고 했습니다. 길들인 암소는 북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았으며 그것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잘 교육받았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곡식 밟기를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길들인 암소가 해야할 일은 쟁기로 밭을 가는 일, 타작기로 곡식을 떠는 일, 연자맷돌로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일, 수레로 곡식을 옮기는 일 등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 백성은 타작기로 곡식을 떠는 일만을 하려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곡식을 타작할 때는 곡식을 넓은 타작마당에 펴놓고 바닥에 금속이나 돌을 박은 타작기를 놓고 그것을 소로 하여금 끌게 했습니다. 그러면 타작기에 눌린 곡식 알맹이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타작을 할 때 소는 곡식을 떨면서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25:4).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곡식 떨기만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풍요와 번영만 좋아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사람을 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소의 목에 멍에를 메우는 것은 멍에에 연결된 도구나 기구로 일을 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이며, 암소 등 위에 사람이 타는 것은 암소를 통제하여 원하는 고된 일을 시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에브라임 목에 멍에를 메우고 위에 사람을 태울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이방 민족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통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을 앗수르 제국의 압제를 통해 다스리겠다는 암시입니다. 이어서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11). 밭을 갈고 흙덩이를 깨는 일은 소가 하는 일입니다. ‘유다는 남유다를 가리키고, ‘야곱은 이스라엘과 동일한 이름으로서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keil). 그래서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릴 것이라는 말은 북이스라엘이 이방나라의 노예가 되어 고된 삶을 살게 될 것을 의미하고, 유다가 밭을 간다는 말은 남유다도 그와 같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될 것과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해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했습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12).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서 씨를 뿌릴 때는 그 전에 반드시 씨가 싹을 틔워 자랄 수 있도록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전 해에 곡식을 거둔 후에는 땅이 굳어지거나 잡초와 가시덤불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봄에 다시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묵은 땅을 쟁기로 갈아엎고 흙을 잘게 부숴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북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완고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그 동안 죄로 굳어진 마음을 회개하여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은 땅을 기경하고 씨를 심어 곡식을 수확하는 것처럼 자기를 위해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했습니다. ‘공의에 해당하는 체다카’(צדקה)는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어긋나는 것은 죄로 여기고 그 죄에 대해서는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 성품과 의지는 율법에 계시되었습니다. ‘인애에 해당하는 헤세드’(חסד)는 사랑과 인자와 자비와 긍휼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특히 언약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언약백성이 부족할지라도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이 반영된 율법의 말씀대로 사는 변화를 가져오므로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대하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관계를 회복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12).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찾을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기 전이 바로 죄를 회개할 때이고 공의를 심을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 선지자를 통해 회개를 촉구할 때 죄를 회개하고 율법의 말씀대로 살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공의를 심을 수 있도록 공의를 비처럼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좀 더 알게 해주고 좀 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고 좀 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후6:2).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그러나 그들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13). 북이스라엘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었습니다. 사악한 마음으로 범죄하여 불의하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열매를 먹었습니다. 거짓 열매는 보기에는 먹을 만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곧 기대한 것과는 달리 오히려 해를 가져온 결과를 의미합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와 안전을 바라고 행동했지만 심판과 징벌로 전쟁과 황폐의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길과 그들의 용사가 많음을 의뢰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13). ‘네 길은 하나님이 지시한 길이 아닌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갔음을 말합니다. 곧 풍요를 바래서 바알과 금송아지 등의 우상을 숭배하고 안전을 보장받기위해 앗수르와 애굽 등의 나라와 동맹했던 행위를 두고 한 말입니다 (2:12, 5:7, 7:16, 8:9, 12;1).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는 자기들의 군사력을 의뢰하고 행동한 것을 말합니다 (8:14). 당시 그들은 강대국에 비해 강력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늘리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그들의 산성들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4). 북이스라엘이 대적들의 침공으로 산성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앗수르 제국의 공격을 받아 요새들이 무너지고 성내의 백성들이 극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4). ‘살만’(Shalman)은 북이스라엘과 주변 나라에 조공을 받았던 앗수르 왕 살만에셀 3(Shalmaneser)로 보는 이도 있고 (Orelli),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호세아왕을 잡아 감옥에 가둔 앗수르 왕 살만에셀 5(Shalmaneser)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Wood). ‘벧아벨’(Betharbel)은 갈릴리 바다 서쪽 알벨라로 보는 이도 있고 (Henderson), 수리아의 알벨라로 보는 이도 있고 (Ewald), 펠라 부근의 알벨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Hitzig). 하지만 모두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있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다고 했습니다 (14). 이는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죽게 되는 비참한 상황을 말합니다. ‘부서졌도다에 해당하는 기본형 라타쉬’(רטש)세차게 내던지다’ ‘(조각으로) 부수다의 뜻입니다. 아마 적군이 침공하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바위에 내리치고 이어서 어머니도 죽이는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왕하8:12, 13:16).

 

  그들은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그들에게 행할 것이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15). 살만이 벧아벨을 무너뜨릴 때 어머니와 자식을 함께 비참하게 죽인 것처럼 벧엘이 북스라엘에 그처럼 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벧엘’(בית אל)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장소였으나 당시에는 단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대표적인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는 의미를 벧엘이 심판할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 제국이 침공하여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벽에 망한다는 은유적 표현처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은 호세아왕 때 앗수르 제국이 침공하여 호세아왕은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수도 사마리아는 점령당하게 됩니다 (B.C.722).

 

  북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우상숭배 죄를 범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원하는 바와는 달리 심판을 받아 처참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죄에 있으면 결국 그 대상도 잃게 되고 그것들을 잃을 때 큰 고통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 고통의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산이 무너져 죽었으면 좋겠다고 부르짖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고하면서 그 표현을 사용했고 사도요한도 종말에 있을 환난을 예언하면서 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누가복음23:30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6:16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남유다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레미야4:3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새로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신약시대에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마태복음3:1-2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했고, 마태복음4: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이 바로 은혜받을 때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6: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