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聖經> 호세아12:1-14

<題目> 야곱을 본받아야 할 이스라엘


<序言>

  북이스라엘은 외교정책과 국내정치가 모두 인간적인 술수로 지탱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호세아 선지자는 족장 야곱이 인간적인 술수로 행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성숙한 신앙에 도달한 것처럼 북이스라엘이 죄악을 회개하여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길 것을 촉구했습니다. 본 장의 내용구조는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한 죄(1-2), 야곱처럼 하나님께 돌아올 것 촉구(3-6), 거짓과 교만 죄(7-9), 우상을 숭배한 죄(10-14)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한 죄 (1-2)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1).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10지파 가운데 대표지파로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헛된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동풍은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바람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동풍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입니다. 그 바람은 2-6월 사이에 부는 바람으로 약 50일 동안 불어오기 때문에 ‘50’을 의미하는 캄신(kamsin)이라 불리는데 모든 식물을 말라 죽게 하는 치명적인 해를 가합니다. 심할 때는 모래진을 동반하기도 하며 곡물뿐 아니라 집이나 배()에까지 치명적인 해를 가합니다 (41:6, 27:21, 48:7, 18:17, 4:8). 북이스라엘은 그와 같이 헛되고 파멸을 자초하는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곧 거짓과 포학을 종일토록 더한다고 했습니다. ‘종일토록’(כל יום)은 모든 날을 의미합니다. 거짓’(כזב)은 허위를 의미하고 포학’(שד)은 황폐(파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한다는 말은 모든 날에 헛되고 파멸될 행위를 더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는 행위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 특히 마지막 왕인 호세아왕은 앗수르의 살만에셀이 침공해오려 하자 조공을 바치며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앗수르로부터 지켜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애굽에 귀한 기름을 예물로 주면서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왕하17:3-4). ‘기름’(שמן)은 감람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감람유(올리브유)로 제사용과 식용과 의약용과 향품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귀한 기름이었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그들을 지켜줄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부인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혼인관계에 있는 아내가 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와 행음하는 행위와 같은 행위였습니다 (8:8-9). 결국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것에 분노한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애굽은 그들을 돕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헛된 것이었고 파멸에 이르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보응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유다는 남유다를 가리키고 야곱’(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언급되어왔습니다. 바알을 숭배하고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행위대로 징벌하여 갚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에 비하면 남유다는 덜 범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남유다와도 논쟁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마치 법정에서 잘못을 다투어 가리듯이 그들의 범죄를 낱낱이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죄행대로 징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들이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6:7). 하나님은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34:21, 벧전1:17, 2:23, 20:12-13).

 

 

       2. 야곱처럼 하나님께 돌아올 것 촉구 (3-6)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3). ‘야곱’(Jacop)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족장인 야곱을 말합니다. 그는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습니다 (25:26). 그는 본성적으로 형보다 앞서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에게로 돌아갈 장자권을 탈취했습니다 (25:27-34, 27:1-45). 그리고는 하란의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는 장자권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본성의 욕망을 따라 간교한 술수로 탈취한 것입니다 (25:23). 이 내용을 언급한 것은 호세아 선지자 당시 북이스라엘의 면모를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Mays). 북이스라엘도 본성의 욕망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생각하지 않고 인본주의 방법으로 풍요를 얻고 안전을 얻으려 한 것입니다.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3~4). 야곱은 하란의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양 떼를 치며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맞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20년이 지나 고향 브엘세바로 돌아오던 중 얍복강에서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러 오는 줄 알고 하나님께 에서의 손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식솔들과 가축 떼를 먼저 건너보내고 밤새도록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겼습니다 (32:21-29). ‘천사는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 천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이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한 간구를 응답받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야곱은 하나님께 에서로부터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회개해야 기도를 들어준다고 했을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환도뼈(허벅지 관절)이 부러지자 회개하고, 하나님은 야곱을 살려주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32:26). 본절은 북이스라엘은 야곱이 처음에 본성의 욕망을 따라 인본주의로 행했지만 장성했을 때는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아오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4).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난 후 세겜성으로 갔다가 딸 디나 사건 직후 하나님의 지시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식솔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자손과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 칭했습니다 (35:1-15). ‘벧엘’(בית אל)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여 말씀해 주신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이 벧엘은 야곱이 30여년 전(밧단아람에서 20, 숙곳과 세겜에서 10년이 경과했음)에 브엘세바에서 고향을 떠나 하란의 밧단아람으로 도망할 때에 하나님을 만났던 곳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으로 피난 가던 도중 밤이 되어 루스라는 곳에서 유숙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사닥다리 계시를 보여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자손과 땅에 대한 축복을 해주시고,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주며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28:10-15).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대상에는 그의 후손들까지 포함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인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신 말씀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Calvin, Keil).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5). ‘만군의 하나님’(אלוהים צבא)군대의 신()’이라는 뜻으로서 천군천사들을 대동하여 원하시면 무엇이든 행하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곧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임을 의미합니다. 여호와’(יהוה)는 존재에 있어서 자존자(自存者) 혹은 영원자라는 의미이며, 언약과 관련해서는 불변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분이며, 언약을 변개하지 않고 반드시 지키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3:15, 135:13).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 분으로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에 북이스라엘도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잊고 산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자기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자기 하나님을 바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6). 야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처럼 그의 후손인 북이스라엘 백성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애와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애’(חסד)는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한결같이 대하시는 절대적 사랑의 성품을 말하고, ‘정의’(משפט)는 언약백성에게 공정하게 대하시는 절대적 공의의 성품을 말합니다. 북이스라엘 백성은 언약백성으로서 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본받아 그것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항상 자기의 하나님을 바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항상에 해당하는 타미드’(תמיד)매일의뜻으로 계속성과 부단성과 규칙성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너의 하나님을은 하나님을 객관적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주관적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바라볼지니라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모하고 열망하고 교통하기를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행하다가 고향을 떠나 하란의 밧단아람에 가서 노역을 했습니다. 그처럼 북이스라엘 백성은 육욕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이제 야곱이 하나께로 돌아온 것처럼 (28:12-15)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우리 또한 육욕을 다라 인본주의로 살던 데서 돌이켜 매순간 하나님 앞에 옳게 살아야 합니다 (3:5, 고후7:1).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35:11-12).

 

 

       3. 거짓과 교만 죄 (7-9)

 

  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그는 상인이라고 했으며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7). ‘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상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가나안’(כנען)인데 이는 가나안이나 상인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가나안과 상인을 동일시한 것은 원래 고대 가나안은 페니키아 연안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는데, 그 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나라(도시) 두로와 시돈이 무역을 하는 상인들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Mays, 27:2-36). 그래서 가나안이라는 단어를 상인의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았습니다 (23:6,8,11 16:29, 17:4). 그런데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속임수에 능했던 가나안(상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거짓 저울로 속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에는 공평한 저울추를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19:35-36, 25:13-16). 그런데 그들은 상거래에서 부당하게 저울을 속여 이익을 갈취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입니다. 그것은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공의(정의)의 성품에 대치되며 율법에 저촉되는 행위였습니다. 언약백성으로서 합당하지 않는 행위였습니다 (20:10, 21:6).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낼 자 없으리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8).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이웃의 재물을 탈취하여 부자가 되었음에도 그것을 합리화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의 대가로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도 자신들에게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찾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습니다. 사악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었음에도 정당하게 재물을 얻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에게 실제로 죄가 될 만한 불의가 전혀 없거나 죄가 될 만한 것을 완전히 은폐했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둔감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아 죄를 죄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딤전4:2).

 

  하지만 그들이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하며 압제 가운데 종살이를 하던 때를 말합니다.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번영한 나라를 이루기 전 곧 애굽에 있을 때부터 그들과 함께 했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분으로서 그들과 처음부터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것은 그들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언약에 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부요와 번영을 얻었다고 자만했고 심지어는 부당한 방법으로 부요와 전영을 얻었음에도 죄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당하게 얻었다고 합리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9). ‘명절날장막에 거주하기를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초막절(장막절)로 여겨집니다. 초막절은 매년 715일부터 일주일 동안 광야에 나가 초막(장막)을 짓고 지키는 절기로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할 때 인도해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23:39-44). 그런데 초막절(명절날)에 초막(장막)에 거하게 한 것같이 한다는 말은 부정적 의미로 그들이 앞으로 초막생활을 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그들이 장차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고난과 시련의 생활을 할 것을 예고하는 내용입니다 (Theodoret, Ewald, Grotius).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고도 자기들에게 죄가 없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아 죄를 죄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딤전4:2). 양심이 굳어지고 심령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4:17). 소아시아의 라오디아교회도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해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3:17). 우리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예고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4. 우상을 숭배한 죄 (10-14)

 

  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12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14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하나님은 여러 선지자들에게 말했고 그들에게 이상을 많이 보였고 그들을 통해 비유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10).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 선지자들을 통해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자기의 존재와 성품, 자기의 뜻과 의지와 계획, 자기의 사역 등을 나타내주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주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나타내주고 백성들에게 전해주게 했습니다. 그것은 말과 이상과 비유였습니다. ‘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소리(음성)로 나타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이상은 꿈이나 환상이나 묵시로 나타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비유사물이나 행동 등의 비교로 나타내신 방법을 말합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와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나 관습이나 격언 등을 소재와 비교하여 진리를 나타냈습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방법으로 비유를 베푼 경우도 있긴 했으나 (삼하12;1-15), 대부분은 선지자 자신의 삶 자체나 자신의 특이한 행동을 통해 비유를 베풀었습니다 (1:2-9, 3:1-3, 16:2, 4:1-6,10-17, 5:1-4, 12:3-12).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행위를 핑계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이 뜻을 가르쳐주지 않거나 하나님이 가르쳐주었어도 자신들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길르앗은 과연 불의하고 거짓되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11). ‘길르앗’(Gilead)은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길갈과 함께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6:8에서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로 불려졌습니다. ‘불의에 해당하는 아웬’(און)헛됨’ ‘무익’ ‘악함등의 뜻이고, ‘거짓에 해당하는 솨웨’(שוא)황폐’ ‘거짓말’ ‘무익함등의 뜻입니다. 그래서 길르앗이 불의하고 거짓되다고 한 것은 길르앗이 우상을 숭배한 성읍임을 염두에 둔 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다고 했습니다 (11). ‘길갈’(Gklgal)은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역시 길르앗과 함께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4:15, 9:15). 길갈에서 무리가 수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말은 길갈에 있던 신전에서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송아지를 잡아 제사한 것을 가리킵니다 (Mays). 그 제단이 밭이랑의 쌓인 돌무더기 같다는 말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은 헛된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것들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밭이랑의 돌무더기는 농부가 밭에서 돌들을 골라내어 그 돌들을 밭이랑에 모아둔 돌무더기를 말합니다. 그 돌들은 불필요한 것들로서 오히려 거치는 것들이고 그 돌무더기는 아무 쓸데없는 무더입니다.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했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해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해 양을 쳤다고 했습니다 (12).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인 족장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브엘세바에서 하란 지방 밧단아람으로 도망했습니다. 곧 아람(시리아) 지역으로 도망했습니다.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양을 쳤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딸 레아와 라헬을 얻기 위해, 양 떼를 얻기 위해 20년 동안 양을 쳤습니다 (28:1-5, 29:1-30). 그는 그곳에서 외삼촌 라반과 외삼촌의 아들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31:39). 그로인해 많은 수고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두 아내와 아들들과 종들과 양 떼를 얻어 거부가 되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32:10).

 

  그처럼 하나님은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받았다고 했습니다 (13). 이스라엘의 조상인 족장 야곱이 흉년을 당해 가솔을 데리고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후기에는 노예로 전락되어 심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애굽에서 인도해내고 광야에서 보호를 했습니다. ‘한 선지자는 모세를 가리킵니다 (12:50-51, 18:15,18).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고 광야 40년 여정에서 이적과 기사로 살게 해주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족장 야곱에게 하란 땅에서 나오게 해주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함께 해주고 마침내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을 바로 섬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했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고 했습니다 (14).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우상을 숭배하고 강대국을 의지하는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극한 분노를 발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는 생명을 상징하는 바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하다는 말은 죄 값에 상응하는 심판을 내리겠다는 의미입니다 (17:11, 20:16). 그래서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교도들로부터 비난과 모욕과 경멸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Benson). 이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結言>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우상을 숭배하고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죄대로 심판할 것을 경고했습니다. 이는 말세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를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10: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육욕을 따라 다른 대상을 숭배하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고 멸망하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역대하30:7너희 조상들과 너희 형제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 두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니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