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 스바냐1:1-18
<題目> 유다에 대한 심판 경고
<序言>
본서는 12소선지서 중에서 아홉 번째 책으로서 요엘서와 함께 심판의 날에 대한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본장은 남유다 왕 므낫세와 아몬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에 빠져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내용구조는 하나님 심판의 보편성(1-6절), 유다에 내릴 심판 경고(7-13절), 여호와의 날 임박 예고(14-18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本論>
1. 하나님 심판의 보편성 (1-6절)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고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1절). ‘스바냐’(צפניה)는 ‘여호와께서 숨기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는 히스기야의 현손이며 아마랴의 증손이며 그다랴의 손자이며 구시의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4대 조상까지 밝힌 것은 특이하다 할 수 있습니다. 4대 조상인 고조할아버지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스바냐(Zephaniah) 선지자는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아몬’(Amon)은 남유다의 15대 왕이었습니다 (B.C.642-640년). ‘요시야’(Joslah)는 남유다의 16대 왕이었습니다 (B.C.640-609년). 16대 왕인 요시야가 즉위했을 때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14대 왕 므낫세와 15대 왕 아몬의 영향으로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습니다 (왕하21:1-26).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스가랴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여 하나님이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할 것이라고 했으며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3절). 하나님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곧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과 인간을 모두 완전히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철저하게 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은 4-6절에 나온 대로 우상과 우상숭배자들을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모든 죄악과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범죄하는 모든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마치 노아홍수 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선언은 (창6:7, 7:4) 오염된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것이며 종말에 있을 전우주적 심판을 선언한 것입니다 (벧후3:12).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기에 앞서 이처럼 종말에 있을 전우주적 심판을 먼저 선언한 것은 종말에 온 세상을 심판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한 국가에 불과한 남유다를 철저하게 심판할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그들의 죄악 때문에 심판할 것인데 남유다가 언약국가라 할지라도 그들의 죄악 때문에 심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에 죄악이 관영할 때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벧후2:5-6). 그처럼 종말에도 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반드시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10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1-12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하나님이 남왕국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上).
첫째, 바알을 멸절시키겠다고 했습니다. 4절中에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라고 했습니다. ‘바알’(Baal)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주신(主神)으로 숭배했던 우상으로서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명칭입니다. 이 우상은 농경신으로서 다산을 주관하는 풍요의 신으로 숭배했던 우상인데 남유다에서도 그 우상을 받아들여 숭배했습니다. ‘남아 있는 바알을 그곳에서 멸절하며’에 대해 어떤 이들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바알 우상들을 없앴으나 아직 남아 있는 우상들을 멸절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스바냐의 활동시기가 요시야왕의 종교개혁 단행 이전이기 때문에 그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뜻은 아마도 바알 우상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멸절시키겠다는 의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Deane, Moffatt).
둘째, 그마림과 그 제사장들을 멸절시키겠다고 했습니다. 4절下에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שאר הבעל את שם חכמרים עם을 직역하면 ‘그 제사장들과 함께 그 그마림이란 이름을 멸절하며’로서 이는 바알 우상을 숭배하는 그 제사장들과 함께 그들을 지칭하는 그마림이란 호칭을 멸절시키겠다는 뜻입니다. 곧 바알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멸절시키되 그들을 가리키는 이름까지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마림’은 ‘케마림’(כמרים)의 음역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라는 뜻으로서, 이는 바알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에 대한 호칭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의 별들을 경배하는 자들을 멸절시키겠다고 했습니다. 5절上에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뭇 별’(צבא שמים)은 ‘하늘의 무리’ ‘하늘의 군대’라는 뜻으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가리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대한 숭배는 가나안과 바벨론에서 행해졌는데 그들은 주로 지붕에 제단을 만들어놓고 그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남유다도 이를 받아들여 숭배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멸절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밀감에게 맹세하는 자들을 진멸시키겠다고 했습니다. 5절下에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라고 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המשתחוים הנשבעים ליהוה והנשבעים במלכם은 ‘그리고 경배하는 자들을, 곧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그럼에도 말감에게 맹세하는 (자들을)’이라는 뜻입니다. ‘말감’(מלכם)은 ‘그들의 왕’이란 뜻을 가진 우상으로 밀곰, 몰록, 몰렉으로 불리기도 하는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황소 머리를 하고 있고 두 팔을 앞으로 벌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우상은 자녀의 안녕을 위해 숭배하는 우상으로, 초기에는 이 우상 앞에 불을 피워놓고 자녀로 하여금 그 위를 지나가게 했는데 후기에는 이 우상의 팔 아래 불을 피워 두 손을 달군 다음 대표로 선정된 유아를 그 손 위에 바쳤습니다. 이 우상은 암몬 족속의 우상인데 남유다에서도 받아들여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경배하며 맹세하던 자들이 이 말곰 우상에게도 맹세를 한 것입니다. ‘맹세하는 자’에 해당하는 원형 ‘솨바’(שבע)는 ‘간청하다’ ‘서약하다’ ‘맹세하다’의 뜻으로, 대상에게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말곰도 함께 섬기는 것은 혼합주의적 숭배행위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한 일이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을 멸절시키겠다고 했습니다. 6절에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는 자들입니다. 무신론자들처럼 아예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도 않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기도 하시는 분이지만 남왕국 유다와 수도 예루살렘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약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있을 줄 알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우리 자신을 살피고 바로서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17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고 했습니다. 특히 유다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7:9-10에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고 했고, 골로새서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2. 유다에 내릴 심판 경고 (7-13절)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8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9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1 막데스 주민들아 너희는 슬피 울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7절上). 세상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이제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할 것이므로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하여 들을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7절下).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욜1:15, 암5:18,20, 옵1:15, 말4:5). ‘희생’(זבח)은 제사에 제물로 드리는 짐승을 가리키는데 이는 남유다 백성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희생을 준비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남유다 백성들을 희생 제물처럼 살육하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청할 자들’은 초청할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이방 군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다는 말은 남유다를 진멸할 바벨론(Babylonia) 제국의 군대를 준비해두셨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하나님이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8절). ‘여호와의 희생의 날’은 ‘여호와의 날’과 같은 말이며 하나님이 바벨론 제국의 군대를 통해 남유다 백성을 살육할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살육당할 일차적인 대상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방백들’은 왕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왕자들’은 왕자들을 비롯한 모든 왕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은 이방 나라의 옷을 입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방 나라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은 이방 나의 풍속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이방 나라의 풍속은 우상숭배의 관습 등 이교적인 관습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은 힘없는 자들의 재물을 착취하여 상전에게 뇌물로 바치는 자들을 말합니다. 자기들의 권세를 이용하여 힘없는 자들의 집을 무단으로 침입하여 폭력과 협박과 거짓 등으로 재물을 빼앗아 자기 상전에게 뇌물로 바치는 자들을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이는 예루살렘 곳곳에서 죽임당한 자들로 인한 통곡소리와 살육의 공포로 인한 울부짖는 소리가 있을 것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어문’(魚門)은 예루살렘 북편 성벽에 있는 문인데 갈릴리 바다와 요단강에서 잡힌 물고기가 이곳을 통해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은 적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방향이었습니다 (Smith, Walker). ‘제 이 구역’(第二區域)은 정확하지 않으나 어문 안쪽 근처에 새로 계획 조성된 구역으로 추측됩니다. ‘작은 산들’(גבעה)은 성 안에 있는 언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막데스 주민들은 슬피 울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고 했습니다 (11절). 상업지구인 막데스의 주민들은 은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다 망하여 없어질 것이므로 슬피 울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막데스’(מכתש)는 ‘작은 골짜기’ ‘절구’라는 뜻으로 작은 골짜기나 절구처럼 움푹 패인 지형 때문에 붙여진 지역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그곳은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예루살렘의 상업지구를 가리키는 것일 것입니다. ‘가나안’(כנען)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나 그의 후손들이나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상인(商人)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욥41:6, 잠31:24, 사23:8, 겔16:29, 호12:8). 여기에서는 후자의 뜻으로 예루살렘 내의 막데스 구역에 거주하는 상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은’(銀)은 화폐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은을 말합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2절). 통에 포도주를 담가두면 통 아래에 찌꺼기가 가라앉아 응고되어 있게 됩니다. 그처럼 예루살렘에 찌꺼기 위에 엉겨 붙어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의하게 축적한 재물로 자기만족에 빠져 향락을 누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기들의 생활에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생각이며,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불순종자에게 화가 있게 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등불을 켜고 샅샅이 뒤져 잃어버린 동전을 찾듯이 (눅15:8) 그런 자들을 찾아서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고 했고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13절). 그들이 축적한 재물들이 다 약탈당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구축한 생활 터전을 다 빼앗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침공한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유다의 권세자들이 축적해둔 재물들을 약탈하고 그들을 다 사로잡아 갈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23:24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했고, 아모스9:2-3에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면 축적해놓았던 재물들을 다 잃게 됩니다. 잠언23:4-5에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함이 없는 재물을 의지하거나 그것에 소망을 두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17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인격을 하나님 말씀대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로마서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의 날 임박 예고 (14-18절)
7-13절에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대심판에 대해 1차로 예고했는데 14-18절에서는 그보다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로 2차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14절에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큰 날’은 하나님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릴 심판의 때를 가리는데 그 날을 큰 날이라고 한 것은 심판의 양상이 심히 클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날은 가깝고 빠르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임박했음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 날에는 용사들이 심히 슬피 우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의 두려움은 용사들까지도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들까지도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른다면 일반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며 환난과 고통의 날이며 황폐와 패망의 날이며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며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15절). 그날은 분노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할 때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발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신 결과 환난, 고통, 황폐, 패망, 캄캄, 어둠, 구름, 흑암 등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에는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이고, 파괴와 페허가 있을 것이고, 혼란과 공포가 있을 것이고, 절망과 좌절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은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16절). ‘나팔’은 제사를 드릴 때나 진을 소집할 때나 행진을 할 때나 적의 침공을 알릴 때 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적이 공격 신호로 부는 것을 말합니다. ‘불어 경고하며’에 해당하는 ‘테루아’(תרועה)는 ‘소리’ ‘함성’의 뜻으로 전쟁을 할 때 공격 신호로 나팔을 불며 군사들이 공격을 하면서 함성을 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군사들은 나팔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견고한 성과 망대를 향하여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 제국의 군대가 남유다의 성읍들과 그 수도 예루살렘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황폐화시킬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17절에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내려’에 해당하는 원형 ‘차라르’(צרר)는 죄다, 괴롭히다, 포위하다, 압제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적들이 성읍을 포위하고 공격해 들어가는 압박을 의미합니다 (왕상8:37, 대하6:28). 그래서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해 어디로 행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공포 가운데 우왕좌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적들에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육을 당해 시체들이 수습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땅에 흘린 피가 말라서 먼지와 섞여 날리고 살이 썩어서 오물이나 인분 썩는 역겨운 냄새를 풍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그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上). 하나님이 분노로 심판을 하실 때에는 은이나 금이라도 결코 그것들이 심판에서 건져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축적해 놓았을지라도 그것들이 생명을 건져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추구하고 소망하고 의지하고 신뢰하던 재물들조차도 환난과 고난과 고통에서 건져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겔7:19).
그리고 18절下에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이 온 땅’은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땅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질투’은 자기 백성을 다른 대상에게 빼앗기거나 자기 백성이 다른 대상을 좇아갈 때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열정적인 감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진다는 말은 남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열정으로 그들을 심판을 하실 것인데 그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는 하나님이 남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을 말입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은 일차적으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종말에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기도 합니다 (눅17:27-30). 베드로후서3:10 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5:2-3에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結言>
하나님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할 때에 은과 금도 능히 건져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재물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안전을 지켜줄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추구하고 소망하고 의지하고 의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그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재물을 행복과 안전의 최고 수단으로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노력과 수고와 희생을 하면서 인생을 투자합니다. 그래서 재물이 신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mammonism). 하지만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에는 그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에스겔7:19에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내리는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재물을 얻는데 허비하지 말고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영원한 것을 위헤 살아야 합니다 (벧후3:10, 롬13:14).